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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5.18 민주묘지 진입로를 따라서 심어진 이팝나무
 국립 5.18 민주묘지 진입로를 따라서 심어진 이팝나무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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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5월은 가정의 달이자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광주의 5월은 슬픔의 달이기도 한데요. 1980년 5월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총칼로 학살한 악행이 광주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와 5.18 구묘역이 바로 그곳입니다.  
꽃이 밥알을 닮은 이팝나무는 입하 무렵인 5~6월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꽃이 아름다워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식재됩니다.

망월동 묘역으로 향하는 길에도 이팝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습니다. 1994년부터 시작된 신묘역(현 국립 5.18 민주묘지) 조성 사업 과정에서 진입로의 가로수를 이팝나무로 심었는데요, 매년 5.18 기념식이 있을 때쯤에는 하얗게 피어난 꽃들이 길가를 수놓고 있습니다. 더욱이 5월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해서 5월의 아픔과 5.18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하기도 합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
 
 1980년 5월, 신군부의 총칼에 스러져간 광주시민들의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
 1980년 5월, 신군부의 총칼에 스러져간 광주시민들의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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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1980년 5월 당시 신군부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망월동에 있는 시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하지만 1997년 지금의 위치에 5.18 민주묘지가 새로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유해들을 이장하게 됩니다.

출입구인 '민주의 문'을 넘어서면 이곳을 대표하는 조형물인 추념문과 추모탑이 묘지를 방문한 사람들을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추념문은 5월의 현장을 지켜보며 이를 증거하는 묵시적 형상과 광주시민들의 숭고했던 희생정신을 받드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40미터 높이의 추모탑은 전통석조물인 당간지주를 형상화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탑신 중앙부분의 손 모양 내부에는 신군부의 총칼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소망을 담은 난형환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에는 2개의 묘역이 자리해 있습니다. 먼저 추모탑 뒷편에 자리해 있는 1묘역에는 항쟁지도부의 대변인이면서 5월 27일 도청을 공격했던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다 사망한 윤상원 열사(전남대/2-11)를 비롯해 777명의 희생자들의 유해가 안장됐습니다. 5.18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묘비가 있는 행방불명자 묘역도 마련돼 있습니다.

1묘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2묘역은 5·18 당시 부상자들의 유해를 안장한 묘역인데요, 현재까지 부상자 43명이 안치돼 있습니다.

특히 윤상원 열사는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일하다 1978년 겨울에 숨졌던 박기순과 함께 잠들어 있는데요, 묘비에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것이 증거입니다. 지난 1982년에 망월동 구 묘역에서 치렀던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에서 이들의 유해를 합장했고, 현 위치에 새로운 묘역이 조성되면서 두 사람의 유해도 같이 이장됐습니다.

두 사람의 묘는 <임을 향한 행진곡>이 처음 불려진 역사적인 곳이기도 한데요, 윤상원 열사와 5.18을 상징하는 이 노래는 보수세력의 폄하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널리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통해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에서 시작된 5월의 정신과 영혼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죠.  

깨진 전두환 비석
 
 80년 5월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5.18 희생자들의 가묘 149기가 조기로 게양된 태극기와 어우러지며 보존돼 있는 망월동 5.18 구묘역
 80년 5월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5.18 희생자들의 가묘 149기가 조기로 게양된 태극기와 어우러지며 보존돼 있는 망월동 5.18 구묘역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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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5.18 민주묘지와 연결된 육교를 건너면 망월동 구 묘역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총칼에 의해 사망한 시민들의 시신을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어 안장했던 곳입니다.

이후 이곳이 '민주화 성지'로 각광받으면서 자신들이 광주에서 저질렀던 잘못을 은폐하려 했던 신군부에 의해 희생자들의 묘가 파헤쳐지거나, 유족들에게 묘를 이장하라고 회유하는 식의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의 바람과 달리 1997년에 새로 조성된 국립 5.18 민주묘지에 유해들을 이장했죠. 그러나 149기나 되는 희생자들의 가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어서 당시의 참상이 어떠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망월동 5.18 구 묘역을 방문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게 길바닥에 묻혀있는 5.18 구 묘역 내부의 전두환 민박기념비
 망월동 5.18 구 묘역을 방문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게 길바닥에 묻혀있는 5.18 구 묘역 내부의 전두환 민박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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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 구 묘역을 방문했을때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는데요, 아스팔트 길바닥에 깨진 채로 박힌 전두환의 기념비가 바로 그것입니다. 1982년에 전두환이 광주 방문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하는데요, 이를 기념하는 민박기념비가 마을에 세워집니다. 그를 위시한 신군부에 의해 가족과 친지, 이웃을 잃었던 유족들의 입장에서는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죠.

결국 1989년 유가족들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서 부서진 채 묻히게 됩니다.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비석을 짓밟고 가달라'는 안내문이 적혀있기 때문에 이곳을 들르신다면 꼭 비석을 밟고 지나가보시길 바랍니다.  

위르겐 힌츠페터, 망월동에 잠들다
 
 망월동 5.18 구 묘역에 잠들어 있는, 80년 5월의 진실을 국내외에 알렸던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묘
 망월동 5.18 구 묘역에 잠들어 있는, 80년 5월의 진실을 국내외에 알렸던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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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주연의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의 진실을 마주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썼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그는 회사 주재원으로 위장해 호텔 택시 기사였던 김사복과 녹음 담당 기자 헤닝 루모어와 함께 택시를 타고 2차례나 광주에 잠입했는데요. 참혹했던 광주의 모습뿐만 아니라, 계엄군의 날조와는 반대로 평온하고 평범했던 광주의 모습을 컬러 필름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 쿠키통과 허리띠 속에 숨겨 가지고 갔던 필름들은 신군부가 날조하려 했던 광주의 진실을 국내외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생전에 '광주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광주에 애정을 지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모발과 손톱 등 신체 일부와 유품들을 이곳 망월동 구 묘역에 안치됩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삼엄한 경계를 뚫고 광주에 잠입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르는 5월의 진실, 그것을 전하려고 했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푸른 눈의 목격자'라고 부르는 것이죠. 이 자리를 빌려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던 그의 행동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가는 법 : 유스퀘어(광주 광천터미널)에서 518번 버스를 타시면 국립 5.18 민주묘지와 망월동 구묘역을 편하게 가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https://gl-revieuer86.postype.com/post/3817686)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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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프로듀서보다 솔직담백한 국민리뷰어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