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반전도, 챔피언의 위엄도, 최소한의 흥미요소도 찾기 힘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의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은 18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053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만수르 바르나위에게 1라운드 3분 44초 만에 서브미션으로 패했다. 초반 근접전에서 케이지 구석으로 몰린 이후부터 만수르를 상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권아솔의 일방적인 완패였다.

2016년 12월 사사키 신지와의 2차 방어전 이후 2년 5개월 동안 케이지에 오르지 않았던 권아솔의 공백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권아솔은 경기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링 러스트(복서나 파이터가 링을 비운 기간에 따른 후유증)' 따윈 없다"며 2분 안에 만수르를 KO시키겠다고 큰 소리쳤다. 하지만 경기 시작 2분이 흘렀을 때 케이지에 쓰러진 선수는 만수르가 아니라 만수르에 깔려 강력한 파운딩을 맞고 있던 권아솔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권아솔(왼쪽)과 만수르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은 만수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기대를 모았던 권아솔(왼쪽)과 만수르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은 만수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 로드FC

 
토너먼트 열리는 동안 한 번도 케이지에 오르지 않은 챔피언

2016년 11월 로드FC는 우승상금 100만 달러(약 12억 원)가 걸린 라이트급 토너먼트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권아솔의 토너먼트 참가가 확정됐을 때 대부분의 격투팬들은 권아솔이 한국을 대표해 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드FC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권아솔에 대한 단체의 배려는 격투팬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었다. 

'로드FC 100만불 토너먼트'로 불리던 이벤트는 2017년 1월 대회의 정식 명칭이 '로드 투 아솔'로 정해졌다. 각 국의 참가자들이 토너먼트를 거쳐 최후의 1인을 가린 후 최종 승자가 100만 달러의 상금과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걸고 권아솔에게 도전하는 형식이었다. 한마디로 권아솔은 최종 상대가 정해질 때까지 구경만 하다가 한 경기만 이기면 1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실제로 권아솔은 2017년부터 방어전은커녕 슈퍼파이트조차 치르지 않았다. MBC의 격투예능 '겁 없는 녀석들'의 멘토로 활약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케이지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권아솔은 도전자들의 치열한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사이 SNS에 "누가 올라오든 가볍게 이겨주마"라며 챔피언의 자신감을 보여줬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로드FC는 자신들이 키워낸 최고의 히트상품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당초 한 해 동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던 '로드 투 아솔'은 2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됐다. 그 중 183cm의 신장에 타격과 그라운드를 겸비한 튀니지 출신의 주짓수 파이터 만수르 바르나위와 레슬링이 강한 러시아 출신의 베테랑 파이터 샤밀 자브로프가 두각을 나타내며 결승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샤밀은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사촌 형으로 국내 격투팬들에게 더욱 유명해졌다.

이 좋은 '떡밥'을 권아솔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권아솔은 지난 2월 만수르와 샤밀의 최종 도전자 결정전을 앞둔 인터뷰 자리에서 샤말의 세컨으로 참가한 하빕을 향해 "결승에 오른 형을 꺾어줄 테니 다음엔 네가 나에게 복수하라"며 도발했다. 하지만 샤밀과 만수르의 도전자 결정전은 3라운드 40초 만에 기습적인 플라잉 니킥을 적중시킨 만수르의 KO승리로 끝났다. UFC 챔피언을 향했던 권아솔의 도발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2분 KO 자신했지만... 4분도 못 버티고 무너진 로드FC의 '끝판왕'

만수르는 UFC에서 웰터급과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던 '레전드 파이터' 조르주 생 피에르와 함께 훈련한 것으로 유명했다. 권아솔과의 최종전을 앞두고는 축구스타 니콜라스 아넬카와 핸드볼 선수 다니엘 나르시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만수르는 권아솔전 승리를 확신하며 100만 달러의 상금으로 자신이 거주하는 프랑스 파리에 격투기 체육관을 짓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얌전히 있을 권아솔이 아니었다. 권아솔은 자신의 훈련과 감량과정을 조금씩 공개하면서 만수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타격과 주짓수를 겸비한 만수르의 변칙적인 경기 운영에 대해서도 "만수르가 들고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며 1라운드 2분 이내에 KO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권아솔의 바람은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만수르의 큰 체격에 밀려 케이지 구석으로 몰린 권아솔은 어깨를 활용한 만수르의 변칙적인 공격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권아솔은 간신히 몸을 돌리며 만수르를 떼어냈지만 목을 잡힌 채 연속 펀치를 허용했고 경기 시작 1분 30초 만에 만수르의 연타를 맞고 케이지 바닥에 눕고 말았다.

그라운드는 만수르의 영역이었다. 상위포지션을 차지한 만수르는 무방비로 노출된 권아솔의 안면에 강력한 파운딩을 꽂아 넣었다. 권아솔도 뒤집기를 시도했지만 만수르는 좀처럼 상위포지션을 내주지 않았고 파운딩 방어로 권아솔의 방어가 허술해진 틈을 타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권아솔의 항복을 받아냈다. 허탈한 듯 케이지에서 쉽지 일어나지 못한 권아솔과 달리 만수르의 표정은 가벼운 스파링을 끝낸 듯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권아솔은 경기가 끝난 후 만수르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도 "내가 다시 도전할 때까지 챔피언 벨트를 유지하기 바란다"며 설욕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상금 100만 달러라는 '목표'를 달성한 만수르가 아시아 단체의 챔피언 벨트 사수에 얼마나 큰 관심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난 2016년 12월 10일 이후 900일 가까이 케이지에 오르지 않고도 지켜온 '챔피언 권아솔'이란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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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격투기 로드FC 권아솔 만수르 바르나위 100만불 토너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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