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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이 작별을 고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철쭉 명소, 소백산 정복을 꿈꾸며 적절한 시기를 탐색했다. 유명 관광지나 명소는 어디든 붐비기 마련, 주말은 철쭉을 만끽하고자 소백산을 찾는 인파로 줄을 잇는다. 소백산의 철쭉 유혹에 산이 높은 줄도 모르고 겁도 없이 등반을 시작했다. 흘리는 땀을 보상해 줄 철쭉을 기대하며 차분히 걸었다. 걷다 쉬다를 반복한 느림보 걸음으로.
  
소백산 연화봉의 철쭉 연화봉전망대의 연분홍 철쭉과 소백산천문대 ⓒ 최정선
 
소백산은 비로봉(해발 1439m)을 중심으로 국망봉(해발 1420m), 연화봉(해발 1383m), 도솔봉(해발1314m) 등이 백두대간을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우리나라의 산악형 국립공원으로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이다.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시, 봉화군에 걸쳐 있는 거대 산이다. 조선시대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 1509~1571)는 풍기에서 소백산을 보고 큰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곤 '소백산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산'이란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 여러 명산 중 어머니 품처럼 온화한 산이 바로 소백산이다.
 
지난 날 지구 온난화와 자연훼손으로 소백산의 철쭉 군락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백산 철쭉을 살리자는 운동이 2003년을 기점으로 2018년까지 진행됐다. 철쭉 복원사업은 소백산 연화봉 일대 8군데 철쭉 군락지를 비롯해 희방사, 초암사에서 16년간 진행됐다. 대략 1만1700그루의 철쭉을 심어 오늘에 이르렀다. 끊임없는 철쭉 복원은 성공적이란 평을 들었다.
 
소백산의 울긋불긋한 철쭉을 보고 퇴계 이황은 '호사스러운 잔치에 왕림한 기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화려함이 극에 달했다. 소백산 철쭉의 산행은 천동, 어의곡, 죽령, 국망봉 구간을 돌아보는 총 4개 코스가 대표적이다. 탐방은 난이도와 자신의 체력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 나는 완만한 길을 걷는 죽령 코스로 탐방을 시작했다.
  
죽령 탐방로 죽령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옛길로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였다. ‘아흔아홉 굽이 내리막 30일, 오르막 30리’리라 했다. ⓒ 최정선
 
죽령은 신라부터 이어져 내려온 옛길로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였다. '아흔아홉 굽이 내리막 30리, 오르막 30리'라 했다. 그만큼 힘들고 험한 고개였다. 봇짐을 멘 보부상과 수많은 길손들이 걸은 길이다. 소백산 자락을 따라 죽령마루를 넘어 단양까지 이어진 길이 멋스럽다. 죽령이란 명칭에 얽힌 설화도 있다. '도가 능한 한 승려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제2연화봉 표지석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제2연화봉 대피소까지 4.5km로 희뿌연 시멘트 길이 지루하다. 천천히 걸어서 그런지 우리는 3시간 반이 걸려 대피소에 도착했다. ⓒ 최정선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걷는 죽령 탐방로는 연화봉까지 7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소백산 철쭉산행 계획은 소백산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연화봉을 정복하겠다는 포부로 시작했다. 기운이 소진되지 않은 한 비로봉(11.3km)까지 간다는 비밀 계획도 포함됐다. 이런 내심을 동행인에게 숨겼다. 말하면 못갈 이유를 열 가지나 나열할 게 뻔해서다.
 
소백산 산행을 위해 제2연화봉 대피소를 예약했다. 토요일은 예약대기 상태라 비상시를 대비해 금요일로 예약했다. 금요일은 여유있게 대피소 투숙이 가능해 동행인이 반차를 내고 갈 예정이었다. 소백산이 우리의 산행을 허락하듯 토요일 대피소가 예약이 됐다는 문자가 왔다. 급히 금요일 예약을 취소하고 일박을 위해 꼼꼼히 챙겼다.
 
