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진흥회관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진흥회관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 ⓒ 부천영화제

  
국내 영화제 중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장르영화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코미디부터 액션, 스릴러, 공포, 판타지 등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모아놨고, 예술성보다는 흥미와 재미에 무게 중심을 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피 튀기는 영화를 좋아하거나 긴장감 있는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행사다. 하나의 장르가 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역시도 이런 복합 요소를 갖고 있기에, 부천영화제의 성격에 맞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된 올해 부천영화제 상영작들은 이런 기조에 충실하면서 49개국 288편의 영화를 준비했다. 프로그램의 특징을 보면 한국고전 판타스틱 영화의 발굴과 VR 상영의 확대를 들 수 있다(관련기사 : '기름도둑'·'남산시인 살인사건'·김혜수, 부천영화제의 선택).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짐 자무시 감독의 <데드 돈 다이>를 국내에서 처음 상영한다. 또 링 20주년 기념작인 일본 공포영화 <사다코>, 필리핀의 <귀신 상담사>, 인도네시아 <드레스아웃>, 말레이시아 <두 개의 영혼> 등 동남아시아 공포영화들은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흥미를 끌 만한 작품들이다.
 
미지의 한국 고전 장르영화 발굴
 
 김기영 감독의 <수녀>

김기영 감독의 <수녀> ⓒ 부천영화제ㅐ

 
특별전 프로그램도 알차다. 미지의 한국 고전 영화들을 발굴한 게 특징이다. 주목되는 작품은 유동일 감독의 1949년 작품 <푸른언덕>, 김기영 감독의 1979년 작 <수녀(水女)> 등이다. 이 작품들은 충무로 원로영화인들조차 잘 몰랐던 영화로 이번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푸른언덕>은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시골청년 현인이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해 콩쿠르대회를 거쳐 가수로 대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숱한 여성들이 유혹하지만, 과거 시골에서 사랑을 나눴던 금녀와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줄거리로 한국 음악영화의 효시 격인 작품이다. 36분 정도의 분량인데, 올해는 가수 현인 탄생 100주년이기도 해서 음반을 틀면서 강의하는 형식으로 상영이 진행된다.
 
김기영 감독의 <수녀>는 '물의 여자'라는 뜻이다. 불후의 명작 <하녀>만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영화다. 국내 한 원로감독도 "김기영 감독 영화 중에 그런 작품이 있었냐?"고 되물을 만큼 충무로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강범구 감독의 <괴시>는 한국영화 최초의 좀비영화로 1980년 제작된 작품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상영된 <킹덤>이 화제가 된 후,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좀비 영화로서 의의를 갖게됐다.
 
한국영화 네 번째 여성감독으로 충무로 도제 시스템을 거친 첫 여성감독인 이미례 감독의 <영심이>와 개봉 20주년을 맞아 디지털 복원으로 공개되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올해 특별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올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20주년 기념상영이 이뤄지기도 했다.
 
부천영화제 측은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한국영화의 오래된 권위 밖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장르적 시도를 보여주었던 호러, 액션, 괴수, 좀비 등 한국형 판타스틱 영화들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새롭게 횡단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한국영상자료원 출신 모은영 프로그래머의 역량이 돋보인다.
 
코미디영화의 여성 조명
 
 마를린 몬로가 주연한 <신사를 금발을 좋아해>

마를린 몬로가 주연한 <신사를 금발을 좋아해> ⓒ 부천영화제

 
'웃기는 여자들, 시끄럽고 근사한' 역시 올해 부천영화제가 공들여 준비한 특별전으로 2017년부터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 2018년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 SF 영화에서의 여성재현>에 이은 세 번째 여성 장르 기획이다.
 
앞서 공포와 SF의 여성을 조명했다면 이번에는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주목할 만한 여성 코미디영화들을 선정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해 마릴린 먼로에서 나문희까지 여성배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코미디 작품들을 선보인다.
 
100명의 여자가 등장하는 동안 한 명의 남자도 나오지 않는 1939년 작품 <여자들>과 마를린 몬로가 출연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최진실이 주연한 <마누라 죽이기>, 나문희 배우의 <아이 캔 스피크>까지 11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밖에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넷플릭스 영화 <폐르소나>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안국진, 이상우, 신수원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가 극장 버전으로 상영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몽달>은 파격적인 소재와 스타일로 잘 알려진 이상우 감독이 참여한 HBO Asia 호러 시리즈의 극장 버전이다. 이상우 감독의 경우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 작품의 등급 심의을 넣을 때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긴장한다는 우스개가 돌기도 할 만큼 강렬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가시꽃> 이돈구 감독의 신작 <팡파레>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베스트 VR 경험상을 수상한 채수응 감독의 신작 <초능력소년사건>도 경쟁 부문에 선정됐다.
 
음란하고 역겹고 잔인한 영화
 
 금지구역에서 상영되는 <골든글러브>

금지구역에서 상영되는 <골든글러브> ⓒ 부천영화제

 
"음란하고 역겹고 잔인한 영화"를 선정한 '금지구역'은 올해도 그 강도가 상당히 세다. 전 세계의 하드코어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국, 일본, 독일 영화 5편을 골랐다. 국내 개봉을 기대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영화 <초의태인간>은 기이한 호러영화의 전통을 살린 역작이다. <골든 글러브>는 70년대 함부르크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장인 정신에 가깝게 묘사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시체 썩는 냄새를 맡는 듯했다' '구토용 봉지를 권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포르노배우가 되고 싶어 어떤 굴욕적인 상황도 소화하려는 두 남성.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현실과 단절되면서 벌어지는 충격적 상황을 그린 <포르노 엑스트라의 종말>은 관객들의 감각과 인내심을 극한 수준까지 자극할 것이라는 게 부천영화제 측의 설명이다.
 
올해는 VR 상영을 크게 확대했는데, 가상현실을 경험해 보는 다양한 전시와 작품이 준비됐다. 임훈 감독의 <세한도> 박흥식 감독의 <바람의 기억> 국내외 VR영화 41편이 상영된다. 부천체육관 인근 '부천아트벙커 B39'에서 행사가 집중돼 열릴 예정이다. VR 상영은 올해 전주영화제에서도 긴 줄이 생길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부천영화제 역시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매혹 김혜수' 특별전에 상영되는 <타짜>

'매혹 김혜수' 특별전에 상영되는 <타짜> ⓒ 부천영화제

 
배우 특별전 대상자로는 김혜수가 선정됐다. 지난해 정우성에 이어 지난 정권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배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정지영 조직위원장은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감독이었던 봉준호 감독이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정치 세력을 향한 상징적인 의미는 있어 보인다.
 
한편 올해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예년보다 2주 앞선 오는 6월 27일 개막해 7월 7일까지 11일간 개최된다.
부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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