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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 피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지 125일만인 29일 오전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양승태, 구속 125일만에 첫 재판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 피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지 125일만인 29일 오전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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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우 검사 : "방금 저희는 그렇게 말씀 안 드렸다."
이진희 변호사(고영한 변호인) : "부동의한 문건이 그대로 인용된 부분이다, 삭제해야 한다."


이강우 검사 :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다."
이진희 변호사 : "삭제할 부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드리는 거다."


10분 넘게 검찰과 변호인의 설전이 계속되자 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가 "됐습니다"라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에 앉아있던 배석판사도 덩달아 일어섰다. 박 부장판사는 곧바로 착석한 뒤 휴정을 선언했다. 31일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농단' 2차 공판의 한 장면이다.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 재판은 준비절차부터 검찰과 변호인단의 크고 작은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변호인들은 검찰이 재판부에 증거를 제시하는 방법, 법정에서 구술하는 내용 등에 수시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검찰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터라 양쪽이 공방을 시작하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급기야 이날엔 재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사사건건 공방, 이러다 실체 규명은 언제...

하지만 휴정 뒤에도 비슷한 장면은 되풀이됐다. 그 다음에는 압수물의 출처를 밝히느냐 아니냐가 문제였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혐의 중 서울서부지방법원 사건정보 유출 관련된 내용이라며 법원 직원 컴퓨터에서 발견된 구속영장 청구서를 제시했다. 그러자 또 다시 변호인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상원 변호사(양승태 변호인) : 이게 어디서 압수됐는지는 얘기할 필요가 없다.

단성한 부부장 검사 : 공소사실 입증하는 건데 '영장 청구서가 있는데 발부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걸 알 수 있다'라고만 하라는 것인가.

이상원 변호사 : 이게 살인사건의 칼이라면, 칼을 제시하면서 '이 칼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찌른 칼'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조상원 부부장 검사 : '이건 칼입니다'밖에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럼 입증 취지를 뭐라고 하냐.


검찰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단 부부장 검사는 "우리가 칼 얘기를 하며 '피해자를 찌른 칼'이라고 말을 못하면 공소사실 입증을 어떻게 하냐"고도 되물었다.

이 변호사가 다시 반박에 나서자 박남천 부장판사가 눈을 한 번 질끈 감은 뒤 "어떤 이유 때문에 변호인이 이의(제기)하신 거냐"고 물었다. 박 부장판사는 양쪽에게 각 주장의 요지, 이유 등을 재차 확인한 뒤 "이 증거에 한해서는 '어디에서 입수했다'까지 진술하는 것은 중지시키겠다"고 정리했다. 또다시 10분 넘게 설전이 계속된 후였다.

양쪽은 컴퓨터 파일을 출력한 자료가 증거로 쓰일 수 있는지를 두고도 한참 다퉜다. 박병대 전 대법관 변호인 이재환 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검찰에 임의제출한 문서가 원본인지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고 한참 주장했다. 채희만 검사는 원본파일이 있고, 출력물 형태로 압수한 것은 검찰에서 별도로 PDF파일이 있어서 날짜라 다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증거 입수경위, 의미 밝히면 안 된다? 검찰 "법령 위반"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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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논쟁이 이어졌고, 재판부는 출처문제를 정리해달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또 다른 증거조사방식을 문제 삼았고, 검찰은 그럼 일일이 법정에서 파일과 출력물을 대조하겠다고 맞섰다. 하지만 이미 공판준비기일 때 변호인들이 직접 검찰청에 와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며 차라리 따로 기일을 잡자고 했다. 그제야 이 변호사는 "저희들이 재판준비만 하는데도..."라며 "검찰의 부담과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궁리를 해서 의견을 내겠다"고 물러났다.

결국 이날도 검찰이 준비한 증거 조사의 절반 정도만 이뤄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변호인들의 무리한 요구를 재판부가 받아준다며 정식으로 이의 신청을 했다. 사법농단 의혹을 고발한 이탄희 전 판사의 사직서에 이어 서부지법 관련 구속영장 청구서까지 공소사실과 관련성, 의미 등을 설명하면 안 된다는 변호인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판부 결정이 "형사소송법 등 법령을 위반할 뿐 아니라 공판중심주의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또 추가로 낸 의견서에서 "사건의 특수성과 여러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본안 심리가 지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실체 규명과 상관없는 공방으로 시간낭비된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차 공판에서 공소장은 소설이고, 자신을 표적수사했다는 주장을 펼친 것도 "심히 부당하고 조목조목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또 다시 불필요한 공방으로 이어져 소송이 지연될 수 있다"며 재판부에 적절한 소송 지휘를 요청했다(관련 기사 : 24분 동안 검찰 비난한 양승태 "견강부회, 용두사미, 법치파괴").

태그:#사법농단, #양승태, #박병대, #고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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