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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이다.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남성 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비정규직 임금을 1년으로 계산하여 그 날 이후부터 12월 말일까지 여성은 무급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리는 날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9년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가장'으로 상징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현장의 사례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생계에 성별은 없다' 기획을 통해 총 9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다. 첫 번째 글은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가 보내왔다.[편집자말]
SBS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매우 이상한 내레이션을 발견했다. 신문 배달하는 달인은 남성이었고, 그는 성실한 가장으로 호명되었다.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책임을 다하는 가장의 모범으로 소개되었다.

다음으로 바로 이어진 내용은 김밥을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여성은 가장으로 호명되지 않았다. 생계를 책임져 왔다는 한 줄의 설명뿐이었다.

  
 평등하지 않은 (가족)구조를 만드는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를 의심해야한다.
 평등하지 않은 (가족)구조를 만드는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를 의심해야한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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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란 말. 국립국어원은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 혹은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가장은 가족의 생계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고,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부여받았다. 부부와 자녀들로 상징되는 '정상가족 모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은 늘 남성을 지칭했다. 이는 가족과 성별에서의 위계를 강화하며 남성에게 절대 권위를 부여했다.

그것은 실제로 가족의 생계를 누가, 어떻게 부양하느냐에 관계없이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권능이었다. 평등하지 않은 가족 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오고 여성의 종속을 강화해 온 것은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였다.

남성 단독 생계부양자 모델,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남성 가장 아래서 여성은 늘 피부양자로 존재했으며 가사와 육아의 전담자로서 '집에서 논다'고 표현되었다.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표상되는 여성의 존재는 돌봄 노동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중요하지 않은 노동으로 인식하게 했다.

남성이 뼈 빠지게 생계를 부양할 동안 집에서 놀고먹는 여성은 평등하게 대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되었다. 생계를 책임져 온 윗세대 여성들은 가족 안에서 자신을 더욱 낮추고 타인에게 자신의 노동을 숨겨야 했다. 가장으로서 남성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일을 한다는 것은 남성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인식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 오랜 관념은 맞벌이가 일반화되고 2015년 1인가구(27.2%)가 4인가구(18.8%)를 넘어선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2018년 현재 40세 미만 청년층의 맞벌이 가구는 61.6%에 육박하고 있다. 더 이상 남성이 가장으로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지 않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일반화되고 있다. 특히 중·고령층 여성들은 배우자의 퇴직이나 병으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전히 온전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

또한 여성 가구주와 1인가구, 비혼률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 속에서 자신의 생계는 자신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남성이 생계를 부양하는 정상가족 모델은 더 이상 일반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형태도 아니다.

보조자로 취급되어 '반찬값' 취급당하는 여성노동

"미혼여성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고 부모님은 은퇴하셔서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건 저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과 평가할 때 제가 동료 남직원보다 평가가 좋았음에도 남직원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저는 결혼할 계획도, 자녀도 없다는 이유로 남직원에게 평가를 몰아주라는 상사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제게 유감은 없지만 남자는 아무래도 가정이 생기면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였어요. 저도 먹여 살릴 가정이 있는데 그 가정은 오로지 남자에게만 유효한 정의인가 봅니다."
- 3.8세계여성의날 기념 "나의 페이미투" 설문 응답 중

  
 <생계에 성별은 없다> 1회 카드뉴스 :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는 2명중 1명이다
 <생계에 성별은 없다> 1회 카드뉴스 :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는 2명중 1명이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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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남성이 '가장'으로 호명되는 한 여성은 보조자일 수밖에 없다. 보조자의 노동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노동은 보조자에게 맡기지 않는다. 여성의 노동이 싸구려 취급받는 이유다. 생계부양자가 따로 있는 여성은 '반찬값' 정도의 임금이면 족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진입이 어려워 2018년 현재 여성노동자의 50.7%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월 134원으로 최저임금 156만원에 조차 미치지 못 한다. 이 임금은 정규직 남성 노동자 월 평균임금의 37.5%에 불과하다.

이 현실 뒤에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만들어 내는 성차별이 숨어 있다. 사내 복지나 수당, 성과평가부터 좋은 일자리로의 진입, 승진까지 성차별을 단단하게 다지는 근거가 된다. 이런 성차별 구조 속에서 여성은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좋은 직장으로의 진입 차단, 낮은 임금, 승진에서의 배제는 여성이 임금노동을 지속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노동시장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생계의 절박함으로 노동에 나서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독립 없이 평등한 관계는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종은 경력과 관계없이 당연히 최저임금만 주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여자 월급이 그 정도면 됐지",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아?", "당연히 남자가 더 받아야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잖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어이없게도 한국사회는 임금을 지급할 때 임금의 용도를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누군가는 가족의 생활비, 용돈, 반찬값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아무 근거 없는 판단에 기대어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심심풀이로 임금노동에 나서는 사람은 없다. 노동자들은 모두 각자 생계의 절박함을 갖고서 노동 현장에 나선다.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을 모아 가정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는 국가정책과도 긴밀하게 연계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정부는 여성에게 시간제로 일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1.5생계부양자 모델로 남성이 1의 소득, 여성이 0.5의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라는 것이다. 시간제 노동은 보조노동이자 승진과 책임에서 배제된 노동이다.

정부는 이런 저임금의 보조노동을 여성에게 줄곧 강요해 왔던 것이다. 시간선택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국가예산을 들여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주었고, 컨설팅을 해 주었다. 이 정책은 위험하게도 지금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육아정책, 사회보장 정책, 통계 등 모든 정책들이 남성생계부양자모델로 설계되어 있다.

이 성차별 구조 속에서 여성은 노동을 할 충분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 평균임금 134만 원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 하는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여성들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여 정책을 만들고 있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허구다
 
 성별임금격차로 이득을 보는 것은 기업이다.
 성별임금격차로 이득을 보는 것은 기업이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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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구조는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불리하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은 자본이다.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남성의 임금은 정체를 겪게 되고 홀로 생계부양이라는 가능하지 않은 미션 수행을 요구받는다. 여성노동자에게 빼앗은 임금은 남성노동자에게 가지 않는다. 자본에게 간다. 국내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2018년 950조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약 67조원 늘어난 수치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서로에게 기대고 상의하지 못 하는 불평등한 관계의 정상가족 프레임은 남성 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로 강화되고, 가족 혹은 공동체의 다양성은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여성의 상황 때문에 유보된다. 이 안에서 남성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껍데기뿐인 가장의 권위다. 2019년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우리는 이미 죽은 '가장'의 유령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허구다. 생계에 성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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