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2년 동안 33승을 올리며 LA 다저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활약하던 2000년과 2001년 다저스에는 토드 헌들리와 폴 로 두카라는 뛰어난 포수가 있었다. 헌들리는 뉴욕 메츠 시절이던 1996년과 1997년 41홈런과 30홈런을 기록했던 '거포형 포수'였고 로 두카 역시 훗날 올스타전에 4번이나 출전했을 정도로 출중한 안방마님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박찬호가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에 헌들리, 로 두카가 마스크를 쓰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박찬호에게는 그의 공을 전문으로 받아준 채드 크루터라는 '전담포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산 타율 .237에 불과한 크루터는 전성기가 지난 후 사실상 박찬호 덕분에 빅리거 생활을 연장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2003년에는 박찬호를 따라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을 정도.

반면에 류현진은 빅리그에서 포수를 가리지 않았다. 빅리그 초기 A. J. 엘리스와 좋은 호흡을 보였던 류현진은 어깨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도 주전 야스마니 그랜달(밀워키 브루어스), 백업 오스틴 반스를 전혀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의 류현진에게는 전담포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5월 들어 4경기에서 32이닝 1실점(평균자책점 0.28)을 합작하고 있는 베테랑 포수 러셀 마틴과 워낙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스타 4회 출전에 빛나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베테랑 포수
  
 19일(현지 시각) 미국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2019 미국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LA 다저스의 포수 러셀 마틴이 홈런을 치고 동료들과 자축하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미국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2019 미국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LA 다저스의 포수 러셀 마틴이 홈런을 치고 동료들과 자축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토론토에서 태어난 캐나다 출신의 마틴은 박찬호가 텍사스로 이적한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7라운드로 다저스에 지명됐다. 다저스 입단 후 4년의 마이너 생활을 거친 마틴은 2006년 빅리그에 데뷔해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타율 .282 10홈런 65타점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마틴은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9위에 올랐는데 당시 신인왕 수상자가 다저스에서도 2년 반 동안 활약했던 헨리 라미레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다.

마틴은 2007년 타율 .293 19홈런 87타점 21도루의 성적으로 생애 첫 올스타 출전과 함께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를 휩쓸며 빅리그 데뷔 2년 만에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로 떠올랐다. 2008년에도 2년 연속 올스타 무대를 밟은 마틴은 2010년까지 다저스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다가 2010년 12월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당시 양키스는 베테랑 포수 호르헤 포사다가 선수 생활 말년에 지명타자로 이동하며 새로운 포수가 필요했고 이제 막 전성기에 돌입하는 만 28세의 젊은 포수 마틴은 그 적임자였다. 마틴은 양키스 이적 첫 해였던 2011년 18홈런 65타점을 기록하며 3년 만에 다시 올스타에 선발됐다. 마틴은 2012년에도 21홈런을 터트리며 장타력을 갖춘 포수로 명성을 얻었다. 

양키스와의 계약기간이 끝난 마틴은 2012년11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2년 150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다시 내셔널리그로 컴백했다. 마틴은 피츠버그에서 활약한 2년 동안 238경기에 출전해 2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제 몫을 해냈다. 배리 본즈가 활약하던 1992년을 끝으로 20년 동안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하던 피츠버그 역시 마틴이 활약한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마틴이 다저스와 양키스, 피츠버그를 오가며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자 FA 시장에서 마틴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그리고 1992년과 1993년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1년 동안 가을야구와 인연을 맺지 못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마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마틴은 토론토와 5년 8200만 달러(한화 약 978억 원)의 거액에 장기계약을 맺으며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올 시즌 마틴과 호흡 맞춘 5경기서 4승 기록한 류현진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의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원정경기에서 류현진이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의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원정경기에서 류현진이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마틴은 토론토 이적 첫 해 23홈런 74타점으로 생애 4번째 올스타 무대를 밟으며 토론토를 22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타율은 .231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20홈런74타점으로 하위타선에서 만만치 않은 장타력을 뽐낸 2016년에도 토론토는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마틴의 급격한 '에이징커브(노쇠화에 따른 성적하락)'가 시작됐고 토론토의 '가을나들이'도 막을 내렸다.

2017년 91경기에서 타율 .221 13홈런 35타점에 그친 마틴은 작년 시즌 90경기에서 타율 .194 10홈런 25타점으로 빅리그 데뷔 13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토론토 입장에서도 작년에 데뷔한 유망주 대니 잰슨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상황이라 1년 계약이 남아 있던 고액연봉자 마틴은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토론토는 지난 1월 다저스로부터 마이너리거 2명을 받는 조건으로 마틴을 다저스로 트레이드시켰다.

그랜달과의 재계약이 무산된 다저스는 지난 겨울 스토브리그에서 올스타 포수 J.T.리얼무토(필라델피아 필리스) 영입마저 실패하며 포수 강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고 전성기가 지난 만 36세의 노장 마틴은 그랜달의 대안이 되기엔 한참 부족한 카드였다. 결국 다저스는 작년 그랜달의 백업이었던 반스를 주전포수로 내세우며 '반스 주전, 마틴 백업' 체제로 시즌을 시작했다.

올 시즌 다저스의 백업포수로 활약하고 있는 마틴은 17경기에서 타율 .261 2홈런 3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백업포수로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특히 마틴은 올 시즌 류현진과 매우 뛰어난 호흡을 자랑하고 있다 류현진은 올해 마틴과 배터리 호흡을 맞춘 5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11(40.2이닝 5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마틴은 20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8회 승부에 쐐기를 박는 솔로 홈런을 터트리며 타석에서도 '몬스터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통산 수비율 .993을 자랑하는 듬직한 포수이면서도 다재다능한 능력을 겸비한 마틴은 빅리그에서 중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던 경험이 있다. 심지어 지난 3월3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경기에서는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퍼펙트로 막기도 했다. 물론 전성기가 지난 마틴이 풀타임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류현진과 이렇게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면 한동안 류현진 선발 경기에서 주전 포수는 마틴의 몫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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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LA 다저스 류현진 러셀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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