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픽션>으로 제4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홉 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들고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열 편만 찍고 은퇴하겠다고 공언해온 타란티노이기에 신작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다.
 
칸영화제가 타란티노에게 25년 만에 황금종려상을 안길지도 주목된다. 단 여덟 편의 영화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감독 반열에 오른 타란티노는 자타공인 칸영화제가 발굴한 영화인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수준에 머물던 그의 두 번째 영화 <펄프픽션>에 황금종려상을 선사한 게 칸영화제였다는 점에서 수상 가능성이 낮지만은 않다.
 
특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당초 경쟁부문 명단에서 빠져 있었지만 제작사인 소니 픽쳐스가 후반 작업 일정을 앞당기며 극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황금종려상 수상 25주년을 맞아 작품을 다시 칸에 보내고 싶다는 타란티노의 의향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를 돌아가며 소개하고 있는 '씨네만세'에선 266편 주인공으로 쿠엔틴 타란티노를 선정했다.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 짐 자무쉬,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이어 다섯 번째다.

칸영화제가 키운 씨네키드, '아직 두 발 남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장고: 분노의 추격자>로 제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 쿠엔틴 타란티노 <장고: 분노의 추격자>로 제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 아카데미시상식

  
타란티노는 정식 영화교육을 받은 바 없는 '천재형 감독'으로 이름 높다. 어린 시절부터 광적으로 영화를 좋아했다는 그는 청소년기부터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20대가 되어서는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주말마다 직접 영화를 찍었다. 처음엔 조잡했으나 모든 일이 그렇듯 조금씩 나아졌다.
 
타란티노의 천재성은 영화에 대한 광적인 애정에서 비롯된다. 늘 찍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온갖 비판에도 그 스스로 영화에 출연하는 기쁨을 누렸다. 모든 영화팬이 그렇듯, 영화를 찍기 전에는 영화를 일방적으로 사랑했다. 그 사랑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는 그가 일했던 캘리포니아 맨해튼 비치 비디오가게 주인장과 손님들이 익히 증언한 바 있다.
 
타란티노는 이 비디오가게에 자리를 잡고서 하루 종일 제 취향이 동하는 대로 모든 작가 모든 영화를 탐구했다. 그는 특별한 애정을 가진 감독의 작품들을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것도 즐겼다. 에릭 로메르와 세르지오 레오네를 필두로, 하워드 혹스, 니콜라스 레이, 마틴 스콜세지, 장 피에르 멜빌, 샘 페킨파, 오우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후카사쿠 킨지, 토니 스콧, 정창화, 이시이 다카시, 이시이 데루오 등 이름을 언급하는 데만도 한 세월이다.
 
이들이 모두 타란티노의 영화적 스승이라 할 만하며, 실제로 그의 영화에는 수많은 작가의 흔적이 녹아 있다. 결코 섞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수많은 스타일을 제멋대로 차용해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교묘하게 섞어놓는 솜씨는 대가의 그것이다. 그렇게 더없이 장르적이어서 도리어 작가주의적인 작품들이 태어났다.
 
<저수지의 개들>은 여전히 멋진 데뷔작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다.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형제였다 남매였다 자매가 된 워쇼스키들의 <바운드>, 데미언 셔젤의 <위플래쉬>와 비견할 만하다.
 
이후 2년차 징크스를 가볍게 무시하며 <펄프픽션>을 발표, 내로라 하는 감독들도 평생 한 번 받기 힘든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장르적 요소가 강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일이 잘 풀리려는지 마침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당시 신상옥 감독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그 뒷얘기를 영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돌아온 타란티노

<펄프픽션> 이후에도 타란티노는 멈출 줄 몰랐다. <재키 브라운> <킬 빌> <데쓰 프루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격자> <헤이트풀8>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헛발질만 기다리던 평론가들을 주저앉혔다. 그사이 타란티노의 스타일을 숭배하는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감독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폭력이 지나치단 비판은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위트 섞인 별명으로 뒤바뀌었다.
 
제작·기획·각본은 물론 출연과 공동연출, 드라마 연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예순이 되기 전에 마지막 영화를 내고 감독에서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가 영화계를 완전히 떠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를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소니픽쳐스 코리아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를 충격에 빠뜨린 찰스 맨슨 사건 등을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은 패거리를 이끌고 유명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침입해 임신한 아내 샤론 테이트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잔혹하게 살인하는 등 연쇄살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악명 높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에 더해 마고 로비가 샤론 테이트 역으로 출연을 확정지었다.
 
제목에서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의 두 걸작, <원스 어폰 더 타임 인 더 웨스트>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를 통해 타란티노가 레오네조차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 올라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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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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