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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미 정상회담 조율 과정과 통화 내용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해 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조율 과정과 통화 내용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사진은 지난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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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은 '아직 살아 있는 외교기밀'을 유출했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관련한 한미 정상 통화 내용(5월 7일)을 공개한 날은 5월 9일. 이날 그는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일 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간에 통화하면서 다시 한 번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이 방일 직후에도 한국을 들르지 않는 것은 한미동맹의 균열의 시그널로 읽힐 수 있고 오해될 수 있기 때문에, 청와대와 백악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반드시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촉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미정상회담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통화 내용을 유출하게 됐다'는 게 자신의 동기임을 밝히고자 하는 언급이다.

양국 정상이 전화통화를 한 7일은 물론이고 통화 내용이 유출된 9일에도, 트럼프의 방한은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방한이 결정된 것은 16일로 알려져 있다. 강 의원이 공개한 통화 내용은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는 외교기밀이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외교기밀을 몰래 입수한 쪽은 흔히 셋 중 하나의 행동을 보인다. 기밀을 혼자 혹은 자기 집단 내에서만 알고 있거나 우호적인 다른 집단과 공유하거나(A), 기밀을 입수한 사실을 상대 측에만 알려주거나(B), 아니면 온 세상에 다 알려주는 것이다(C).

기밀입수자의 세 가지 행동 패턴, 강효상의 선택은 
 
 국회 정론관 내부 모습.
 국회 정론관 내부 모습.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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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기밀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려는 의도는 없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기밀의 생명력을 보존하면서, 상대의 행동 방향을 예측하고 선제적 대응을 하려는 동기가 있는 경우다.

B의 경우에는, 기밀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상대가 예정된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고자 기밀을 활용한다면, 기밀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기밀을 활용해 상대와 거래를 시도한다면, 기밀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다고 볼 수 있다.

C의 경우에는, 기밀의 생명력을 끊으려는 의도가 상당히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아직 활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좀 더 비밀로 유지돼야 할 사실을 온세상에 퍼트리는 것은, 상대가 기밀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강효상 의원은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트럼프의 방한 문제를 온 세상이 다 알 수 있도록 공개했다. 여느 시기와 달리, 지금 시점에서 이뤄지는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긍정적 신호로 읽힐 여지가 없지 않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북미관계가 교착 국면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 대통령이 북미회담 재개를 희망하는 한국 대통령을 만나러 북한 코앞까지 온다면? 긍정적 신호로 해석되기 쉽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방한과 관련해 미국은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메시지에 보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도 이번 방문이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통화 내용을 비밀로 유지하는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예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고교 후배'로부터 입수한 통화 내용을 청와대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공개했다는 것은, 강 의원이 통화 내용 속의 외교기밀을 살리려는 의도가 크지 않았을 가능성을 짙게 만든다. 트럼프의 방한이 꼭 성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개하게 됐다는 강 의원의 발언이 객관적 상황과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23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 성격이 강하다"라면서 강 의원을 두둔했다. 강 의원이 공익적 제보를 위해 그렇게 했는지, 그의 주관적 동기가 어떠했는지는 향후 수사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유형의 사건이 대외관계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보다는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황장엽의 '기밀 누설' 
 
