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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국이 좋다. 그냥 오랫동안 좋아하던 꽃이었다. 엄마가 키우던 수국이 고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엄마가 키우던 수국은 붉은 색 고무 대야 같은 볼품 없는 화분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수국은 초라한 화분 따위 아랑곳없이 예뻤다.

참 신기한 게 꽃 색깔이 자주 바뀌었다. 꽃망울이 터져 피어났을 때는 분명 파란색 꽃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분홍 색깔이 조금씩 번지더니 완연한 분홍색 꽃으로 스르륵 둔갑을 해 버린다. 가끔은 보랏빛으로 변하기도 했다. 꽃 한송이에 두세 가지 색이 마법처럼 어우러질 때는 더 신비로웠다.

토양 성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수국
 
수국은 웨딩부케에 자주 쓰이는 꽃이다. 배우 심은하가 선택한 뒤로 인기가 높아졌다. 진한 색감은 촬영할 때 잘 어울린다.
▲ 수국 부케 수국은 웨딩부케에 자주 쓰이는 꽃이다. 배우 심은하가 선택한 뒤로 인기가 높아졌다. 진한 색감은 촬영할 때 잘 어울린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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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서야 수국이 토양 성분에 따라 색이 변한다는 걸 알았다. 수국 꽃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알루미늄 성분이 많은 산성 흙을 만나면 푸른색을 띠고, 알루미늄 성분이 적은 알칼리성 흙을 만나면 붉은색 계열을 띤다. 흰색 수국은 안토시아닌 성분을 제거한 경우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다양한 색감의 수국 원예종을 만들어낸다.

수국은 뿌리째 심는 화분 형태 뿐 아니라 꽃대를 잘라서 활용하는 절화 형태로도 쓰임새가 많고 인기가 높다. 꽃은 덩치가 크면 화려한 느낌을 주기 쉬운데 수국은 특유의 풍성함은 유지하면서 작은 꽃잎이 모여 풋풋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 배우 심은하가 선택한 웨딩부케가 화이트 컬러 수국이었다. 그때 여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아 인기 절정이었다가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다.

수국 잎은 영락없는 깻잎 모양이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것까지 똑닮았다. 작은 꽃잎이 모여 커다란 송이를 이루는 꽃은 탐스럽고 청량하다. 특히 비 온 뒤 수국 꽃을 보면 좋아하는 물을 먹어서 그런지 잎과 꽃이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가득해 반짝반짝 빛난다. 어느 날은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다가 또 어느 날 들여다 보면 화려해 보이기도 하고, 꽃의 이미지가 다양해서 질리지 않는 것도 매력이다.

좋아하는 수국이지만 막상 키우는 것은 망설여졌다. 은근히 키우기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식물 키우는 것은 사람마다 돌봄의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 식물이 키우기 어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쉽다고 하고, 직접 키워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시도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베란다에서 키우기로 했다. 꽃대가 하나 달린 작은 모종이었다. 수국은 몸집이 크면 값이 비싼 편이다.

집에 들이고 얼마 동안은 별탈 없이 잘 자랐다. 수국은 한자(水菊) 이름에도, 학명(Hydrangea)에도 물이 들어갈 정도로 물을 아주 좋아하는 식물이다. 물 관리를 잘하는 것은 필수다. 마침 여름철에 들였던 터라 물이 마르진 않은지, 흙 상태를 자주 살펴보면서 신경 썼다. 반나절만 물이 말라도 금세 줄기와 잎이 쭈글해지면서 푹 수그러졌다. 깜짝 놀라 물을 흠뻑 주면 언제 그랬냐는듯 생생하게 살아났다. 반응이 빠른 녀석이구나. 

오오, 그러던 어느날 송알송알 맺혀있던 초록빛 꽃망울들이 조금씩 펴진다. 초록색 꽃을 피우나 싶었더니 꽃잎 가장자리가 분홍색으로 물든다. 꽃망울이 팝콘처럼 꽃잎을 톡톡 터뜨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꽃잎이 다 펴진 동그란 꽃은 줄기와 잎에 비해 얼굴이 커서 꼭 가분수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사랑스럽다.
 
