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혁신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체인지메이커)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관행과 시스템을 바꾼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체인지메이커들의 도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스타트업, 비영리 단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체 개발한 월경컵을 보여주고 있다.
이지앤모어는 소비와 기부를 연결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체 개발한 월경컵을 보여주고 있다. 이지앤모어는 소비와 기부를 연결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대기업에서 생리대 1만 팩을 단발성으로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월경이란 건 여성들이 매달 겪는 생리현상이잖아요. 지원 받은 생리대를 다 쓰고 나면 문제를 다시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는 지속 가능한 기부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회용생리대·면생리대·월경컵 등 다양한 월경용품을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4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7~8년 정도 영리기업에서 마케팅·홍보 등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문득 "다른 시각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적 기업을 찾았다. 다문화여성들을 요리사로 양성하고 그들의 창업을 돕는 '오요리아시아'라는 회사였다. 안 대표는 사실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여성문제와 다문화가정 문제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입사 후 업무를 진행하면서 여성 관련 논문과 책을 접한 그는 서서히 여성문제에 눈 뜨게 됐다. 안 대표는 "그때부터 여성들의 문제를 더욱 깊숙하게 들여다보게 됐다"며 "그 중에서도 첫 번째로 저에게 와 닿았던 것은 생리대 문제였다"고 말했다.

안 대표 자신도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뒤 직접 생리대를 구입하면서 가격에 부담을 느꼈다. 조사해 보니 실제 생리대 가격은 다른 물가에 비해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어렸을 땐 생리대가 비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생리대는 항상 엄마가 주거나 화장실에 항상 있던 것이었다"며 "그런데 독립 후 마트에서 생리대를 구입해 보니 생각보다 비쌌다, 매달 4~5만 원씩 지출하면서 생리대 가격에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생리대 가격은 항상 소비자물가상승률 대비 2~3배 더 올랐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생리대 생산에 들어가는 원재료 가격은 내려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생리대가 비싼 이유는 광고비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있었는데, 저만 문제라고 느끼는 게 아닐 것 같아 지인들과 대화를 해 봤죠. 그랬더니 한 후배가 저에게 '사실 중고등학생 시절에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휴지나 수건을 써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이 다니던 학교에 그런 친구가 여럿 있었다고 얘길 했는데, 그때 제가 너무 충격을 받은 거죠."

생리대 없어 휴지를? 탐스슈즈처럼 1+1 기부로 시작
  
▲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지속 가능한 생리대 기부 시스템 만들고 싶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는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소비와 기부를 연결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고 소개했다.
ⓒ 유성호

관련영상보기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초이스샵에서 판매되고 있는 위생팬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초이스샵에서 판매되고 있는 위생팬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충격은 공감으로 바뀌었고, 또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월경이 터졌을 때 휴지를 쓸 때가 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될 경우 제가 느낄 자괴감이 떠올랐다"며 "이게 계기가 돼서 여성월경에 대해 깊숙하게 들여다보면서 창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안 대표가 2016년 3월 회사 설립 당시 구상했던 사업 방식은 탐스슈즈와 같은 1+1 모델이었다. 탐스슈즈는 소비자가 한 켤레의 신발을 구입하면 한 켤레의 신발을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신발업체다. 이지앤모어도 생리대와 월경 중 함께 쓰면 좋은 섬유향수 등을 포함한 패키지 상자를 꾸리고, 여성들이 이를 구입하면 한 달분의 생리대가 들어 있는 상자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안 대표는 "지속 가능한 생리대 지원 방안을 고민하다가 소비자가 월경용품 한 상자를 구입하면 한 달분의 생리대가 기부되는 1+1 형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안 대표는 이지앤모어 소비자들이 여러 월경용품이 든 상자가 아닌 생리대 등 개별상품 구입을 원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포인트형 기부를 고안해냈다. 소비자가 구입하는 제품 가격의 일부를 포인트로 바꾸고, 이를 모아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월경용품 상자를 기부하는 방식을 도입하게 된 것. 이후 매출은 더욱 상승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지앤모어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처음에는 모두 똑같은 제품을 기부하다가 지원 받는 학생들이 직접 월경용품을 고를 수 있는 '초이스샵'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고객에게는 월경용품을 선택해 구입하라고 하면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을 주지 않는 것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창업을 하고 1년 뒤에 수혜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월경용품 상자가 정말 너희들의 월경을 해결해줄 수 있는 제품들로 구성돼 있냐'고 물어본 거죠. 그런데 어떤 아이는 중형 생리대가, 또 어떤 아이는 대형 생리대가 더 필요하다고 하는 등 답이 다 달라서 통계를 낼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초이스샵을 개설하게 된 거죠." 

