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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를 찾아서 다시 코펜하겐으로

고태규의 유럽 자동차 집시여행
19.05.24 11:49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77일째: 5월 20일 (월) 바람 잔잔하고 맑은 날씨다
 
인어공주를 찾아서 - 코펜하겐
 
페리는 아침 9시 30분 스톡홀름 바르타항에 도착했다. 주차가 걱정되어 맨 앞에 서서 하선을 기다렸다. 서둘러서 주차장으로 갔다. 거의 뛰다시피 걸어갔다. 차는 무사했다. 마침 관리원이 주차 티켓 머신을 검사 중이었다. 다행히 주차 티켓은 검사하지 않았다. 그저께 배를 탈 때 그제 어제가 토요일과 일요일로 주차가 무료라서 티켓을 빼놓지 않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월요일이고 아침 10시경이니까 사실 한 시간 불법 주차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불법 주차 딱지는 100장을 끊어도 상관없는데, 차를 견인해 가버리면 골치가 아프다. 당장 벌금을 물고 차를 찾아와야 하니까. 딱지는 차주 주소가 내 주소인 서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안내면 그만이다. 나는 이번 90일 동안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속도위반을 50번 이상 했는데, 현재까지 서울로 날아온 딱지는 한 장도 없다.
 
코펜하겐으로 장거리 운전을 시작했다. 대강 660킬로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장거리 중 하나에 속한다. 목적지는 같지만 길은 다르다. 코펜하겐(정확하게는 헬싱보르그 항)을 역삼각형의 꼭지점으로 놓고 보면, 오슬로가 왼쪽, 스톡홀름은 오른쪽 꼭지점이다. 그 역삼각형의 오른쪽 변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E4번 고속도로는 4차선으로 지난 번 오슬로에서 스톡홀름으로 갈 때 고생했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경치도 좋았고 휴게소 등 기반 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시속 140-150킬로로 내달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옆 차선에서 아시안인 우릴 보고 깐족거리는 젊은 친구들과 스피드 경쟁까지 했다. 아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끝까지 했을 것이다. 어디에나 민도가 낮은 친구들은 있는 법이니까.

오후 5시경에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넘어갈 때 헬싱보르그에서 페리를 이용하지 않고 말뫼(Malmö)로 가서 오레슨트(Oresund)대교를 건넜다. 세상에 통행료가 무려 590크로네(약 12만원). 이 다리가 전장 16킬로(다리 12킬로, 터널 4킬로)로 길긴 하지만, 길이가 21킬로나 되는 우리 인천대교의 소형 승용차 요금이 5,800원인걸 감안한다면 비싸도 너무 비싼 것이다.
 
시내로 들어가서 바로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해변으로 갔다. 가이드북에는 썰렁하다고 표현했으나 그런대로 매력적이었다.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처럼 여기서도 광팬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어떤 청소년 두 명은 아예 동상 위로 올라가서 얼굴을 감싸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동상 자체는 별 의미가 없는 조각상에 불과하지만,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 공주>가 연결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관광객 유치에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입증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부근 공원에서 젊은 커플과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요즘 우리 막둥이(파피)가 엄청 보고 싶다. 지금 거의 80일째 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주말 부부다. 주중에는 내가 학교가 있는 춘천에 있는데, 수요일쯤 되면 마누라는 안 보고 싶어도 우리 강아지는 보고 싶어진다. 고녀석이 엄마 아빠도 없이 누나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잘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성 알반교회가 인상적이다. 작은 교회인데, 검은색 대리석을 담벼락 쌓듯이 아무렇게나 쌓아서 건물을 지었다.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멋진 교회다. 바로 옆에 있는 황소 동상 분수도 인상적이었다. 고개를 처박고 앞으로 돌진하는 황소 네 마리의 모습이 정말 힘차고 역동적이었다. 뉴욕 월스트리트 거리에 있는 황소만큼이나 역동적이다.
 
중앙역 앞 호텔에서 노상에 주차를 하고 호텔 로비로 들어갔더니, 호텔리어와 아내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아내 얘기는 예약한 방과 실제 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걸 모르고 예약을 했던 것이다. 호텔리어는 이코노미 룸에는 샤워실이 없고, 스탠다드 룸에만 있다면서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내가 어젯밤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흔히 인터넷 예약을 할 때, 가장 싼 가격을 초기 화면에 표시하는 경향이 많은데, 아내가 그것만 보고 덜컥 예약을 한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가는 크루즈 객실을 두 개나 예약한 것처럼. 아내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이럴 때 잘못 건드리면 큰 일 난다. 오늘 저녁에 조심해야지....
 
맞은 편 태국 음식점에서 똥냠꿍과 돼지고기 요리와 흰밥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뉘하운 항구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30분도 넘게 걸렸다. 길도 제대로 모르면서 왔다고 아내가 짜증을 낸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손님들도 별로 없고 썰렁하다. 며칠 전에 우리가 지나가면서 볼 때는 사람들이 엄청 복작거리더니.... 운하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와인 한 잔씩 마시고 호텔로 귀가했다. 밤바람이 추워서 더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이런 추위에 약하다. 서울에서는 아내가 이렇게 추위를 타는지 몰랐었다.
 
티볼리파크 앞에서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져 호텔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사진은 야경이 더 멋있게 나오기 때문에 밤에 찍는 게 좋다. 아내가 위험한 곳에 여자 혼자 놓아두고 나간다고 뒤통수에 대고 투덜댄다. 그래도 마누라 때문에 여행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못들은 체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돌아와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 호텔 예약 문제로 드디어 아내가 폭발했다. 내가 늦게 들어온 것과 아까 호텔리어와 싸울 때 자기편을 안 들어준 것에 대해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더 이상 당신 같은 불한당과는 절대 여행을 안 할 거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오늘 저녁에 호텔리어와 다툴 때부터 쌓인 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한 번도 자기편이 안 되어 준다고. (당연하지 그러니까 '남의 편' 즉 '남편'이지. 이 아줌마는 인테넷에 떠도는 말도 모르나?). 마누라가 다른 사람과 싸우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마누라 편을 들어야지, 마누라가 예약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면서 호텔리어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기를 호텔에 혼자 두고 너무 늦게 들어오고. 아내는 내 죄목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내가 경솔했다. 아내가 이렇게 화가 나 있을 때는 무조건 마누라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건데....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 늦게 들어 온데다가, 아내와 싸우고, 여행기 원고 정리까지 마쳐야 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내일도 거의 600킬로가 넘는 장거리 운전인데 잠을 못자서 걱정이다. 코펜하겐과는 호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지난주에도 코펜하겐을 거쳐 갈 때 방이 없어서 밤새 호텔 찾느라 애를 먹었는데, 오늘은 예약 문제로 또 애를 먹인다. 나까지 덤으로 화풀이를 당했다.
 
*주행 및 숙박 내역
 
주행 경로: E4
주행코스: 스톡홀름-코펜하겐
주행거리: 660km
주행시간: 7시간
도로유형: 고속/무료
숙박(유로): Missions H(68)
주차장(유로): 노상/유료
아침식사: 별도
인터넷: 무료
 

태그:#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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