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사랑이 뭐길래> <허준> <대장금> <주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MBC는 '드라마 왕국'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방송국이었다. 2010년대 이후에도 <최고의 사랑>이나 <해를 품은 달> 같은 히트작을 꾸준히 배출하며 '드라마 왕국'의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MBC 드라마는 케이블과 종편의 약진, 내부 파업 등의 악재를 겪으며 최근 급격히 힘을 잃고 말았다. 

지상파 드라마의 침체는 비단 MBC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MBC 드라마, 특히 수목 미니시리즈의 경우엔 이제 두 자리 수 시청률을 넘는 작품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실제로 작년 한 해 동안 MBC에서 방송된 수목드라마 중에서 시청률 10%를 넘긴 작품은 소지섭이 나왔던 <내 뒤에 테리우스>가 유일했다. 6년 만에 MBC 드라마에 컴백한 김선아의 신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붉은 달 푸른 해>도 마지막회 시청률이 5.3%에 불과했을 정도다. 유동근, 김상중, 채시라 등 '대상 배우'들을 캐스팅한 <더 뱅커>조차 최고 시청률 7%에 그치며 아쉬운 성과로 종영했다. 

MBC는 수목드라마 부활을 위해 2003년 '프리'를 선언했던 안판석 PD를 <하얀거탑> 이후 12년 만에 다시 불러 왔다. 지난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함께 만들었던 김은 작가와 배우 정해인 역시 안판석 PD의 신작 <봄밤>에 합류했다. 그리고 작년 청룡영화제와 올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휩쓸었던 한지민도 <봄밤>을 통해 11년 만에 MBC 드라마로 컴백한다.

<올인>에서 송혜교 아역으로 데뷔해 꾸준히 쌓은 커리어
 
 첫 주연작에서 쓴 맛을 본 한지민이 차기작으로 <대장금>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첫 주연작에서 쓴 맛을 본 한지민이 차기작으로 <대장금>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 MBC 화면 캡처

  
중3때부터 잡지모델과 광고모델 활동을 병행하던 한지민은 2003년 SBS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캐스팅되며 배우로 정식 데뷔했다(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성인배우' 송혜교와 '아역배우' 한지민의 나이 차이는 한 살에 불과했다).

한지민은 <올인>이후 MBC 드라마 <좋은 사람>에서 여주인공에 캐스팅됐지만 경험 부족을 깨달으며 조연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지민의 다음 작품이 바로 '국민 드라마' <대장금>이었다. <대장금>에서 여리지만 좋은 품성과 뜻밖의 실력을 가진 의녀 신비를 연기한 한지민은 다부진 연기로 많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는 2005년 KBS 드라마 <부활>의 여주인공 서은하역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부활>은 <내 이름은 김삼순>에 밀려 방영 초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김삼순> 종영 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22.9%의 시청률로 '부활'한 드라마다. 한지민은 <부활>의 서은하역을 통해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과 베스트커플상을 받았다. 2006년 <늑대>의 조기종영, <무적의 낙하산요원>의 낮은 시청률로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던 한지민은 2007년 <이산>의 성송연 역으로 데뷔 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9년 <카인과 아벨>에서 탈북 새터민 영지를 연기한 한지민은 영화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로 470만 관객을 모았고 2011년에는 노희경 작가의 <빠담빠담>에 출연했다. 2012년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커플상을 받은 한지민은 이후 <플랜맨> <역린> <장수상회>에 잇따라 출연하며 한동안 영화에 전념했다.

2015년에는 3년 만에 <하이드 지킬, 나>를 드라마 복귀작으로 선택했는데 현빈과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것과는 별개로 시청률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6년 김지운 감독의 <밀정>과 허진호 감독의 단편영화 <두개의 빛: 릴루미노> 이후 공백기를 가졌던 한지민은 2018년 여름 엄마 연기에 도전했다. <올인>에 함께 출연했지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지성과 15년 만에 재회한 <아는 와이프>였다.

최정점 찍고도 부지런한 활동과 선행 이어가는 무결점 배우
 
 9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쓴 <미쓰백>의 백상아는 한지민의 '인생 캐릭터'였다.

9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쓴 <미쓰백>의 백상아는 한지민의 '인생 캐릭터'였다. ⓒ 리틀빅픽처스

 
<아는 와이프>는 한지민에겐 꽤나 큰 '도전'이었다. 데뷔 후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를 유지해온 한지민이 억척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지민은 뛰어난 몰입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아는 와이프>는 8%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한지민의 '인생작'은 <아는 와이프> 이후에 찾아왔다. 약 16억 원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 <미쓰백>이었다.

작년 10월에 개봉한 <미쓰백>에서 한지민은 스스로를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돼 외롭게 살아가다가 자신과 닮은 아이 지은을 만나는 백상아를 연기했다. <미쓰백>은 폭발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꾸준하게 입소문을 타며 손익분기점(70만)을 돌파하는 잔잔한 이변을 일으켰다. 특히 한지민은 <미쓰백>을 통해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을 포함해 무려 국내외 9개 영화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 16년 만에 배우로서 최전성기를 맞은 한지민은 한 박자 쉬어갈 법도 할 타이밍에서 곧바로 신작에 들어갔다. 국민배우 김혜자와 2인1역으로 출연한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였다. <눈이 부시게>는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오가는 극적인 진행과 시간이동능력을 가진 혜자를 연기한 김혜자와 한지민이 선보인 발군의 연기로 최고 9.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김혜자는 <눈이 부시게>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한지민은 <눈이 부시게>가 끝난 지 두 달 만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제작진, 배우들과 만나 신작 <봄밤>으로 돌아온다. 한지민은 <봄밤>에서 신중한 성격의 도서관 사서 이정인을 연기할 예정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과 좋은 호흡을 보였던 정해인이 동갑내기 약사 유지호를 연기할 예정이다(극 중에선 동갑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한지민이 정해인보다 6살 누나다).

한지민은 배우 데뷔 후 각종 연기대상과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아왔지만 꾸준한 선행과 봉사로도 널리 알려졌다. 얼마 전에는 데뷔 초기의 뉴스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제작진은 한지민을 '봉사하는 연예인'으로 소개할 예정이었지만 한지민은 학교 봉사활동이기 때문에 대학생으로 나가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신인배우로서 대중들에게 이미지가 좋아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한지민은 봉사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한지민은 작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모 헌시를 낭송했는데, 5분에 달하는 꽤 긴 내용을 거의 암기해 차분한 목소리로 헌시를 낭송하며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지민은 주연과 조연,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상대배우와 스태프를 배려하는 연기자로 정평이 나 있다. 해가 바뀐 후에도 힘을 쓰지 못하는 MBC 수목 드라마가 새삼 기대되는 이유다.
 
 한지민은 작년 여름부터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무려 세 편의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한지민은 작년 여름부터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무려 세 편의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 <봄밤> 홈페이지

한지민 미쓰백 봄밤 눈이 부시게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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