옹기종기 모인 꽃잎이 동그란 덩어리 꽃을 피운다. 활짝 피기 전이다.
 옹기종기 모인 꽃잎이 동그란 덩어리 꽃을 피운다. 활짝 피기 전이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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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기 시작하자 어째 시들시들해진다. 식물은 꽃이 지고난 뒤 돌보는 게 까다롭다. 사람 마음도 그런 것이 꽃을 보고 난 다음에는 아무래도 관리가 소홀해진다. 수국 잎이 누래지더니 거뭇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잎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줄기가 앙상해지고 서서히 죽어갔다.

잎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물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어 죽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도 그랬다. 물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에 집착해서 물을 줄 때 배수가 좋아야 하는 것과 바람이 시원하게 통해야 하는 것을 간과했다. 두 가지 요건이 균형 있게 맞아떨어져야 오래 함께할 수 있다.

수국은 도대체 어떻게 번식을 하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꽃잎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꽃받침이다. 꽃받침 네 장 중간에 작은 매듭처럼 생긴 것이 진짜 꽃이다. 자세히 봐야 보인다.
 우리가 흔히 꽃잎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꽃받침이다. 꽃받침 네 장 중간에 작은 매듭처럼 생긴 것이 진짜 꽃이다. 자세히 봐야 보인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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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과의 첫 만남은 반짝이는 찰나를 끝으로 허무하게 이별했다. 에휴, 상심한 마음에 수국은 이제 키우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노동당 은평 지역 사랑방인 '은평민중의집랄랄라'를 만들면서 다시 수국 키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곳은 카페처럼 전면이 투명 유리인데 그 앞쪽 공간에 화단을 만들기로 했다. 자주 식물이 죽어나간 집 베란다가 못마땅해서 은근히 환경 탓을 하던 차에 좌절한 정원사(?)의 꿈을 이곳에 펼쳐놓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그리 똥손이 아닐지 모른다는 희망이 꿈틀거렸다.

이곳 화단은 바람이 잘 통하고, 그럭저럭 햇빛도 받을 수 있어 노지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번에는 나름 공부를 하면서 키웠다. 수국은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은 식물이다. 우리가 당연히 수국 꽃으로 알고 있는 꽃잎은 꽃이 아니라 꽃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꽃받침이라는 것. 진짜 꽃은 꽃받침 중앙에 작은 매듭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수국은 수정을 할 수 없는 무성화이다. 진짜 꽃이 실처럼 피어나지만 수술만 있고 암술은 퇴화해서 없다.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이 그다지 달려 들지 않는다. 희한하다. 무성화이지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수국은 도대체 어떻게 번식을 하는 것일까. 인간이 해준다. 포기 나누고, 삽목하고, 꺾꽂이하면서 부지런히 번식시킨다. 이유는 아름답고 좋아서.
 
처음 꽃대가 올라올 때는 초록빛을 띤다. 6월이 되면 활짝 피어날 것이다.
 처음 꽃대가 올라올 때는 초록빛을 띤다. 6월이 되면 활짝 피어날 것이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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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꽃이 피지 않았다. 줄기는 탄탄해지고 잎도 무성해서 활기찬 기운이 넘쳤다. 그럼에도 꽃 필 기색이 없었다. 그해는 초록잎만 봤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수국은 가을쯤 가지 끝에 꽃눈이 생기는데 겨울 월동을 대비해서 가지를 치다가 아무래도 꽃눈까지 댕강 잘라버린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실내에 들여 놓아 겨울 추위가 부족했던지. 수국은 겨울 추위를 겪어야 꽃눈이 휴면기를 거쳐 다음 해에 꽃을 피운다. 적당한 시련을 즐기는 식물이다.
   
수국을 키운 지 5년이 되었다. 물을 말렸다가 살린 응급 이력이 잦아서일까. 몸집이 많이 커지진 않았지만 이제는 웬만한 물말림에는 훗, 이 정도쯤이야~ 꿋꿋하게 버티는 맷집은 좋아졌다. 그런데 5년이나 사귀었지만 난 아직도 수국 마음을 잘 모르겠다. 신비감을 놓지 않는 대단한 녀석이다. 

태그:#식물 기르기, #수국,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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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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