 정부가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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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증명할 사례는 비교적 많다. 1996년에 있었던 황장엽의 북한 외교기밀 누설 사건도 동종 사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도 결국에는 북한 대외관계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2002년 제2차 북미 핵위기 발생 뒤인 2003년부터 6자회담이 벌어진 것처럼, 1993년 제1차 핵위기 뒤인 1997년부터는 4자회담이 벌어졌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참여하는 이 회담은, 1996년 4월 16일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공동 제의하면서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논의가 진행 중이던 1996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 터졌다. 북한의 운명이 걸린 이 회담에 대한 김정일의 의도가 공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일은 중국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면서 외교적 주체노선을 견지한 데서 드러나듯이, 김정일의 반(反)중국 감정은 김일성 가문 내에 축적된 오래된 정서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에 더해, 1992년 8월 한중수교도 김정일의 반중국 감정을 한층 부추겼다. 이 점은 한중수교 이후 오랫동안 북중정상회담이 끊어진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한중수교로 인해 김정일이 집권한 1994년 7월부터 오랫동안, 김정일과 중국 주석의 회담은 물론이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중국 주석의 회담도 소원했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의 논문 '중국의 대북전략과 북중관계: 2010년 이후 김정일의 중국 방문 결과를 중심으로'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북한과 중국의 정상간 방문 외교는 한중수교 직전인 1992년 4월 양상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을 마지막으로 상당 기간 중단되었다. 북한도 1991년 10월 김일성 주석의 중국 방문 이후,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까지 최고위층 인사가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양국 정상회담은 2000, 2001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2001년 장쩌민 주석의 답방으로 비로소 회복되었다."
   
이처럼 1996년 당시의 김정일은 중국을 좋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양국이 제안한 4자회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속마음을 폭로하는 뜻밖의 보도가 한국과 일본 등에서 터져 나왔다. 중국을 4자회담에서 제외시키고 싶어 한다는 보도였다. '아직 살아있는' 외교기밀이 갑자기 언론을 통해 튀어나왔던 것이다.

한일 언론들이 이 사실을 자신있게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지도부 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지도부 인사가 바로 황장엽이다. 1996년 8월 17일 <동아일보>는 일본 언론을 인용해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아래 기사 속의 '외교위원장'은 '상임위원장'을 잘못 쓴 표현이다.
 
"북한의 고위 인사가 4자회담 대신 남북한 및 미국만의 3자회담을 제안,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의 황장엽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은 한·미 양국의 4자회담 제안과 관련, '중국을 제외하고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이라면 올가을 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16일 보도했다."
 
6개월 뒤인 1997년 2월 17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황장엽은 자신의 말이 북한 지도부의 의중에 기인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 김정일의 생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해 2월 18일 <아사히신문>을 인용한 <한겨레>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황 비서는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열린 국제학술 교류 행사에서 한반도 4자회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들은 중국을 제외한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으며, 3자회담은 십수년 전부터 해온 우리들의 구상으로 중국도 납득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 회의에 참석했던 사이타마대학의 요시다 야스히코 교수가 전했다."
 
 
 1997년 2월 18일자 <한겨레신문>.
 1997년 2월 18일자 <한겨레신문>.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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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부 인사인 황장엽이 '우리들은 중국을 제외한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하면, 누구라도 '김정일이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황장엽은 '김정일이 중국을 배제하고 싶어한다'는 메시지를 흘린 셈이 된다.

황장엽은 그런 외교기밀을, 하필이면 일본인 교수들한테 흘렸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중국과 경쟁 의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한테 기밀을 넘긴 것이다. 가장 빨리 소문을 퍼트릴 사람들한테 기밀을 제공한 셈이다.

뒤이은 김정일의 격노... 황장엽은 왜? 
  
언뜻 들으면, 황장엽이 김정일을 위해 정보를 흘린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외세의 숫자를 하나라도 더 줄이고 미국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려는 김정일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고자, 그가 기밀을 흘린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김정일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황장엽의 기밀 누출은 김정일의 격노를 초래했다. 위의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황장엽은 김정일한테 심한 질책을 받았다. 황장엽의 누설로 인해 자신의 의도가 너무 일찍 공개되고, 이로 인해 외교적 혼선이 빚어졌기 때문에 김정일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C 경우(기밀을 모두 공개하기)처럼, 김정일의 3자회담 구상이라는 외교기밀이 황장엽의 언론 유출에 의해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황장엽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1997년 2월 망명 뒤인 2006년에 펴낸 <황장엽 회고록>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을 싫어하는 김정일을 곤란케 하려고 그랬다는 게 분명히 드러난다.

