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으로 2007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12년이 지난 현재, 한 해 10만 쌍 넘게 이혼하면서 전통적인 결혼관에 균열이 나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21일, 새로운 부부관계의 꼴로 떠오른 졸혼을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편집자말]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유명인들의 졸혼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이 많더군요(사진은 KBS <살림하는 남자들 2> 방송 내용).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유명인들의 졸혼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이 많더군요(사진은 KBS <살림하는 남자들 2> 방송 내용).
ⓒ KBS

관련사진보기

 
졸혼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웬 졸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유명인들의 졸혼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이 많더군요. 기사 행간에서 받은 느낌은 남자에게 졸혼의 '원인'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들이 언급한 통계만 봐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졸혼을 더 원하고 있고요. 

다소 민감한 주제이지만 손을 들고 한번 써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내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호기심이 일었거든요. 그렇게 생각도 못 해본 주제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

먼저 오랜 친구들이 모인 고등학교 단체 채팅방에 "오늘 생일 맞은 기념으로 의견 좀 물어 볼게. 혹시 '졸혼'에 대해 생각해 본 친구 있어?"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결혼한 지 20년 넘는 100여 명의 남성이 모인 방입니다.

평소 수다를 많이 떨던 친구들이 얼마간 침묵을 지키더군요. 내 질문을 다시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이 그만 내가 졸혼을 고민하는 거로 읽힐 만하게 썼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무슨 일 생긴 거냐?" 혹은 "섣불리 결정하지 마"라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급기야는 친한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대체 왜?" 아무튼 졸혼이라는 화두가 가볍지 않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졸혼의 실체를 찾아서

오해가 가라앉으니 여러 친구가 의견을 보내주었습니다.

"기존 혼인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을 자생적으로 해결한 방법."
"결국은 이혼과 같은 결과이지만, 추억을 공유하면서 나머지 삶을 따로 사는 방법."


표현은 달랐지만,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한 친구들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회피하기 위한 타협 아닌가? 이혼하면 재산도 나눠야 하고."
"졸혼은 무슨. 그냥 별거잖아."


이 대목에서 변호사 친구가 등장했습니다.

"별거는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실행할 수 있지만, 졸혼은 양측의 합의가 중요하다네. 물론 이혼도 양측 합의가 필요하지만, 그 사유가 명확해야 하고. 민법상 이혼 사유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에게 '졸혼 계약' 상담이 간혹 들어온다는 얘기도 전해주더군요. 그런데 다양한 의견이 오가면서도 자기가 직접 졸혼을 고민해 봤다는 친구들은 나오지 않더라고요. 졸혼도 이혼 못지않게 공개된 대화방에서 나누기는 무거운 주제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혼을 숫자로 보니 담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여러 매체에서도 언급한 통계청 '2018년 혼인 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혼은 10만 8700건이고,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은 결혼 20년 차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며 어쩌면 졸혼이 완충작용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차선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그렇지만 실제로 졸혼을 생각하는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들어볼 길은 막연했습니다. "B가 졸혼 생각하던데?"라는 소문이 들려서 B에게 물어보면 "내가? 누가 그래?"라는 식이었습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제 졸혼을 고민한다는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범위를 넓혀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번엔 단체 채팅방이 아닌 개인적으로요. 대학교는 물론 사회 선후배, 공개 채팅방에서 의견을 밝혔던 친구들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정말 차선책일까

그들은 거의 내가 물어보기 전에는 졸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질문을 계기로 졸혼이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고민해 본 거지요. 대다수가 호기심은 가지만 본인들이 직접 졸혼을 결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이라는 전제를 달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만약 졸혼을 마음먹는다면 이유가 무엇이겠냐는 질문에는 크게 두 가지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냥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가 아닐까?"
"가족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두 문장은 한 문장으로 합쳐질 수도 있겠네요. '가족에서 벗어나 혼자 지내고 싶어서.' 그들은 "평생 일만 해왔는데 은퇴할 나이가 되어가니 부인은 물론 자녀들도 무시"하는 느낌을 간혹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깨가 유독 처져 보이는 지인들이 있었는데, 밖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그런 고충이 있었던 거네요.

이 문제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들은 졸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부부가 실제로 졸혼을 고민하고,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그들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졸혼이 이혼을 대신하는 '차선책'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나 봅니다. 실제로 어떤 소설가의 졸혼 역시 "부인 쪽에선 이혼을 원했지만, 졸혼으로 합의했다"고 하네요. 이혼을 고민했다는 건 어느 한쪽에 귀책사유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 문제가 단순하지는 않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졸혼 사례가 이혼 못지않게 복잡한 문제를 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졸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에게는 귀책사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몇몇 남성들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졸혼한다면 부부가 따로 사는 건데, 배우자의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거냐고요. 답은 하나로 모였습니다. 졸혼을 졸업으로 비유한 연장선이었습니다.

"졸업했는데 등록금을 왜 내?"

낭만적 상상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행복을 주지만 과연 현실도 그럴까요? 졸혼은 법적인 결혼 계약을 깨지 않을 뿐이지 나머지는 이혼과 다름없을 테니까요. 물론 두 당사자 모두 졸혼을 꿈꾸고 합의한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이혼으로 달려가다가 졸혼을 선택한다면요? 아마도 두 당사자 중 한 명의 반대로 이혼 대신 졸혼으로 합의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혼 못지않은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인만큼 서로 지켜야 할 신의의 범위라든지, 결혼 후 모은 재산은 어떻게 한다든지, 배우자에게 생활비를 주거나 혹은 안주거나 한다든지요. 아마 이혼 못지않은 계약서가 필요할 듯도 합니다.

여러 매체에서 인용한 통계가 또 있습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발표한 '2018 은퇴백서'에 따르면 남성은 22%, 여성은 33% 정도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다고 합니다. 해석에 따라 높은 비율이기도 하고 낮은 비율이기도 합니다. 

졸혼이 도피처가 되지 않으려면
 
그렇지만 졸혼을 이혼 대신 선택하는 도피처로만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졸혼을 이혼 대신 선택하는 도피처로만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중요한 건 졸혼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알려진 지 얼마 안 됐지만, 유명인 사례 때문에라도 관심이 점차 확대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아, 졸혼이라는 게 있구나!" 하면서요.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건 확실하니 그 차선책으로라도 졸혼이 늘어갈 거란 예측도 많습니다.

졸혼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저는 전설의 동물을 찾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존재한다고 전해지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실체를 좇는 듯했거든요. 많은 사람이 졸혼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자기와는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거나 현실도 과연 그럴까 의문을 가지면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지인들과 대화해보니 '혼자 편하게 살며 자기 세상을 찾아가려면 쉽지 않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쩌면 일부 변호사들은 졸혼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확장할 꿈에 젖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졸혼을 이혼 대신 선택하는 도피처로만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눈 지인들은 "졸혼이 제2의 삶을 찾는 계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런 사람이 많이 있겠지요. 이렇듯 졸혼이라는 단어는 낭만적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가려면 넘거나 깨어야 할 벽이 높고 두껍다는 것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졸혼을 졸업으로 비유해서 그런지 친구들은 다양한 비유를 내놓았습니다. 그중 '홈커밍' 행사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졸혼도 졸업처럼 세월이 지나면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뜻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졸혼 후 따로 사는 그들이 다시 만나는 '홈'은 어디일까요.

태그:#졸혼, #결혼, #이혼, #부부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