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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속의 5월 16일·17일·18일은 불과 며칠 간격이지만, 그 사이에 근 60년간의 한국 현대사가 묻어 있다. 먼저, 5월 16일과 17일은 1일 차이지만, 역사적 의미를 놓고 보면 그 사이에 19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집단(구군부)이 1980년 5.17 쿠데타를 통해 '확실히' 집권한 전두환 집단(신군부)으로 대체되는 역사의 흐름이 5월 16일과 17일에 담겨 있다. '확실히'라는 표현을 쓴 것은, 육사 11기 이하가 주축이 된 신군부가 제1차 쿠데타인 1979년 12.12로 군부를 장악한 데 이어 제2차 쿠데타인 1980년 5.17로 군부와 정부를 모두 장악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뒷걸음질 치게 한 두 번의 쿠데타
 
 5·16 쿠데타.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5·16 쿠데타.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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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로 대표되는 신군부는 5.16으로 대표되는 구군부의 집권 기간 동안에 성장했다. 이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한 인물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와 함께 5.16에 참여한 그룹은 정승화 등으로 대표되는 육사 5기와 김종필 등으로 대표되는 육사 8기다.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는 <KCIA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정희 소장은 육사 8기 생들의 '계획'과 5기 생들의 '병력 동원'으로 쿠데타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박정희는 정적만큼이나 동지 혹은 부하들을 무서워했다. 그는 육사 5기와 8기들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위해 그는 후배 기수인 8기를 이용해 5기를 약화시킨 뒤, 8기를 약화시킬 또 다른 후배 집단을 물색했다. 그들이 정규 육군사관학교의 출발점인 육사 11기 이하 기수들이다.

"박 의장은 8기 세력이 커지자, 그들보다 더 어려 믿을 만하고 4년제 육사를 마친 영남 출신의 11기 몇 명을 충복처럼 귀여워하게 된 것"이라고 위 책은 말한다. 이 같은 박정희의 전략적 후원 하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뭉친 군대 사조직이 바로 하나회다. 하나회는 신군부의 핵심으로 성장하고 뒷날 5·17을 주도한다.
 
 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 사진은 12·12 쿠데타를 다룬 <뉴스위크> 표지.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 사진은 12·12 쿠데타를 다룬 <뉴스위크> 표지.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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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체제 하에서 선배들을 견제하는 데 이용됐던 육사 11기 이하는 박정희 사후에 본격적으로 선배들을 들이받는다. 제1차 쿠데타인 12.12 쿠데타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구속하고 군부를 장악한 데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할 목적으로 제2차 쿠데타인 5.17 쿠데타를 단행한다.

이들이 5.17을 감행한 근본 목적은 10.26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진압하는 것이었지만, 그것과 별개 차원으로 구군부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은 5.16 당사자이기도 한 김종필의 인식에서 특히 잘 발견된다.

김종필이 이끄는 공화당은 12.12를 계기로 강화되는 신군부를 견제하고자 1980년 5월 16일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신군부에 대한 구군부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일이었다. <김종필 증언록> 제2권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공화당은 긴박감이 감돌던 그 전날 16일 긴급 당무회의를 열었다. 3시간 40분에 걸친 난상토론 끝에 최 대통령에게 전달할 위기관리와 수습 대책을 결정했다. 정치 일정을 대폭 단축하고 계엄을 해제하는 내용이었다."
 
전두환의 비상 권력은 10.26 당시의 계엄령에 기초했다. 이 계엄령을 해제하면 전두환의 정치적 입지가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이 5월 17일을 디데이로 잡은 데는 계엄해제 건의안에 대한 두려움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김종필의 해석이다. 계엄령 해제를 막고자 신속히 계엄령 전국확대라는 5.17 조치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5월 16일의 공화당 당무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다음날인 5월 17일 김종필은 남산 공화당 당사에 출근해 전날 결정된 시국 수습안을 정리하며 상황 타개를 고민했다. 그런데 그날 낮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구름 한 점 없던 이 날, 그는 낮 1시에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퇴짜'를 맞았다. 청와대가 그의 면담 신청을 거절한 것이다.

김종필은 "뒤숭숭한 분위기여서 바깥에서 식사를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그때의 느낌을 전한다. 기분이 찜찜했던 그는 일찌감치 청구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결국 그날 밤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밤 11시 20분, 신군부의 제2차 쿠데타를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된다. <김종필 증언록> 제2권은 이렇게 말한다.
 
"밤 11시 20분, 미니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온 군인들이 M16 소총으로 무장한 채 청구동 집에 들이닥쳤다. 군인들이 집 주위를 에워싸고 보안사 수사관 장모 준위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최인관 비서에게 '세상이 어지러워서 김 총재를 조용한 곳으로 모셔야겠습니다. 총재님께 보고 사항이 있으니 뵙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내가 있는 서재 2층으로 최인관 비서의 뒤를 따라서 장 준위가 올라왔다. 그는 내게 목례를 하더니 '죄송합니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총재님을 모시고 가야겠습니다'고 말했다."
 
12.12 때 육사 5기 정승화를 연행했듯이, 5.17 때는 육사 8기 김종필을 연행해 간 것이다. 5.16을 주도한 5기와 8기가 육사 11기에 의해 무너지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렇게 전두환은 군대를 동원한 연행 형식을 빌려 제2차 쿠데타를 단행했다. 계엄령을 해제해 전두환의 기반을 축소시키려는 구군부의 움직임에 대해 그런 식으로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런 두 차례 쿠데타로 5.17은 5.16을 꺾었다. 5.17은 일차적으로는 민중의 민주화 열기에 맞선 것이지만, 이렇게 2차적으로는 구군부에 맞선 신군부의 도전이기도 하다. 10.26 이후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어야 할 역사가 뒤로 퇴행하는 순간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5.18 민주화운동의 함성
 
 5·18 광주민주화운동.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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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이 5.16에 대항했다면, 5.18 민주화운동은 5.16과 5.17 모두에 대항해 일어난 사건이다. 안 그래도 5.16으로 퇴보한 역사가 5.17로 인해 한층 더 뒷걸음질 치게 됐다. 5.18은 이렇게 퇴행한 역사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통해 계엄 정국을 강화하고 민주화를 억압하려는 전두환과 신군부에 맞서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목적으로 광주 시민들이 일으킨 저항운동이다.

그런데 5.18은 그때 당시에는 5.16과 5.17을 이기지 못했다. 5.17로 대변되는 신군부에게 처참하게 당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5.18의 주역인 시민들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는 5.18이 당장에는 억눌렸지만 장기적으로는 5.16과 5.17을 극복하고 승리해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5.18 정신은 신군부의 헬기 사격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아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를 변혁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5.18 덕분에 5.16 및 5.17에 기반한 세력들은 점차 힘을 잃고, 한국 사회는 성큼성큼 진보하고 있다. 5.16과 5.17로 크게 퇴보한 한국 현대사를 되돌려놓고자 5.18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5.17이 5.16을 넘어서는 데 19년이 소요됐다. 5.18이 5.16과 5.17한테 맞선 지는 벌써 39년이나 흘렀다. 5.17이 5.16을 넘어서는 데 걸린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낙관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광주의 아픔을 이해하고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지만원 등으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은 엉뚱한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하며 광주를 모독하고 약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의 의의를 제대로 짚는 방향으로 역사의 흐름이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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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