기밀 누설 사건이 있기 직전인 1996년 여름, 김정일(당시 54세)의 반중국적 태도 때문에 황장엽(73세)의 자존심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 일화를 통해 김정일의 반중국 감정을 좀더 명확히 확인한 황장엽이, 국제 언론에 김정일의 반중국 입장을 흘려버린 것이다.

회고록에서 황장엽은 "1996년 여름, 나는 태국과 인도의 여러 정당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라고 한 뒤, 김정일의 반중국적 태도를 고려해 여행 경로를 잡았다고 말했다. 기차로 중국을 경유해 태국·인도를 방문하되,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지 않고 그냥 통과하기로 한 것이다.
 
"본래 나는 김정일이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특히 내가 중국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중국 측에 알리지 않고 그냥 태국과 인도로 떠난다는 것만 (중국 측에) 보고하자고 (나의 측근들에게) 주장했다."
 
그러자 노동당 국제부 중국담당 부부장이 제동을 걸었다. 중국을 통과하면서 중국 정부에 알리지 않으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부부장에 관해 황장엽은 "그는 나의 친중국적인 태도만 이해하고, 김정일이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를 전해들은 김정일은 다음과 같이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로 가는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가도록 여행 계획을 다시 짜시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일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 이론가인 황장엽이 김정일의 간섭 때문에 기차 여행 대신 비행기 여행을 택해야 했던 것이다. 황장엽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2011년 러시아 방문 당시의 김정일.
 2011년 러시아 방문 당시의 김정일.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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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에서도 드러나듯이, 1996년 당시 김정일은 중국을 더욱 더 싫어한 데 반해 황장엽은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4자회담을 3자회담으로 변형시키는 문제에 관해 김정일과 황장엽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다"라는 황장엽 발언 속의 '우리들'은 엄밀히 말하면 '황장엽 자신을 제외한 북한 지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들을 놓고 볼 때, 황장엽이 김정일의 의중을 국제사회에 퍼트린 의도를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김정일의 마음을 돌리기가 힘들기에, 국제 여론의 힘을 빌려 김정일의 계획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의 황장엽이 김정일을 꽤나 싫어했다는 점은 회고록의 또 다른 대목에서 표출된다. 외교기밀을 누설한 1996년 8월 그 달에 황장엽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1996년 8월 말, 나는 '조선문제'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남북관계에 관한 내 입장을 밝히고, 그에 근거해서 김덕홍이 우리의 망명을 남측과 교섭하도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글의 핵심은, 전쟁을 막고 김정일 체제를 최단기간 내에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을 밝히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제대로 투쟁하기만 한다면 5년 이내에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고 조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1996년 8월 당시의 황장엽은 북한 체제를 '최단기간 내에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을 글로 옮기고 있었다. 동시에 망명도 계획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점에, 그의 입에서 '우리들은 중국을 배제하는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다'는 발언이 흘러나와 김정일을 곤란케 만들었다. 김정일의 외교전략에 혼선을 주려는 의도가 황장엽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의 3자회담 구상을 저지하는 한편, 김정일이 싫어하는 중국을 4자회담 테이블에 앉히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일임을 알 수 있다.

강효상과 황장엽, 둘의 공통점

상황은 결국 황장엽의 바람대로 흘러갔다. 3자회담이 아닌 4자회담 쪽으로 상황이 굳어졌다. 다음해인 1997년 8월 5일 4자회담 예비회담이 열리고 그해 12월 10일 본회담이 열렸다. 김정일의 제안에 따라 3자회담으로 바뀔 수도 있었을 4자회담이, 황장엽의 기밀 누설에 어느 정도 힘입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 것이다.

강효상 의원의 기밀 누설과 황장엽의 기밀 누설은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서로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두 사람 다 '아직 살아 있는 외교기밀'을 누설했다는 점, 두 사람 다 '모두 공개'의 방법으로 외교기밀을 활용했다는 점, 두 사람 다 겉으로 표방한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자기 정부를 곤란케 할 만한 일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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