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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래에 남긴 시대 정신은 '사람'이었다. 노사모를 비롯한 '노무현 키즈'는 풀뿌리 정치에 뛰어들었고, 시민들도 저마다 노무현을 기억하며 촛불 혁명의 큰 밑거름이 됐다. 오마이뉴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노무현이 만든 미래', 노무현의 사람들을 만났다.[편집자말]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9일 부산 진구청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노무현재단 10주기 슬로건 ‘새로운 노무현’이 주는 의미에 대해 “10주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보다는 노 전 대통령이 준 DNA 가지고 더 많은 노무현이 나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9일 부산 진구청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노무현재단 10주기 슬로건 "새로운 노무현"이 주는 의미에 대해 "10주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보다는 노 전 대통령이 준 DNA 가지고 더 많은 노무현이 나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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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넘고 싶어 하던 지역주의의 벽이 돌아가시고 10년 다 돼가는 지금에야... 대통령이 계셨으면 아주 좋아했을 텐데..."

지난해 6월 부산이 '디비졌다('뒤집혔다'의 부산말)'. 부산시장부터 13개 구청장, 시·군·구의회할 것 없이 지방권력의 중심이 자유한국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간 것이다. 부산의 강고한 지역주의를 깬 이들 가운데는 2000년대 노무현 전 대통령 영향을 받아 정치인이 된 '노무현 키즈'도 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부산 희망연대(현 자치21)에서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서은숙(52) 부산진구청장도 지난 2006년 구의원으로 출발해 12년 만에 부산진구 첫 민주당 출신 여성 구청장이 됐다.

노무현의 '지역주의 도전' 완성한 부산의 노무현 키즈
 
▲ 서은숙 부산진구청장 "노무현이 준 DNA 가지고 더 많은 노무현 나와야"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노무현재단 10주기 슬로건 ‘새로운 노무현’이 주는 의미에 대해 “10주기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보다는 노 전 대통령이 준 DNA 가지고 더 많은 노무현이 나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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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이 지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있어 분위기가 좋을 거란 건 예상했지만 이런 엄청난 결과는 생각 못 했어요. 시민들 반응이 지금까지 선거 가운데 최고였어요. 선거운동하면서 유권자들도 이제 부산도 바꿔야지,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와 남북 평화 무드 덕에 부산이 뒤집어진 것도 있지만, 부산이 오랫동안 침체돼 있었잖아요. 특정정당 독점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염증이 반영됐다고 봐요. '이제 너거들(너희들)이 해봐' 이게 보이더라고요."

부산진구는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과 옛 미군 하야리아 부대 터에 자리잡은 부산시민공원의 넓은 잔디밭을 품고 있다. 인구도 36만여 명(2019년 3월 현재)으로 부산에서 해운대구 다음으로 많다. '젊음의 거리'란 이미지와 달리, 70대 구청장이 민선과 관선 합쳐 20년 가까이 장기집권해온 부산진구에 50대 여성 구청장의 등장 자체가 활력소였다.

서 구청장이 당선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대궐 같았던' 집무실 규모를 1/5 정도로 줄인 것이었다. 책상 하나 들어갈 집무실만 남기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회의실로 바꿨다. 작은 집무실이 상징하는 '권위 깨뜨리기'는 구정 현장에도 이어졌다. 구민노래자랑부터 온갖 민원 현장까지 구청장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드물다. "여자가 무슨 구청장한다고 그러노" 하던 구민 반응도 자연스레 "여자가 구청장 하니 좋네", "구청장이 젊으니까 부지런히 잘 돌아다니네"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 5월 9일 오후 예전 집무실 일부였던 회의실에서 마주 앉은 서은숙 구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노무현 키즈'에 주목하는 걸 크게 반겼다.

"지난 10년 동안 노무현을 소비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웠어요. 노무현이 남긴 시대정신을 어떻게 계승할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는데, 10주기 타이틀로 '새로운 노무현'이 맞는 것 같아요. 10주기인데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가볍기도 하고 이렇게 탈상하는 느낌이에요. 인터뷰 제안을 받고 이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고 대통령이 준 걸 가지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이 인터뷰도 제게 하나의 매듭점이 될 것 같아요."

[20대] '5공실세' 허삼수 질타한 노무현에 반하다
 
 성남국민학교에서 열린 13대 국회의원 부산 동구 선거합동연설회를 마친 노무현 통일민주당 후보가 자동차에 올라 지역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당시 노무현 통일민주당 후보는 허삼수 민주정의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성남국민학교에서 열린 13대 국회의원 부산 동구 선거합동연설회를 마친 노무현 통일민주당 후보가 자동차에 올라 지역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당시 노무현 통일민주당 후보는 허삼수 민주정의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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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1980년대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8년 14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한 뒤, 20년 동안 영·호남 지역주의를 깨려고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부산은 30년 가까이 민주당 출신 시장은 물론 구청장 단 한 명도 허락하지 않았다.

