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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인디언 속담 

지난 3월 19일 서울에 있는 21년 전 제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 광주에서 야외 결혼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2년 전 추석에 내려와서 만났던 제자입니다.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랑 결혼하게 되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기쁨을 전했습니다. 홀로서기를 하면서도 유난히 밝고 따뜻했던 소녀는 딸처럼 친근했기에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자식이 잘 되길 비는 마음은 어버이의 마음과 다를 바 없으니.

"축하한다! 잘 되었구나!"
"그런데요, 선생님. 저희는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을 해요. 양가 부모님이 모두 시골에 계시거든요.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주례를 서 달라고? 요즈음은 안 하는데."

"저흰 주례 없이 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래서 성혼선언문과 축사를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해주실 수 있나요?"
"그럼, 당연히 해주어야지. 내가 가르친 제자끼리 결혼하는데 이렇게 기쁜 일을 어찌 마다할까?
"고맙습니다. 다음에 내려가서 자세한 말씀 드릴게요."


"아니아니, 둘 다 직장인인데 일부러 내려오지 말고 결혼식 당일 봐도 돼요."
"그건 예의가 아니지요. "
"괜찮으니 결혼 준비에 신경 쓰고 내겐 부담 느끼지 말아요."
"정말 그래도 돼요?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제자끼리 결혼한다는 기쁜 소식에 엉겁결에 부탁을 들어주고 말았지만 행복한 일이 분명했습니다. 21년 전 담양동초등학교에서 6학년 39명을 가르치며 인연을 맺은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성실하게 노력하며 공부를 좋아하는 부부로 만났으니 지혜로운 가정을 꾸리리라 확신합니다.

38년 교직생활을 뒤로 하고 허전하던 참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구의 선생님도 아닌, 자연인으로 돌아와서 교실 밖 인생을 보내는 게 낯설던 참이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음에도 습관처럼 새벽에 일어나고마는 내 모습에 한숨이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쉬는 것이 어색하고 뭔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불안하던 참이었습니다.

어린이날 결혼하는 제자 부부를 위해 성혼선언문을 작성하고, 축사 원고를 쓰며 설렜습니다. 양가에 축의금을 드리는 기쁨도 선생이라서 맛보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홀로 막내 아들을 기른 신랑 어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축사를 부탁했던 신부 어머니께서 내미는 사례를 거절하는 게 무척 힘들었던 게 옥에 티였을 뿐. 저는 어느 해보다 아름다운 5월을 보냈습니다. 내게 늘 감사했다는 신부 어머니의 진심어린 인사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21년 전 담임 선생님에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도록 초대해 준 제자 부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빌었습니다. 아니,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처음 마음을 회복하는 지혜로운 부부가 되기를 당부했습니다.

축사와 성혼선언문을 곱게 만들어 담아주며 부탁했습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꺼내 보라고.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주렴! 축하하고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교닷컴과 전남교육소식에도 실립니다.


태그:#제자 부부 결혼식, #교육, #축사, #인생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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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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