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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 - 기자 주

최근 정보경찰과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보경찰은 서울시장 선거 때 나경원 후보의 비선캠프를 자임했고, 대통령 신년운세를 보기 위해 유명 점집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또 세월호 특조위를 사찰하고 제압하는 방안이나 삼성서비스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몰했다. 모두 범죄 예방 및 수사라는 경찰 본연의 직무를 벗어난 일이다.

공익성이 강한 경찰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경찰이 정보를 다룰 때 느슨하게 통제해 왔다. 정보경찰 문제는 경찰이 범죄예방을 이유로 소위 '치안' 정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범죄예방이 아닌 수사는 어떨까? 범죄수사라는 공익을 위해서라면 경찰이 모든 사람의 모든 정보를 무제한으로 수집할 수 있어야 할까? 2018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 한계의 문제를 다루었다.

경찰과 국민의 개인정보

통신비밀보호법 등 몇몇 법에서는 수사기관이 통화내역, 금융정보 등 민감한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거나 주거지 등에 보유된 정보를 압수수색하는 경우에 법원의 허가나 영장으로 통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아이디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수집할 때나 그 밖의 많은 정보를 수집할 때 사실 경찰은 거의 통제받고 있지 않다. 특히 공공기관이 보유한 자료에 대해서 경찰은 자기 기관 정보인양 자유롭게 제공받아 왔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2011년 '개인정보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경찰의 관행은 그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열일곱 살에 주민자치센터에서 찍은 열손가락 지문정보가 경찰로 넘어가서 평생 이용될 때 우리 사회는 법률적으로 아무런 통제를 하고 있지 않다. 또 누군가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경찰은 그 사람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행적을 사실상 모조리 추적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헌법재판소가 일찍이 인정한 바대로, 공공과 민간 데이터베이스가 분산되어 있어도 주민등록번호가 이 개인정보들을 통합검색하는 '연결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를 88바이트(byte) 암호로 변환한 '연계정보'(CI 번호)도 마찬가지다. 지금 경찰은 주민등록번호의 가명이라 할 CI 번호를 이용해 모든 인터넷서비스에서 국민 누구의 정보라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다.

파업 철도 노동자를 추적하기 위해
 
유리깨고 진입하는 경찰병력 지난 2013년 12월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리깨고 진입하는 경찰병력 지난 2013년 12월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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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2일, 경찰이 무력으로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건물에 진입했다. 쇠망치와 최루액이 동원되었다. 이른바 '망원'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그 건물에 은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철도 노동자를 체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영화를 반대했던 철도 파업은 몇 년 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철도파업이 사전에 예고되어 철도공사가 예측 및 대비를 할 수 있었으므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찰의 폭력적인 민주노총 수색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경찰에게 파업 노동자는 흉악한 수배자일 뿐이었다. 경찰은 디지털 시대 가능한 추적 수법을 총동원했다.

경찰은 우선 일부 철도 노동자들과 초등학생을 포함한 그들 가족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계정에 대해 위치를 추적하였다. 통신사와 인터넷 포털, 은행, 인터넷쇼핑, 게임 사이트들은 한 달 혹은 두 달 내내 대상자의 위치를 경찰에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철도 노동자와 통화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전화해서 관계를 캐물었다. CCTV와 연결된 차량번호 검색시스템을 이용해서 지난 6개월간 노동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차량으로 이동한 경로를 추적했다.

경찰은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건보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교육청 등 공공기관도 동원했다. 철도 노동자와 그 가족의 병원진료내역과 직업 및 학교 정보를 요청하여 제공받은 것이다. 경찰이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의 부인과 장모의 직업을 살펴보고 임신한 부인의 진료기록까지 제공받았던 것은 역시 수배 중인 노동자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결국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가 경찰에 제공된 목적은 철도공사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죄명으로 수배 중이었던 파업 노동자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때 경찰이 건보공단에 요청한 개인정보 중 병원 방문일자, 병원명, 병명 등의 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에 속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건강정보처럼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보공단은 철도노조 위원장의 2년간 건강보험기록 44회분을 경찰에 제공하였다. 수석부위원장의 경우 3년간 38회분 기록을 제공하였다. 영장은 없었다.

건보공단은 이때뿐 아니라 연간 100만 건에 달하는 요양급여내역 정보를 같은 방식으로 경찰에 제공해 왔다. 2014년 10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의 검경 제공 규모가 4년 6개월 동안 435만1507건에 달했다. 연 평균 1백만 건의 건강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된 셈이다. 반면 법원의 허가로 통제받고 있는 계좌추적의 경우 연간 34만8000건, 통신감청의 경우 2492건에 그쳤다. 김용익 의원은 건강정보 역시 금융정보나 통신내용 만큼 민감한 정보임에도 아무런 통제가 없는 탓에 계좌추적의 2.8배, 통신감청의 389배에 달했다고 비판했다.

