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5월 18~28일의 보름밖에 없습니까? 그보다 훨씬 긴, 이후의 39년은 정말 궁금하지 않은 건가요?" - 5.18 시민군이었던 선생님에게 강상우 감독이 들은 말을 옮기며 (영화 후 GV에서)

두 구절을 병치한 이유는 둘 사이의 어떤 관련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말처럼 시간이 흘러도 기억이 흐려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이 통과해온 39년의 세월은 얼마나 명료했을까. 아물지 않는 기억으로부터 끈적끈적한 진물이 얼마나 무수히 새어 나왔을까.

쉽게 잠 못 이뤄 뒤척였을 하룻밤, 수 초의 시간도 영원처럼 아득했을 하룻밤. 나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을, 그래서 온몸을 어둠에 숨기며 신음했을, 빛보다 어둠이 훨씬 더 친숙했을, 39년의 무수한 하룻밤. 다른 영화들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그 시간을 영화 <김군>은 응시한다. 공기 방울처럼 연약한 무엇인가가 내게 부딪혀서 톡 터졌다.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 <김군> 스틸컷 ⓒ 영화사 풀

  
무수한 '김군'들의 삶 보여준 영화 <김군>

이제 이런 영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는 다소 집단적인 느낌이었다. 고스란히 피해를 당한 사람은 개별적인 인격체인데, 많은 영화는 쉽게 그들을 어딘가 막연하게 하나로 뭉뚱그렸다. '광주'는 집단 하나가 아니라, 한 사람과 한 사람 개인의 총합이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의 참상'을 다루는 데 성공했지만, '개인의 참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아쉬웠다. <택시운전사>는 외부인의 시선(김사복 기사, 한즈 페터 기자)으로 민주화운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시점'(View-Point)이 달라졌지만, 극의 '시점'(Time-Point)은 여전히 5월 18일부터의 보름 그대로였다.

영화 <김군>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와 다르다. 기존 영화들이 '광주'라는 집단에 관심을 쏟을 때, 이 영화는 '개인'(김군)에 초점을 맞춘다. 끓어오르는 울분으로 관객의 눈물을 건드리려 하지 않고, 차분한 논법으로 관객의 이성과 논리를 건드린다. (합리적인 논리를 통과한 다음에 흘리는 눈물은, 그러지 않은 것보다 훨씬 진하다.) 5월 18일~28일까지 보름 동안의 사건 자체보다, 39년 동안 일렁였을 삶의 파동을 응시한다. 그것이 남은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믿는 것처럼.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 <김군> 스틸컷 ⓒ 영화사 풀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5.18 민주화운동 때, 복면을 쓰고 무장한 사람의 정체는 기습 남파된 북한군이라고. 그는 그들을 '광수'라고 명명했는데, 그렇게 이름을 얻은 '광수'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그들은 실제로는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이다). <김군>은 지만원이 '제1광수'라고 지명한, 사진 속 남성 '김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진실의 걸음을 차분히, 그러나 단호히 걸어간다.

'제1광수', '김군'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달려가던 영화는 종종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면서 걸음을 서성였다. 여기서 나는 눈치를 챘다. 이 영화의 최종 목적지는 '김군의 정체'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김군'들이 그곳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각각의 '김군'들이 국가로부터 받았던 폭력, 지워지지 않는 피의 얼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끈덕지게 들러붙은 냄새처럼, 결코 결별할 수 없는 기억을 앓아가며 살아가는 무수한 김군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영화 <김군>이 보여주고 말하고자 하는 것들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 <김군> 스틸컷 ⓒ 영화사 풀

  
"그저 일반 시민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그렇게 대들었던 것이지. 리어카에 놓인 시신 두 구를 보고." - '왜 그렇게 싸우셨던 거예요?'라는 질문에 시민군이었던 선생님의 대답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 오월 이야기는 그만 하자." - 전화를 걸어온 친구에게 5월의 사진을 보고 있다고 말하자 답한 친구의 말

