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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몇 페이지 읽다가 나는 곧바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85세 노학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며, 경험에서 묻어난 철학적인 통찰력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부의 날'인 5월 21일, 나는 아내가 하루 종일 검사와 진료를 받는 병원에 이 책을 들고 갔다. 그리고 아내가 진료를 받는 동안 병원 로비에 앉아 이 책을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갔다.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을 펴낸 85세의 노학자 이근후(이화여대 명예교수)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을 펴낸 85세의 노학자 이근후(이화여대 명예교수)
ⓒ 이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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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당뇨, 고혈압, 허리디스크, 통풍, 담석, 관상동맥협착증, 왼쪽 눈 실명 등 일곱 가지 병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두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2003년도에 생존율이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관상동맥협착증 수술을 받았고, 2013년도에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다시 깨어난다면 남은 생은 그야말로 덤이라고, 본전 생각에 아쉬워하거나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금야금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사회생으로 살아났지만 저자는 여전히 죽음이 낯설고 두렵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침침해져 컴퓨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건강의 상실은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심정으로 눈을 씻고 찾아보면 좋은 점들이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자신이 노인이 된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재간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숨어있는 재간을 찾아냈으면 서두르지 말고 '야금야금' 실천으로 옮기라고 충고한다.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야금야금' 하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야금야금은 여유로운 마음에서 비롯된다. 야금야금 행동한다는 것은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다. 여유롭게 과정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눈에 띈다. 새로운 발견이 늘어날수록 즐거움이 커지고, 즐거움은 꾸준함으로 이어진다. (p240) 
 
 <어차피 살러가면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메이든, 2019
 <어차피 살러가면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메이든, 2019
ⓒ 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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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년 이후에도 실제로 '야금야금' 즐기는 취미생활을 끊임없이 해왔다. 일흔이 넘어 고려사이버대학에 입학해 4년 동안 문화 공부를 했다. 공부가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2011년도에 고려사이버대학 최고령 졸업생이자 문화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 시를 너무나 좋아해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대신 한국문인협회로부터 '가장 문학적인 상'이라는 이상한 상을 받기도 했다. 그 상은 문학인이 아니면서 가장 문학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고 한다. 이 수상을 계기로 저자는 '시 낭송회'를 결성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20년 째 좋아하는 시나 자작시를 낭송하며 야금야금 즐기고 있다.

저자는 네팔에 드나들며 오랫동안 네팔 우표를 수집했다. 그리고 팔십이 넘은 나이에 우표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네팔 우표를 주제로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중 한 권은 2018년 방콕세계우표전시회 우취문헌부문에 입선하기도 했다.

그저 재미있게 배우고 가진 것을 나누고자 '야금야금' 시작한 취미활동이 출판과 수상까지 이어지는 영광을 안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작은 취미를 야금야금 즐기다 보니 어느새 여든다섯 살까지 살아오게 됐다고 한다.

배우자를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착각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부부의 날이 무색할 만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통계청이 공개한 2018년 우리나라 전국의 이혼 건수는 10만 8684건으로 전년대비 2.5%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혼인 기간이 20년 이상인 황혼 이혼이 3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고령화, 성격 차이, 소통 부재 등이 꼽힌다. 저자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들여다보며 '배우자를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다음 세 가지 처방을 내린다.
 
 아내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진작 파산을 했을 거라는 저자 이근후와 그의 아내 이동원. 저나는 배우자를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원한다.
 아내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진작 파산을 했을 거라는 저자 이근후와 그의 아내 이동원. 저나는 배우자를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원한다.
ⓒ 이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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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을 것 
둘째,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셋째, 말투를 조금만 바꿀 것.

저자도 한때 아내가 잔소리하면 "싫어", "몰라", "안 해" 등 이유도 달지 않고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다고 고백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남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숱하게 강조했지만, 유독 아내에게만 "싫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했음을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되었다고 실토한다. 그 후 저자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즉각 적용했다.
 
아내의 말을 무조건 들어 주자. 아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 그리고 말투를 바꿔보자. 나는 아내에게 "싫어"라는 말 대신 "안 돼요, 왜냐하면"으로 바꿔 말했다. 아내가 나를 쓱 한 번 보더니 이내 잔소리를 줄였다.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해도 안 되던 일이 존중의 태도를 보이니 수월하게 해결됐다. 부부관계는 이토록 오묘하다. (p.163)

나는 병원 로비에 앉아 이 대목을 읽으며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 부부간의 관계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이 딱 어울린다. 서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금방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도 저자처럼 "싫어", "몰라", "안 해" 라는 말을 꽤나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앞으로는 나도 저자처럼 아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말투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조건 감사하라

저자는 아내가 있기에 지금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지금 아내가 있다고 전한다. 저자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운 뒤 매우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런 데다 대학교 때 4.19 혁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감옥 생활을 한 뒤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어 취직도 쉽지가 않았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신혼여행은 텐트를 짊어지고 산으로 떠났다. 지독한 생활고에도 저자의 아내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네 아이를 키워냈다. 저자는 그런 아내의 눈물겨운 인내와 보살핌이 없었다면 진작에 파산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아내는 그렇게 부족한 남편과 왜 60년이나 살았을까? 저자는 6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연애편지를 쓰던 청년의 심정으로 돌아간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지금까지 살아준 배우자에게 무조건 감사하라고 조언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50년간 15만 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담겨 있다. 노학자의 통찰력으로 꿰뚫어 본 솔직하고 유쾌한 40가지의 철학적인 메시지가 백미다. 아흔을 목전에 둔 노학자는 교수도 의사도 아닌 그냥 할아버지 이근후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메시지를 유언처럼 전한다.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나,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마음껏 찾아보라고. 그리고 '야금야금' 사소한 기쁨을 잊지 않는 한 절대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이근후 (지은이), 메이븐(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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