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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이었다.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남성 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비정규직 임금을 1년으로 계산하여 그 날 이후부터 12월 말일까지 여성은 무급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리는 날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9년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가장'으로 상징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현장의 사례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생계에 성별은 없다' 기획을 통해 총 9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다. 두 번째 글은 서울여성노동자회 여름이 썼다.[편집자말]
A씨는 30대 초반이다. 전문대학 졸업 후 서울 소재 크지 않은 규모의 유통회사에 취업했지만 면접 때 들은 '사무 전반', '홈페이지 관리', '홍보' 등의 말이 무색하게 회계경리로 내내 일했다. 게다가 4년간 경력을 쌓아도 승진은커녕 수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일할 맛이 나지 않는 건 제자리걸음인 급여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최저임금을 받고 시작했는데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딱 그 수준만큼만 더 받았다. 입사 당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으며, 휴가비나 명절 보너스 등을 비정기적으로 받았다. 승진은 꿈도 못 꾸고 경력개발은 더욱 안 되는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만 커졌다.

"OO씨 몇 살이지? 슬슬 결혼할 때 됐지? 남자친구는 있나? 이런 말을 자꾸 하니까 점점 불안해지더라고요. 더 나이가 들면 이 회사에서 내 자리가 없을 것만 같았어요. 저한테 주어지는 업무는 누구라도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 자리를 또 사회초년생으로 채우면 그만이겠구나 싶어서요. 임금인상은 쉽게 말을 못 꺼냈죠. 돈 더 달라 하면 나가라고 할까봐"

비혼인 여성 간호조무사의 '독립 생존', 과연 가능할까?

A씨는 독립적인 생존을 꿈꾼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결혼보다는 비혼에 매력을 느꼈고, 비혼을 준비하려니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절실해졌다. 본격적으로 직업정보를 찾고 모으기를 1개월여.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 수요가 늘 있어서 이직도 생각해볼 수 있고, 경력단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직업을 찾다가 간호조무사에 도전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고, 수련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일하기까지는 2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4년차에 접어든 지금, '독립 생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여전하다. 
 
 <생계에 성별은 없다> 카드뉴스 中
 <생계에 성별은 없다> 카드뉴스 中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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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A씨는 주41시간 근로를 하며 월160만 원 기본급에 식대 10만 원을 받는다. 임금명세서는 별도로 없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160만 원은 통장에 입금되며 식대는 현금으로 받는다. 이는 최저임금 위반이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마 4대보험 본인부담금을 병원이 대신 납부해주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는 많을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연 해당 병원이 4대보험 본인부담금을 제대로 납부하고 있을까?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나마 작년부터 최저임금 문제가 계속 뉴스에 나오면서 10만 원 인상된 거예요. 같이 일하는 동료뿐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는 간호조무사 대다수가 최저임금 이상을 기대하지 않아요. '최저임금=간호조무사 임금'이라는 현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오자 A씨는 약간 흥분해 말을 이어갔다.

"최저임금도 얼마나 힘들게 받는지 몰라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병원 직원들 간에 기대감이 생겼어요. 최저임금은 지켜서 주겠지, 싶었죠. 그런데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병원에서는 언급이 전혀 없는 거예요. 보건복지부며, 세무서 같은 데서 최저임금 안내 공문이 도착하고, 직원들은 서로 누가 원장실에 이를 전달하느냐를 고민하고, 누가 어떻게 말을 꺼낼지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이 스트레스가 한참 이어졌죠"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인상은 당연한 것임에도, 원장은 직원 개별 면담 후 각자 비밀스럽게 임금을 인상해주는 방식으로 직원들 간 위화감을 조성해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혼자 원장실에 불려가 임금인상을 약속받고 나니, '혹시 동료는 나보다 먼저 임금인상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올려 받은 임금이 월 160이다. 하지만 2019년 최저임금은 월 1,745,150원. 여기에 월 10만 원 별도로 지급되는 중식비가 있다지만, 이마저도 원장실에서 직접 현금으로 주며 생색을 내는 것이 매달 벌어지는 일이다

임금을 고착화하는 '물경력' 만드는 분위기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알게 됐죠. 간호조무사 수요가 많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게 된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제가 기대했던 것처럼 독립생활을 보장해주지는 못해요. 아마 대다수 간호조무사 임금 = 최저임금일 거예요. 채용정보 서치 잠시만 해봐도 알 수 있어요. 1년차 때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저임금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어요. 그런데 몇 번 이직하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최저임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요."
 

간호조무사의 저임금을 고착화시키는 데에는 경력 및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혈관주사(IV) 가능 여부가 채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채용공고를 살펴보면 IV 가능자를 '환영'하거나 '우대'하고 있음),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간혹 혈관주사 시행 횟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별도로 지급하는 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해도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인 건 매한가지이다.

또한 이전 병원에서 경력 및 능력을 인정했다고 해도, 다음에 이직한 병원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10인 미만, 5인 미만 규모의 병원은 간호조무사 채용시 경력과 근속 인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운이 좋아 인심 좋은 병원장을 만나기를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다.

"간호조무사협회에서 보수교육을 하라고 연락이 와요. 당연히 유료고, 대면교육이 많아요.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데, 보수교육을 이수했느냐 아니냐가 채용이나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없으니 누가 적극적으로 하겠어요? 능력을 키우고 커리어를 쌓아도 돌아오는 게 없잖아요?"
 

A씨는 서울에 있는 병원일수록(병원 규모가 클수록), 특정 과(피부과 등)에 취업하면 좀 더 높은 임금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그만큼 근무시간이 긴 편이라 결국은 최저임금인 셈이라고 한다. 현직 간호조무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 몇몇의 상황과 경험이 과장되어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나는 내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전국 간호조무사 58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8년 간호조무사 임금·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7.5%의 간호조무사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34.4%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지급받고 있었다. 이 조사 결과에서 임금에 근무 경력이 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확인됐다.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간호조무사의 47%가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받고 있다고 답했고, 현 사업장 근속기간 10년 이상 간호조무사 중 37.1%는 경력과 근속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생계에 성별은 없다> 카드뉴스 中
 <생계에 성별은 없다> 카드뉴스 中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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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을 결심하고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고민했고, 다니던 직장까지 관둬가며 노력해서 간호조무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A씨는 함께 일했던 선배·동료들을 지켜보면서 더욱 절망스러움을 느꼈다. 경력 10년 차의 선배 간호조무사가 원장에게 임금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아?"라는 질문이 돌아왔다고 한다. A씨는 이런 말에 특히 상처를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여자가 그 정도 받으면 됐지 뭐, '반찬값'은 보태겠네', '남편이 벌어오잖아? 애들 학원비는 빠지겠네' 이런 말, 정말 듣기 싫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제가 가장이거든요. 저는 이 월급으로 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이야기해요."

이처럼 사회는 계속해서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로 여성노동의 저임금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2등 시민으로 남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8년 전체 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중은 2000년 18.5%보다 12.2%포인트(p) 증가한 30.7%로 조사되었으며,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1인가구가 560만 세대를 넘어섰고, 이중 1인여성가구가 284만 가구로 50%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가 보여주듯 전체 가구에서 여성가구주와 미혼여성가구주의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다수는 이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린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생활비', 아내가 벌어오는 돈은 '반찬값'이라며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에 당위를 부여하고 이들의 노동환경을 점점 열악하게 만든다. 남성생계부양자 논리가 더는 여성노동의 저임금화에 대한 사용자의 방패막이어서는 안 된다.

[생계에 성별은 없다]
여성은 '반찬값' 정도 임금이면 족하다? 나도 생계부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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