잠시 30년 전 대학생 서은숙으로 돌아간 서 구청장은 '잘 웃는 구청장'이란 소문이 무색하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했다. 부산 동구 출신인 서은숙은 1988년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총선 유세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당시 상대는 전두환 최측근인 '5공실세' 허삼수 전 보안사령부 인사처장이었다.

"부산 성남초등학교 합동연설회에 갔는데, 그땐 첫 후보 유세하면 (지지자들이) '우' 하며 다 나가고, 두 번째 하면 또 '우' 하며 다 나가는 치사한 방법으로 했어요. (노 전 대통령은) 그때 허삼수가 있든 말든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하는 거예요. 허삼수가 지금으로 따지면 기무사 출신쯤 되는 사람인데도, '민주화 성지 부산에서 독재 잔재를 가지고 지역 구도로 정권 잡고 국회의원 되려고 한다'고 질타하는데 멋있었어요. 누가 써준 연설문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우러나오는 거 있잖아요. '난 이 시대의 모순을 가르고 지나갈래', 그런 포효가 느껴지는 연설이었어요. 그때 노무현에 반했죠."

당시 과 학생회장이던 서은숙은 함께 학생 운동하던 친구들과 노무현 후보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이 사람은 무조건 당선시켜야 해" 하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유세장 따라다니며 박수 보내고 잔심부름도 했다고 한다. 결국 국회로 간 노무현은 '5.18 청문회 스타'로 거듭났고, 서은숙도 공안 정국이던 1989년 부산여대(현 신라대) 총학생회장이 돼 학생 운동에 전념했다.

[30대] "빨리 들어온나, 지금 대한민국이 디비졌다"
 
 서은숙 진구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벽, 공정하지 않은 우리 사회,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라며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치인의 모습에 반했다”고 말했다.
 서은숙 진구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벽, 공정하지 않은 우리 사회,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라며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치인의 모습에 반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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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각자의 길을 가던 두 사람 인연은 14년이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될 때 부산에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학자와 법조계, 문화계 진보 인사 1천여 명이 '희망연대(현 자치21)'를 만들었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대표를, 서은숙이 간사를 맡았다.

"2002년 3월쯤 베트남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민주당 경선을 시작했다는 걸 이메일 받고 알았어요. 당시 이호철(이후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선배가 '여행 마무리하고 빨리 들어온나, 지금 대한민국이 디비졌다'고 해서 갔더니 희망연대에서 일하라고 하더라고요. 남들 노사모 활동할 때 전 희망연대에 더 방점을 찍었어요. 노사모 활동 못 하는 부산지역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나 각계각층 사람들을 희망연대로 묶었죠."

그해 9월 30일 희망연대 창립총회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는 연설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서은숙은 당시 30대 중반에 첫 아이를 가졌다.

"노 대통령에게 임신했다고 했더니 좋아하면서도 '임신한 여성을 이렇게 혹사시켜도 되느냐'고 안쓰러워했어요. 노 대통령은 옆에서 보면 대통령 후보 같지 않게 소탈하고, 오며가며 만나는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어요.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원리원칙주의자였죠. 문제가 생기면 문 대통령이 나서서 단순하고 원칙적 논리로 딱딱 정리했어요. 문 대통령은 그렇게 따뜻해 보이진 않지만 속정이 깊고, 늘 남 얘기를 잘 듣는 분이었어요."

당시 희망연대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은 대부분 참여정부에 힘을 보탰지만, 서은숙은 계속 부산에 남았다.

[40대] 두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그리고 운명

막 40대에 접어든 서은숙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부산진구의회 의원이 됐다. 당시 구의원 19명 가운데 민주당 출신은 서은숙이 유일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1등으로 당선하고, 2014년 부산시의원에 도전했지만 2등으로 낙선했다. 부산의 지역주의 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떨어져보니까 기분은 안 좋더라고요.(웃음) 사실 정치인에게 떨어진 경험이 없는 건 불행이고, 떨어지지 않고 계속 선거에 이기는 게 오히려 독이에요. 떨어져 봐야 자신을 한번 돌아볼 수 있고, 실패를 겪어야 다음 성공에 대한 의지도 생기고, 좀 더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승승장구하지 않았다. 13대 총선과 1998년 종로 보궐선거를 빼면 그는 지는 데 더 익숙했다. 14대 총선 첫 낙선부터 1995년 부산시장 선거와 15대, 16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가 설 자리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정치인이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리고 전혀 다른 곳으로 가서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더구나 종로에서 국회의원 하다가 지역주의가 만연한 부산에 온다? 그건 지역주의를 깨겠다는 확고한 자기 목표와 소신이 없으면 정치인이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노사모를 비롯한 많은 '노무현 키즈'처럼 서은숙도 이처럼 '도전하는 정치인' 모습에 꽂혔다.

