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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한때는 생소했던 단어 퍼실리테이터, 퍼실리테이션이라는 용어는 이제 소통과 회의, 토론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용어가 되고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는 단어는 이해하기 어렵다. 왜 굳이 한국어로 해석하지 않고 영어 그대로 퍼실리테이터라는 어려운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일까?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의 언어적 의미는 '촉진'이다. 그 그룹(집단)이 원하는 바를 쉽게 달성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를 촉진자, 토론/회의 이끔이, 중재자, 진행자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전문가들은 적절한 한국어를 찾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과 실행에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이며 어떠한 편견도, 선입견도 오해도 가져 오지 않는 가장 적절한 한국어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어 그대로 사용하여 퍼실리테이터가 가진 역할과 의미를 왜곡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퍼실리테이션은 뭘 하는 것이고 퍼실리테이터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듣고 나누고 취합하기 위해서 많은 회의와 토론을 한다. 하지만 효율적이지 못했다. 의견을 나누기 위해 모였지만 의견을 내기 어렵거나 의견을 내지 않거나 의견을 내면 심한 갈등으로 이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모두가 잘해 보자고 모였지만 그 목적이 대립적이거나 이해 관계가 상반되면 합의에 도달하기는 더욱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많은 기관과 조직에서 퍼실리테이션을 활용하고 퍼실리테이터에게 그 진행의 역할을 맡긴다. 

'돌멩이 수프'라는 이야기 책을 한번쯤 읽었거나 이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면 지나가는 나그네는 배가 고파 어느 마을에서 먹을 것을 동냥해 보지만 아무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가진 것 조차 점점 더 꼭꼭 숨겨 놓는다. 그러자 나그네는 묘책을 낸다. 돌멩이 수프를 끓인다고 쇠솥을 빌려 달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빌려준 커다란 쇠솥에 큰 돌멩이 세 개를 넣어 끓인다. 그리고는 다른 야채를 넣어야 제 맛이라고 사람들이 자기집에 숨겨 뒀던 음식의 재료들을 하나씩 가져 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야채를 가져오기도 하고 소금 후추를 가져오기도 하고, 보리와 우유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끓인 신기한 수프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눠 먹는다. 

퍼실리테이터란 이 나그네가 한 역할과 비슷하다. 그리고 수프를 완성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재료를 가져오고 수프가 완성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퍼실리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나그네는 퍼실리테이터로 서로 갈등하거나 소통하지 않는 마을에서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돌멩이 수프라는 목표를 세우고 사람들이 가진 각각의 재료, 즉 의견을 취합한다. 

수프를 끓이는 커다란 솥은 그들이 함께 모여 토론이나 회의를 하는 원탁이나, 회의실, 그리고 돌멩이는 퍼실리테이션 과정에 사용하는 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돌을 써서 그들을 더 많이 참여 하도록 할 것인가에 따라서 돌멩이 수를 정할 수도 있고 크기를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서로간에 내어 놓지 못했던 의견과 생각들을 기꺼이 내어 놓게 도와준다. 퍼실리테이터라고 할 수 있는 나그네는 소금이라는 작은 재료나 고기 한 덩이라는 큰 재료나 상관 없이 기꺼이 그 재료(의견)를 내어 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누군가는 부족하여 소금 밖에 없고 누군가는 커다란 고기덩어리를 내어 놓는다면 갈등적인 상황에 있을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퍼실리테이터는 중립성을 기반으로 어떠한 재료이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동등하게 다룰 수 있도록 인지시킨다. 그리고 누구든 부족한 살림에서 내어 놓는 소중한 재료들을 기꺼이 서로가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수프라는 음식은 어떤 재료가 얼마만큼 들어가는지 정확하게 드러나는 요리가 아니다. 모든 재료가 원형을 알아 볼 수 없이 곱게 녹아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이 된다. 맛은 각각의 재료보다 더 풍부해지고 풍성해진다. 완성된 수프는 쉽게 공평하게 나누고 누릴 수 있는 반 액체 상태의 음식이다. 공동체가 가진 개별의 의견과 역량들이 만들어낸 멋진 결과물이다. 

결국 사람들이 가진 서로 다른 재료(의견)을 통해서 수프(합의)라는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수프를 통해서 더하고 나누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마을 사람들은 경험한다. 그들이 바라던 거였지만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최선의 합의 과정을 지원하고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 퍼실리테이션이다.

사실 돌멩이수프 이야기에서 나그네는 수프를 끓이기 위한 환경만 만든다. 솥도, 재료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가져온 것이다. 참여자들이 스스로가 펼쳐놓은 솥이라는 판에서 각자의 의견이 취합되어 어떤 합의점과 어떤 결과물이 도출 되는지를 스스로 경험하게 된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수프라는 결과물을 통해서 함께 먹고 행복해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은 퍼실리테이션의 효과를 느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참여자로서 본인들의 의견을 나누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더 깊고 확장된 관점과 숙의를 경험한다. 이 동화책에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떠나는 나그네에게 퍼실리테이터가 듣고 싶은 최고의 작별 인사를 한다.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아주 귀한 걸 배웠어요."

덧붙이는 글 | 바꿈 홈페이지에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공론장, #시민, #참여, #토론, #퍼실리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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