이지앤모어가 초이스샵을 통해 기부를 진행하면서, 지원 받는 학생들의 만족도도 더 높아졌다. 2017년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불거진 뒤 생리대 가격이 2~3배 뛰자 저소득층 아이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 걱정돼 초이스샵에 유기농 제품들을 더 많이 넣었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안 대표는 "많은 아이들이 유기농 생리대를 좋아했다, 아이들도 건강한 생리대를 쓰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4개월에 한 번씩 쌓여 있던 포인트를 지원 받고 이를 월경컵이나 탐폰, 위생팬티 구입 등에 활용한다. 이지앤모어는 현재 부스러기사랑나눔회, 밀알복지재단과 협약을 맺고 청소년 가운데 월경용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차상위계층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첫 월경컵 허가 획득... 동물실험 피하려 고군분투 중 
 
이지앤모어는 월경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매달 월경컵 수다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지앤모어는 월경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매달 월경컵 수다회를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월경용품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소비자들과 수혜 학생들을 위해 이지앤모어는 입점 업체를 더욱 꼼꼼하게 선정하고 있다. 이지앤모어 직원들이 먼저 제품을 사용해 보고 10가지 항목으로 이뤄진 사용성 평가를 진행한다. 직원 절반 이상이 '괜찮다'라고 평가한 제품만 입점할 수 있다. 직원뿐 아니라 학생, 주부 등 12명으로 구성된 월경용품 자문단도 같은 사용성 평가를 한 후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은 제품만 입점 시킨다. 또 납품업체로부터 제품의 전체 성분 자료를 받아 분석한 후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다.

월경용품 유통과 기부에만 집중하던 이지앤모어는 지난 2017년 4월 월경컵 생산에 도전했다. 해외에는 다양한 월경컵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탓에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통해서만 월경컵을 구매해야 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이 생겨서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임상실험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해외 월경컵을 수입해 판매하거나, 직접 월경컵을 제작·판매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정부에선 임상실험으로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해야 판매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했다. 안 대표의 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월경컵이 여성 질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온 임상실험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대학병원 여러 곳에서 실험 비용 견적을 받아보니 1~2억원인 거예요. 저희 같은 작은 기업에게는 큰 돈이어서 임상실험 없이 허가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식약처는 임상실험을 한 자료가 있는 제품을 수입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이지앤모어는 월경컵 개발과 동시에 수입 작업도 같이 진행했다. 해외 제품인 페미사이클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임상실험 자료가 있는 제품이라 판매허가를 먼저 받았다. 페미사이클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식양처의 허가 받은 월경컵이 됐다.

매달 270명 학생 지원... 박람회 수익으로 여성노숙인 돕는다 
 
이지앤모어는 5월 25일, 26일 서울숲 한화캘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에서 ‘월경 플레이어를 위한 새 판이 시작된다’ 주제로 제2회 월경박람회를 개최했다.
 이지앤모어는 5월 25일, 26일 서울숲 한화캘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에서 ‘월경 플레이어를 위한 새 판이 시작된다’ 주제로 제2회 월경박람회를 개최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지앤모어가 개발한 월경컵은 올해 안에 판매될 예정이다. 제품 개발은 끝났지만 동물실험 없이 판매허가를 받기 위해 시판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 안 대표는 "월경컵은 실리콘으로만 제작됐는데 실리콘의 인체적합성이 확인된 서류가 있으면 (동물실험) 대체가 가능하다"며 "실리콘 제작 업체에 서류를 요청했는데 그쪽에선 '한국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설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지앤모어는 월경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매달 '월경컵 수다회'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약 50여종의 월경컵을 직접 체험하고, 월경에 대한 기본정보와 월경컵 사용방법을 배울 수 있다. 안 대표는 "월경컵에 대한 정보는 '카더라(주변에서 떠도는 소문)'식이 많다, 해외논문에서도 명확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라며 "저희는 산부인과 의사의 자문을 받아 확인하거나, 연구기관과의 실험으로 알게 된 정보만 안내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국내 첫 '월경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10여 명이 모여 월경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월경컵 수다회의 확장판이다.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월경박람회는 오는 25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박람회에선 월경 전·중·후에 포궁(자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등을 시각화해서 전시할 계획이다. 안 대표는 "실제 월경컵을 쓰면서 혈의 양을 측정했던 사람이 있는데, 그의 월경혈 데이터도 전시할 것"이라며 "또 생리대를 직접 뜯어 흡수체를 확인하는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앤모어는 올해 월경박람회로 벌어들인 수익을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출판업체 '빅이슈'를 통해 여성 노숙인들에게 기부할 계획이다. 안 대표는 "지난해 박람회 수익은 한국여성장애인협회에 기부했고, 올해에는 여성 노숙인 지원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6년 설립 이후 이지앤모어는 약 2억 원 상당의 월경용품을 기부했다. 현재는 매달 약 270명의 저소득층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매출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이지앤모어 쪽 계획이다.

"정부는 청소년 중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 한해서만 월경용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리대 문제는 단순히 저소득층 여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노숙인, 장애인 등 아직도 월경용품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 문제는 계속 풀어나가야 하는 부분이죠. 여성들이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월경용품 지원서비스를 잘 만들어나간다면, 어쩌면 여성들의 월경 문제가 정말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태그:#이지앤모어, #생리대, #월경컵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