덕유산 대피소에서 일박할 때 다들 고기를 굽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고기를 먹어볼 요량으로 하루 전날 고기를 필두로 먹거리를 잔뜩 구매했다. 드디어 5월 25일, 나는 카메라 가방, 동행인은 음식이 든 백팩을 메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 도중 만난 작은 쉼터인 이야기 쉼터, 잣나무 쉼터, 혜성 쉼터에서 잠시 쉬어갔다. 걷는 내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감을 더한다. 천천히 쉬엄쉬엄 걸었다. 붉은병꽃나무의 미소가 힘이 된다. 바람고개 전망대에서 꽤 긴 시간 숨을 돌렸다. 이곳에 만난 두 명의 처자에게 철쭉 개화 상태를 물었다. 꽃을 보지 못했다는 답변에 실망감이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했다. 걷는 것보다 숨 쉬는 것이 힘들다. 최근 기관지를 다쳐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옆에서 다두여 주는 동행인이 있어 죽령 고갯길을 꾹꾹 밟으며 걸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야자매트가 깔려 쉽게 걸었다.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제2연화봉 대피소까지 4.5km로 희뿌연 시멘트 길이 지루하다. 천천히 걸어서 그런지 우리는 3시간 반이 걸려 대피소에 도착했다.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동행인이 '목적지를 보지 말고 땅을 보라'고 한다. 그래야 힘들지 않단다. 목적지를 보면 다리에 힘이 빠져 걷는 게 더 힘들어지는 심리 패닉상태가 된다고 귀띔해 줬다.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정문 앞에서 본 일몰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산들의 산그리메가 어마어마한 위용을 뽐낸다. ⓒ 최정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산들의 산그리메가 어마어마한 위용을 뽐낸다. 여름이 가까워졌지만 서늘한 기운에 금세 소름이 돋는다. 철쭉이 한두 무리만 보여 실망이 컸지만 이를 보상하듯 산이 그리는 일몰 빛은 예술가의 붓터치다. 붉은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풍기읍의 불빛이 반짝인다.
 
밤잠을 설친 상태로 이른 새벽 산행에 나섰다. 소백산에서 찬란한 일출을 보고자였다. 죽령 탐방로는 대부분이 포장된 임도로, 어둠 속에서도 걷기 힘들지 않다. 제2연화봉 석탑을 지나 소백산천문대까지 임도를 따라 걸었다. 랜턴을 준비하지 않아 앞서 가는 산객을 따라 갔다. 달빛이 휘영청 밝아 발아래를 비춰줬다.
 
터벅터벅 걷는 새벽길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다. 국립공원은 일출 전 2시간과 일몰 후 2시간까지가 등산이 허가 된다. 그래서 새벽 3시부터 산행을 시작해 소백산천문대를 지나 연화봉까지 걸었다.
  
소백산천문대 돔 달빛과 어우러진 소백산천문대 돔이 예술이다. 매직아워가 가까워 와서 그런지 코발트빛이 투명하게 느껴진다. ⓒ 최정선
 
달빛과 어우러진 소백산천문대 돔이 예술이다. 매직아워가 가까워 그런지 코발트빛이 투명하게 느껴진다.
 
소백산의 철쭉은 연분홍 빛 꽃망울을 터트린다. 하늘정원 소백산의 연분홍으로 물든 곳의 포인트는 당연 연화봉과 비로봉 가는 길이다. 어두운 하늘을 뚫고 붉은 빛이 밀려든다. 연화봉 전망대의 철쭉이 영~ 시원찮다. 그래서 비로봉으로 서둘러 가자고 동행인을 끌었다.
  
연화봉과 비로봉 산길에 만난 철쭉 하늘정원 소백산의 연분홍으로 물든 곳의 포인트는 당연 연화봉과 비루봉 가는 길이다. 어두운 하늘을 뚫고 붉은 빛이 밀려든다. ⓒ 최정선
  
비로봉을 가면 일출을 놓치니 연화봉에서 하산하자는 동행인의 권유를 뿌리치고 비로봉 가는 산길로 향했다. 난대림의 깊은 숲속을 배경으로 길이 펼쳐진다. 숲이 끝나자 철쭉 한 무리가 보였다. 그곳에 먼저 온 탐방객에게 비로봉이 보이는 벌판까지 얼마나 걸어야 되는지 물었다. 30분 족히 걸어야 한단다.

비로봉은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희귀식물 왜솜다리를 비롯해 천연 기념물 제244호 '주목군락'이 있다. 이곳엔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그 초지 벌판이 눈에 아른거렸다. 동행인은 이곳에서 산행을 끝내고 대피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야 된다고 간곡히 말렸다.
 
어려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연화봉 전망대로 왔다. 검붉은 태양이 연주황으로 빛바랬다. 늦었지만 열심히 담았다. 내년을 기약해야 될 듯하다. 철쭉의 윗부분은 여전히 봉우리가 맺힌 채 달려있다. 철쭉은 머뭇거릴 척(躑)과 촉(躅) 한자를 써 척촉(躑躅)이라 부르던 것이 철쭉으로 변했단다. 머뭇거리다 일출과 철쭉을 다 놓친 내 마음 같다.

*소백산 탐방코스: 죽령탐방지원센터 → 제2연화봉 대피소(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 소백산천문대→ 연화봉 전망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소백산, #철쭉축제, #철쭉, #연화봉, #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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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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