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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필리핀 여행의 인기 코스인 팍상한 폭포 투어에서는 현지인 보트맨이 관광객 여러 명을 태운 배를 순전히 몸으로 끌고 밀면서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배를 탄 사람 입장에서는 깡마른 보트맨이 맨 몸으로 헉헉 대며 용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미안해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그 관광코스를 선택한 사람을 잔인하다고 욕하기도 한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보통 짐꾼을 고용하는데, 등산장비 하나 없는 왜소한 네팔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그 높은 산을 오르도록 하는 게 미안해서 짐꾼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극한 노동 '까대기', 6년간의 경험담

이종철의 만화 <까대기>를 읽은 뒤 내 마음이 꼭 이랬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택배 노동의 혹독한 현실을 속속들이 알고나니 택배로 물건을 주문하기가 꺼려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작가가 무려 6년 동안 일명 '까대기'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며 몸소 겪은 일들을 그린 만화 <까대기>.
 작가가 무려 6년 동안 일명 "까대기"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며 몸소 겪은 일들을 그린 만화 <까대기>.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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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관광객이 보트맨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팍상한 폭포투어를 포기한다면 보트맨은 돈을 벌 수 없게 되고, 히말라야 트레커 중 아무도 짐꾼을 고용하지 않는다면 짐꾼은 생계가 막막해진다. 또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택배로 물건을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택배 노동자들은 실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반대로 적용하여, 사람들이 택배로 물건 주문을 많이 하면 택배 노동자들의 수입을 올려주어 돕는 셈이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통신판매와 택배 서비스가 보편화된 오늘날의 소비행태, 그리고 유통과 물류 산업을 움직이는 거대 자본의 힘으로 형성된 노동 시장 안에서 개인의 선택과 판단은 힘을 쓰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택배를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하든 아니면 많이 이용하기로 하든,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것을 알기에 만화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작가는 택배 상자 하나가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가 자신의 본업인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려 6년 동안 일명 '까대기'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며 몸소 겪은 일들을 그린 게 바로 만화 <까대기>다.

'지옥의 알바'라고 불릴 정도로 극한 노동의 경험담인데도 책을 통해 전해지는 작가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다. 또한 택배 노동의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쓸쓸한 뒷모습을 떠올리며 그렸을 한 컷 한 컷의 그림들은 심심하리만큼 담담하다. 그림의 여백 속에는 잔인한 현실을 담담한 얼굴로 견뎌나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
 
 만화 <까대기> 한 장면.
 만화 <까대기> 한 장면.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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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모두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나가기 위해 노동력을 팔고 대가를 얻는다. 엄밀히 말하면, 무슨 일이든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작가가 알바로 까대기를 처음 하게 된 이유도 비교적 시급이 높아서였다.

정교하게 조직된 복잡한 자본주의 경제의 그물을 짜는 원동력이 어디까지나 '돈'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열악한 노동 현실도 다 자기 선택이고 그걸 감당하는 것도 자기 몫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극한 노동을 감당하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비록 우리가 그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 살아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있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택배 현장에서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이 만화 속에만 그려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아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 직원들에게 컵라면을 사는 지점장과 알바들이 눈치 보지 않도록 믹스커피를 사준 대리님을 우리도 만날 수 있고, 파손된 과일이나 야채를 자기 돈으로 물어줘야 하는 상황인데도 동료들과 나누고 베풀기 좋아하는 택배 기사가 바로 우리 집에 오신 그 기사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 목숨 같은 알바지만 부당함에 항의하는 용기와 해고당하는 동료의 편에 함께 설 수 있는 의리가 우리에게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으로 살아있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 내 돈 내고 받는 정당한 서비스라 해도, 택배 기사님들께 고맙다. 그게 당신들의 '일'이 아니냐는 말이 맞다 할지라도, 모든 노동자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부당하고 억울한 노동 현실을 알면서도 그저 아픈 마음 아프도록 놔두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

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이종철 (지은이), 보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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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