경찰과 건보공단은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2항과 경찰관직무집행법 제8조 제1항,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를 들어 개인정보 수집과 제공이 적법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7호는 "범죄의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제한 없이 경찰에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경찰의 밀월 관계는 디지털 시대 수사 편의를 크게 증가시켰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의 제정 취지에 역행한다. 심지어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아도 수백 명, 때로 수만 명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엑셀 자료를 공공기관에서 통째로 제공받는 저인망식 경찰 수사가 횡행하고 있다.

경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낙서한 기초수급자를 찾는다며 관내 모든 기초수급자 정보를 구청으로부터 통째로 제공받기도 했다. 인천과 김포에서는 부정수급자를 찾아낸다며 관내 모든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정보를 통째로 제공받았다. 경찰은 이런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제공받아 '먼지털이식 수사'로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혀 왔다.
 
 2014년 5월 13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2014년 5월 13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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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철도 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은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도움을 받아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용산경찰서와 건보공단이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고민이 되었는지 2016년 6월 공개변론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8월 30일 헌재가 결정을 선고했다. 위헌이었다.

민감정보의 경찰 제공은 위헌, 그러나

헌재는 수사에 불가피하지 않은 민감한 요양급여내역을 건보공단이 경찰에 제공한 행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였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경찰의 막연한 요청만으로 공공기관들이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해 온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특히 헌재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민감정보로서 특별히 보호하는 건강정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
 
"이중 상병명은 그 자체로 개인의 정신이나 신체에 관한 단점을 나타내기 때문에 인격의 내적 핵심에 근접하는 민감한 정보에 해당한다. 그 외에 누가, 언제, 어디에서 진료를 받고 얼마를 지불했는가라는 사실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의 비밀일 뿐 아니라, 요양기관이 산부인과, 비뇨기과, 정신건강의학과 등과 같은 전문의의 병원인 경우에는 요양기관명만으로도 질병의 종류를 예측할 수 있고, 요양급여횟수, 입내원일수, 공단부담금, 본인부담금 등의 정보를 통합하면 구체적인 신체적·정신적 결함이나 진료의 내용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거의 모든 국민의 국민건강보험에 관한 방대한 정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집적되고 있으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처리하는 요양급여정보는 개별적인 요양급여내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보주체의 건강에 관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정보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헌재가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7호 정보제공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를 각하한 것에는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이 정보제공을 요청했을 때 그 제공 여부는 순전히 건보공단 등 제공기관의 재량에 달린 문제라고 본 것이다. 경찰의 요청은 강제력이 없는 임의수사에 해당하므로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도 보았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막대한 정보를 경찰이 제공받는 데 대해 법률적으로 아무런 요건을 마련하지 않고 절차도 통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정보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은 2016년 경찰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지침(일명 '경찰 지침(police directive)'이라고 한다)을 제정하고 각국 정부가 관련 법률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경찰이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개인정보 보호원칙을 준수하도록 하였다. 눈에 띄는 부분은 경찰 역시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 독립적인 감독도 받도록 한 것이다. 한국 경찰이 범죄수사를 위해 유럽 경찰기관과 개인정보를 주고받으려면 그 관행이 이 기준에 적정하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경찰의 개인정보 처리 관행이 원칙에 부합하고 누군가 이를 독립적으로 감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헌재가 이런 규범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인지도 모른다.

위헌 결정 후 2018년 10월 건보공단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위헌 결정 취지에 맞게 민감정보 범위를 검토하여 질병종류와 건강상태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까지 확대하고 수사기관 등에 대한 정보제공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의 자료가 제공되도록 '외부기관 개인정보자료 제공지침'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지침은 아직 개정되지 않았다.

경찰의 개인정보 처리, 법적 통제 필요하다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사기관 제공 문제를 언제까지 제공기관의 재량 문제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이번 사건에서 정보제공조항 뿐 아니라 사실조회행위, 사실조회 근거조항에 대해서 헌재가 모두 각하한 이유는 강제수사가 아니었고 제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을 만큼 배포 큰 공공기관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정부 경찰은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넷 글을 올리거나 집회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을 지독히도 괴롭혔다. 인터넷을 감시하고 집회를 채증하고 국민을 사찰하고 탄압하기가 일제 강점기 순사나 비밀경찰과 다를 바 없는 경찰의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렵다. 경찰이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한계를 설정해야 할 때이다.

특히 공공서비스를 위하여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국민 개인정보를 경찰이 언제든지 제한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면, 경찰이 국민을 사찰하고 정당한 권리 행사를 탄압하는 일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헌재는 건강정보의 민감성에만 주목한 듯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모든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경찰에 제공하도록 한정하는 요건과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경찰이 건강정보를 비롯해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등 우리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민감정보를 제공받거나 대규모로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때는 법원의 영장에 의한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경찰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해 독립적인 기구의 감독 또한 받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 갈수록 막강해지는 수사기관의 권력과 국가 감시로부터 국민의 정보인권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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