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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설악 만물상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 남설악 만물상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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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계령 눈 덮인 한계령을 넘을 때면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사진제공 정덕수)
▲ 겨울 한계령 눈 덮인 한계령을 넘을 때면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사진제공 정덕수)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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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약수터 입구 삼거리에서 본 한계령 휴게소 한계령 휴게소는 1979년 류춘수(현 이공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설계하였으며 1982년 완공과 함께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 필레약수터 입구 삼거리에서 본 한계령 휴게소 한계령 휴게소는 1979년 류춘수(현 이공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설계하였으며 1982년 완공과 함께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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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설악은 연한 녹차 빛이다. 겨우내 혹한의 바람과 눈 속에 제 몸을 가두었던 산은 이제 막 선정 삼매에서 깨어난 선승처럼 그 모습이 청정하고, 계곡마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혼탁한 세상을 일깨우는 법문인양 그 소리가 우렁차다.

오색에서 차를 내려 약수터와 성국사 삼층석탑을 돌아본 후 다시 한계령 휴게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걸어서 간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걸어서 한계령에 올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다음 두 편의 시 때문이었다. 하나는 가수 양희은이 불러서 유명해진 '한계령'이라는 시이고, 다른 하나는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이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로 시작하는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는 출발부터가 도발적이다. 현재의 사랑이 아니라 과거의 사랑, 물론 지금껏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니 현재진행형인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게 가슴 속에 꼭꼭 담아두고 있는 못 잊을 사람과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 그 폭설에 갇혀버렸으면 좋겠다는 이 발칙한 상상은 유쾌, 상쾌, 통쾌의 수준을 넘어 그동안 단단히 막혔던 가슴을 일순간에 뻥 뚫리게 만드는 극강의 마력을 지녔다. 비록 사랑지상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사랑 한 번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지나간 추억들을 더듬으며 지친 다리도 쉴 겸 길옆 벤치에 앉아 흐르는 땀을 씻으니 멀리 만물상이 눈앞에 선명하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 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어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갖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리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 문정희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 전문(『고요아침』2018년 여름호 인용)
 

문득 "두두두두두..." 하는 굉음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한 무리의 오토바이 편대가 위쪽으로부터 내려온다. 흡사 봄밤의 달콤한 꿈을 깨운 것 같아 아쉬웠으나 손을 흔들어 외로운 길손을 응원해주는 따뜻한 정의(情誼)에 금세 마음이 풀어진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오르며 보니 사방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정조 3년(1779) 3월, 설악산에 오른 양양부사 정범조는 설악산의 여러 봉우리를 보고, 어떤 것은 고니가 활짝 날개를 펼친 것 같고, 어떤 것은 검을 꽂아놓은 듯하며, 또 어떤 것은 연꽃봉우리를 닮았노라고 멋스럽게 표현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천재적인 시인이라도 이곳 설악의 연봉들 앞에서는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서북주릉 서북주릉(西北紬綾)은 설악산의 서쪽끝에 있는 안산에서 시작되어 대승령, 귀때기청봉을 지나 중청봉으로 이어지는 약 13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설악산에서는 능선으로서는 가장 긴 구간이다. (사진제공 정덕수)
▲ 서북주릉 서북주릉(西北紬綾)은 설악산의 서쪽끝에 있는 안산에서 시작되어 대승령, 귀때기청봉을 지나 중청봉으로 이어지는 약 13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설악산에서는 능선으로서는 가장 긴 구간이다. (사진제공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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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녹차아이스크림봉 한 스푼 떠먹으면 금방 더위가 싹 가실 것만 같다.
▲ 이름하여 녹차아이스크림봉 한 스푼 떠먹으면 금방 더위가 싹 가실 것만 같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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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눈앞을 막아서는 봉우리 하나가 눈에 띄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마치 커다란 빙수 그릇에 녹차아이스크림을 수북이 쌓아올려 놓은 것 같다. 중간 중간에 액상 초콜릿을 뿌려놓은 듯 거뭇거뭇한 무늬는 봉우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황장목 이파리들이다. 작명이라고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이름밖에 해본 적이 없건만, 산은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결코 화를 내거나 삐지는 법이 없으니 기꺼이 '녹차아이스크림 봉'이라 이름 붙여본다.

1985년에 발표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은 정덕수 시인의 시 '한계령에서'가 그 바탕이 되었다. 정덕수 시인은 바로 이곳 설악산 오색 마을이 고향으로, 시 '한계령에서'는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81년에 쓴 작품이다.

놀랍게도 정덕수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6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가난한 홀아버지 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살았다. 날마다 설악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도 하고 약초도 캤다. 그러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한계령에 올라가 멀리 인제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14살부터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봉제공장에 취직해 일을 배웠고 수완이 좋아 17살에 사장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린나이지만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므로 당시 유행하던 음악다방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서 디제이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시를 접했고 처음으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8살, 가을에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설악산에 올라 시 '한계령에서'를 썼다.

이 시가 작곡가 하덕규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의 손을 통해 노래 '한계령'이 탄생했다. 노래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의 시 대부분은 잘려나가고 큰 줄기만 몇 개 살아남았다.

한계령은 그의 어머니인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했다. 미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면서도 힘들 때마다 그의 발길은 한계령으로 향했고 그럴 때마다 한계령을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 '한계령에서'는 삶의 아픔을 넘어 희망까지도 이야기하고자 하였으나 노래는 막연하게 처연함만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필레약수터 입구 삼거리를 지나자 멀리 한계령휴게소가 보인다. 정덕수 시인은 그 휴게소 부근 어디쯤에선가 시 '한계령에서'를 썼다고 했다. 18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그의 시는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탈바꿈하여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오색리로 돌아와 살고 있는 정 시인은 봄이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산나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꾸려간다고 한다. 저 휴게소 부근 어디쯤에 시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둘러 올라가봐야겠다.

한계령에서 1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 육천 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정덕수 시인 블로그 <寒士의 문화마을>에서 인용)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콩나물신문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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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이 남긴 유산기의 발굴과 번역에 힘쓰는 한편,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시와 소설로 써나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전번역서 <그리운 청산도>, 북한산 인문기행집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관악산 인문기행집 <느티나무와 미륵불>, 시집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