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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제3당이 유력해지자 노회찬 선대본부장(가운데) 등 지도부들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제3당이 유력해지자 노회찬 선대본부장(가운데) 등 지도부들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15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제3당이 유력해지자 노회찬 선대본부장(가운데) 등 지도부들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제3당이 유력해지자 노회찬 선대본부장(가운데) 등 지도부들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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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총선은 노회찬 개인은 물론 진보정당 그리고 의회정치사에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노회찬은 자신이 당선되리란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민주노동당은 10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꿈에도 그리던 원내정당이 될 줄을 몰랐다.

노회찬의 당선은 투표 다음날까지 시소게임 끝에 왕년의 거물 정치인을 물리침으로써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선거 방식이 바뀐 결과였다. 16대 때의 지역구(소선거구제)+전국구(비례대표제)와는 달리 소선거구제는 그대로 두되, 국회의원 선거 사상 처음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였다. 지역구 후보에 1표, 정당에 1표씩 투표하는 1인 2표제가 채택된 것이다.

노회찬이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얻어낸 결과였다. 정당별 전국 득표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되 '전국 유효득표율의 3% 이상' 또는 '지역구의석 5석 이상'을 얻은 정당에만 자격을 주었다.
  
노회찬 선대본부장 등 민주노동당원들이 9일 여의도에서 `1인2표제`에 대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노회찬 선대본부장 등 민주노동당원들이 9일 여의도에서 `1인2표제`에 대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 노회찬 선대본부장 등 민주노동당원들이 9일 여의도에서 `1인2표제`에 대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노회찬 선대본부장 등 민주노동당원들이 9일 여의도에서 `1인2표제`에 대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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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은 몇 가지 이변을 일으켰다. 원내 과반을 넘었던 한나라당이 121석을 차지한 데 그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152석, 민주노동당이 10석으로 제3당의 위치를 확보했다. 한나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새천년민주당은 몰락했다.

무엇보다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 줄곧 중도 또는 보수 일변도였던 한국 정치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2명 전국구에서 8명의 당선자를 냈다.

노회찬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비례대표 후보 8번으로 등록하고, 각지에서 출마한 후보를 지원하였다. 당대표는 권영길이었다.

나는 당시 비례대표 후보 8번이었다. 오후 6시에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을 때 비례대표 후보 9번까지 당선되는 걸로 나왔다. 여기에 울산과 창원까지 합치면 11석이 되기 때문에 엄청난 대성이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개표에 들어가자 오후 10시부터는 비례대표 후보 7번까지 당선되는 것으로 굳어졌다.

나는 낙선되는 것이었다. 당이 정치적으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당선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당선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쉬운 일도 아니어서 오후 10시 반쯤부터는 텔레비전 앞을 벗어나 그냥 편하게 사무총장실에서 잤다. 사람들은 내가 자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차마 그 방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당선되는 줄 알았는데 안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새벽 2시 반쯤에 윤영상 위원장이 방에 들어와 나를 깨우더니 당선됐다고 했다. MBCㆍKBS에서 '당선 확실'로 보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여유 부린답시고 "AFKN에는 어떻게 나와?" 하고 물었다. (웃음) 9번까지는 안 되고 8번에서 끝났다. 299명을 뽑는 선거에서 298명까지 당선이 확정되고 그 마지막 한 명이 김종필이냐 노회찬이냐를 가지고 새벽 2시 반까지 갔는데 내가 당선됨으로써 김종필 총재가 떨어졌다.

그 열흘 전에 내가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게재하던 일기(〈난중일기〉)에다 "김종필의 10선을 저지하겠다"고 썼는데 그대로 된 것이다. 그날 사람들이 사무실 주변에 운집해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날도 마지막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국민들은 TV 중계방송을 지켜보면서 노정객 김종필이냐, 진보개혁의 신예 노회찬이냐를 두고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결국 0.1%의 차이로 9선의 노정객을 낙마시켰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선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선자
▲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선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선자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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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1987년 31살의 나이에 인민노련을 창설하여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투신한 지 17년 만인 48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되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시소게임으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되고, TV프로 출연은 물론 각종 주간지가 다투어 표지 인물로 장식했다.

민주노동당은 창당한 지 4년 만에 원내에 진출하게 되고, 이땅의 진보진영은 1960년 4월혁명 이후 치러진 7.29총선이후 원내 정당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노회찬과 민주노동당의 갈 길은 멀고 험했다.


주석
4>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123~12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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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