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군산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금강역사영화제 개막식에서 정병각 조직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4일 군산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금강역사영화제 개막식에서 정병각 조직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성하훈

 
작은 영화제는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차별성을 지니면서 지역에 뿌리내려야 하는가?

지난 24일~26일 개최된 '제2회 금강역사영화제'는 관객층이 두텁지 않은 지역에서 작은 규모의 영화제가 가야할 고민과 방향을 잘 제시한 영화제였다.
 
15편의 영화, 3일 간의 행사,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으로 나눠서 마련된 상영관. 외형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딱히 두드러지는 조건은 아니었다. 짧은 행사 기간도 그렇지만 상영작 대부분이 국내 개봉작들과 고전영화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화를 찾아다니는 영화제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요소는 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군산과 서천은 일제강점기에 끝없이 수탈을 당한 도시였다. 군산은 전라도 곡창지대의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간 곳으로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군산에는 미군이 주둔하는 공군기지가 있으며 기지촌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장항선의 끄트머리였던 장항읍은 서천군이라는 지명보다 더 인지도가 높았다. 또 서천은 동학의 기세가 강한 곳이기도 했다. 이렇듯 서해바다로 빠지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도시에는 역사적 아픔이 깃들어 있다.
 
항일과 미군
 
역사적 의미가 켜켜이 쌓인 지역을 역사영화제 개최지로 선정한 것은 영화제의 지향점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군산과 비교해 규모가 작은 서천군 장항읍에는 옛날 흥성대던 구 장항역 앞으로 작은 영화관과 함께 미디어센터가 자리 잡으면서 군산과 서천을 영상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지난 24일 군산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정병각 조직위원장은 "두 도시가 안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과거를 현재에 비추어보거나 현재를 과거에 비추여봄으로써 오늘을 현명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고 영화제의 의미를 강조했다.
 
 금강역사영화제 한국 고전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야외상영

금강역사영화제 한국 고전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야외상영 ⓒ 금강역사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소리>는 1942년 중국 항일투쟁을 그린 영화였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했고, 국내에서 개봉도 됐지만 영화를 본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제작된 지 10년도 더 된 영화였지만 항일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제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금강역사영화제가 필연적으로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이기도 했다. <항거 : 유관순 이야기> <말모이> <군함도-감독판> <해어화> 등을 상영작으로 선택한 것도 역사와 지역을 고민한 결과였다. 개봉한 지 오래되지 않은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
 
일본영화로 초청된 작품 역시 관동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 사이를 배경으로 한 제제 다카히사 감독의 <국화와 단두대>와 2차 대전 패전 이후를 그린 <비용의 아내 - 버찌와 민들레> 등으로 일제강점기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전수일 감독의 <아메리카 타운>이었다. 군산에서 촬영된 영화로 2017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됐고, 2018년 개봉됐으나 독립영화의 열악한 사정으로 인해 영화를 본 관객은 매우 적었다. 군산에서 촬영된 영화였음에도 지역민들조차 보기 어려운 영화였는데, 금강역사영화제가 필요한 역할을 한 것이었다.
 
<아메리카 타운>은 군산 기지촌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소년, 기지촌 여성의 모습과 미군을 위해 자국민을 가볍게 대하던 국가폭력의 실상을 다룬 작품이다. 빈자리가 얼마 되지 않을 만큼 좌석을 채운 군산의 관객들은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개인적인 감상평부터 영화의 방향성까지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콘티북 즉석 선물
 
 <사도> 상영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준익 감독과 전찬일 평론가

<사도> 상영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준익 감독과 전찬일 평론가 ⓒ 금강역사영화제

 
감독과 관객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 GV(Guest visit)는 작은 영화제가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을 만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와 <황산벌> 두 편의 영화 상영 후 각각 관객들과 만났는데, GV 진행자였던 전찬일 평론가는 "부산영화제 때보다 더 뛰어난 질문이 나와서 이준익 감독이 기분 좋아 했다"고 말했다.
 
<항거 : 유관순 이야기>의 조민호 감독 역시 두 번의 GV를 통해 알찬 이야기를 나눠 좋은 인상을 남겼다. 질문마다 감독이 적극적인 자세로 답변하자 질문을 하려는 관객들이 많아졌다. 26일 군산 상영후 GV에서는 "혹시 영화를 하려고 하시는 분이 있으면 드리겠다"며 콘티북을 즉석 선물로 제공해 이를 받은 관객이 크게 기뻐하기도 했다.
 
영화제 상영 프로그램이 대부분이 지역과 연관 있는 작품들이라서 관객들 호응이 좋았다. 백제 문화권에 속했던 지역적 특성에 맞춘 작품들과 동학과 관련된 저예산 영화 <동학, 수운 최제우> 등은 작은 영화제의 강점인 선택과 집중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1960~1970년대 고전영화들은 주로 노년층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작품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일반상영 외에 야외행사와 학술세미나까지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다. 군포에서 왔다는 한 중년 관객은 "역사영화에 매력을 느껴 지난해에 이어 오게 됐다"며 군산과 서천을 오가며 부지런히 영화를 챙겨보는 중이라고 했다.
 
부대행사로 25일 군산 장미공연장에서 열린, 지역 출신 작가 강형철 시인의 '해망동 일기' 시낭송과 대화 시간에는 한국 대표작가인 황석영씨가 참석하기도 했다. 황석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만희 감독의 <삼포가는 길>은 금강역사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했다.
 
 금강역사영화제 포스터

금강역사영화제 포스터 ⓒ 금강역사영화제

 
국내에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영화제마다 예산 편차가 크다보니 규모가 각각이다. 작은 규모의 영화제들은 형편상의 차이 때문에 부실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인근 지역에서 처음 개최된 한 영화제는 단편영화제인데도 적지 않은 예산을 쓴 데다 관객도 들지 않았고, 영화제 행사로 가요제까지 열어 정체성과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화보다는 축제 형식에 더 주안점을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강역사영화제는 분명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갖고 작품과 관객과의 대화에 집중한 것이 돋보였다. 작은 규모의 도시에서 외형적으로 화려한 축제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금강역사영화제는 이를 벗어나 내실 있게 영화와 관객에 집중하는 기본에 충실했다. 작은 영화제들이 가야할 모습을 보여 준 셈이다.
금강역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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