"그 생각만 하고 수십 년 살고 있습니다." - 당시 '김군'과 같은 시민군 소대였던 최진수 선생님의 말


"그런데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바로 집단구타를 시작하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엎드러져서 말입니다. 계속 짓밟는 대로 밟히고 있으니까 일으켜 세우더라고요. 그러면서 바로 제 10년 넘게 친구를 갖다 말입니다. 관자놀이에 대고 반 하사가 M-16으로 그냥 쏴버리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그냥 죽었습니다. 그 친구는." - 5.18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45회 28차 발췌

영화 <김군>의 출발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시민군의 사진을 보던 주옥 선생님이, 사진 속 얼굴을 알아본 것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그 사람은 함께 항쟁했던 넝마주이들과 주옥 선생님의 막걸리 가게에서 매일마다 꼭 한 잔씩 했다고. 그래서 낯이 익다고 했다.

주옥 선생님은 항쟁하는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쥐어주면서 꼭 살아서 보자고 당부했다고 한다. 광주, 그곳에서 누군가가 생명을 무참하게 훼손할 때, 다른 누군가는 생명을 존귀하게 대했다. 누군가가 목숨을 그저 몸뚱이라고 여겨 짓밟을 때, 누군가는 존엄이 깃든 육신(훼손되지 말아야 할)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간이 그토록 악할 수 있다는 것. 혹은 인간의 본질은 선하다는 것, 광주는 둘 모두를 동시에 증언해주던, 끊임없이 인간성이 파괴되고, 다시 세워지던 곳이었다.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 <김군> 스틸컷 ⓒ 영화사 풀

  
다만, 인간의 인간성을 재건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영화 <김군>은 믿는 것 같다. 그러니 살아남았다고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좋다고, 손을 꼭 잡고 함께 울며 말을 건네듯이. 저마다의 평범한 선의가 모이고 모여서, 처참하게 파괴된 인간성을 얼마든지 충분히 재건할 수 있다고, 함께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내면에 깃든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김군>은 믿는 것 같다.

나는 재건 작업을 오랫동안 해오던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 후 글을 쓰는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내면이 흔들리고 찢겨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소설이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다. 사실이었다. 이 책은 나를 위해 쓰지 않았다. 다만 나의 감각, 감정, 몸, 삶을 그들에게—살해된 자들, 살아남은 자들, 혈육을 잃은 자들에게—빌려주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느끼는 것, 그들과 함께 경험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아마도 내가 그들을 돕고 있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나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모두 저버리고 싶을 때마다, 그들이 오히려 나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에서 어린아이였던 동호—이후 열다섯 살에, 항쟁의 마지막 날 도청에서 총에 맞아 숨진—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이끌고 갔듯이." - 한강, '그 말을 심장에 받아 적듯이' 중에서

<소년이 온다>로 2017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수상 소감문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소설을 쓰는 동안 그 묘지에 가끔 찾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날씨가 맑았다. 향을 피운 뒤 눈을 감고 서 있으면, 온 세상이 눈꺼풀 바깥으로 밝고 찬란한 주황색이었다. 마치 아주 따뜻하고 친근한 수많은 존재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온기 속에서,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들의 말을 내 심장에 받아 적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것이 과연 진실로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해도, 어쨌든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밖에는 길이 없다고. 인간의 참혹에서 존엄으로, 그 아득한 절벽들을 연결하는 허공의 길뿐이라고." - 같은 글에서 발췌

'그 말을 심장에 받아 적듯이.' 인간성을 재건하려는 마음가짐이란, 이런 게 아닐까. 영화에서 당시 시민군이었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 정말 예뻤는데." 다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나 오염되지 않았어요. 이 김태환이가." 그들의 표정 위로 천진함과 귀여움이 어렴풋이 어렸다가 흩어졌다. 카메라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투명한 렌즈에 받아 적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리고 나는, 한 명 한 명 김군들의 표정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저 표정은 분명, 광주의 일보다 훨씬 오래 전인 어린 아이 때부터 얼굴에 새겨왔던 것이리라. 그리고 같은 표정을 당시 국군 통수권자도 어리고 순수했을 때 지었을 것이리라. 모두가 갖고 있지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천진함, 그 깨끗한 인간성을 다시 재건하자고 영화 <김군>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요컨대 영화 <김군>은 사진 속 '김군'의 얼굴을 경유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의 인간성에까지 가닿는다.
김군 영화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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