"노무현은 지역주의의 벽, 공정하지 않은 사회,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그런 걸 뛰어넘으려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수히 많은 벽을 뛰어넘다가 마지막에는 그 벽 앞에서... 그게 노무현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요."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서은숙은 부산대에서 부산지역 첫 추모문화제를 직접 준비했다.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 자문위원으로 3~4년 일하면서 노무현시민학교도 진행했지만 언제까지 추모에만 머물 순 없었다. 2014년 낙선한 뒤에도 부산교육청 시민감사관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정책특보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부산 행정은 특정 정당이 독점하다보니 패턴이 똑같은데, 서울은 민주당 구청장도 잘하면 연임하고 못하면 바뀌고,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행정의 변화 속도가 훨씬 빨랐어요. 박원순 시장과 시민단체 활동하면서 인연이 있었는데, 지역별로 정책특보를 한 명씩 뽑는다고 제안이 와서 흔쾌히 수락했어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서울 지자체 돌아가는 것도 보고 부산에서 구청장 출마 준비하는 분들과 공약과 정책 만드는 데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50대] 노무현-문재인-박원순에게 '사람'을 배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은 “‘시민주권 사람중심’ 슬로건을 직접 고안했다”라며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과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 박원순의 ‘시민이 주인인 서울’이 겹쳐 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은 ""시민주권 사람중심" 슬로건을 직접 고안했다"라며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과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 박원순의 "시민이 주인인 서울"이 겹쳐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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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 끝에 50대에 접어든 서은숙은 지난 2018년 6월 부산진구청장으로 당선했다. 당시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은 부산시장은 물론 16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13곳에서 당선했고, 광역기초의회도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지난 1995년 지방선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부산도 변화 움직임이 있었어요. 2014년 총선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이 5명 나왔다는 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죠. 당내 경선이 엄청 치열했는데, 경선에 이기고 나니 본선은 오히려 편하게 치렀어요. 구청장 당선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넘고 싶어 하던 지역주의의 벽, 깨어있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1차적 결실이 대통령 돌아가시고 10년 다 돼가는 지금 만들어지는구나, 대통령이 계셨으면 아주 좋아했을 텐데..."

그렇다고 부산의 지역주의 벽이 완전히 깨진 건 아니다.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최근 부산경남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부산은 민주당 지지율이 안정화된 곳은 아니어서 언제든 변명거리만 생기면 다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절대 민주당은 아니야'라던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요. 지금은 집권당에게 기대 많이 했는데 왜 이거밖에 못해, 야단친다고 생각해요."

서 구청장이 부산의 풀뿌리 정치인으로 성장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 차기 대권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세 사람 모두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건 쉽지 않은 기회였다.

"행정은 어떤 일을 할 때 '안 되는 이유' 10가지부터 찾아요. 노무현, 문재인, 박원순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었어요. 행정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도, 변화를 느끼는 것도 사람인데, 사람 중심으로 봤을 때 '되는 이유' 10가지를 찾으면 답은 있어요."

서 구청장은 지난해 11월 부산 동구와 부산진구 경계에 있는 안창마을에 임시로 만든 '미니 소방서' 사례를 들었다. 임시 소방서는 동구 땅에 있었지만 부산진구청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화제가 됐다.

"안창마을에 임시청사를 마련했는데 동구 땅이라 예산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민 안전을 확보하는 문제인데 행정 칸막이에 막혀 지원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고 결국 부산진소방서와 업무협약을 맺고 예산을 지원해 청사를 열었어요. 동구와 부산진구, 소방서가 협치해 주민 안전을 확보한 사례죠.

박원순 시장도 한강공원 매점 운영권을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줬어요. 법을 뛰어 넘어 그분들에게 필요해서 준 거예요. 사람 중심으로 행정하겠다는 철학이나 마인드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죠. 세 분에게 배운 것도 시작과 끝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구 슬로건이 '시민주권 사람중심'인 것도 그런 이유죠."

실제 서 구청장이 직접 고안했다는 '시민주권 사람중심' 슬로건에는,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과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 박원순의 '시민이 주인인 서울'이 겹쳐 있다.

"노무현이 준 DNA 가지고 더 많은 노무현 나와야"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9일 부산 진구청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남긴 시대정신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게 세상을 바꾸는 거다. 해석하기 따라 여러 의미가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올바르게 자기 소신을 펼치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게 된다, 이게 도전하는 정치인과 맞아떨어지는 말이다”고 말했다.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9일 부산 진구청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남긴 시대정신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게 세상을 바꾸는 거다. 해석하기 따라 여러 의미가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올바르게 자기 소신을 펼치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게 된다, 이게 도전하는 정치인과 맞아떨어지는 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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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 10주기 슬로건은 '새로운 노무현'이다. 이제 단순한 추모에서 벗어나 노무현이 남긴 시대정신을 발판으로 미래를 위해 한발 더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겼다. 이제 구청장으로 첫 해를 보낸 서은숙에게 10주기가 주는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10주기에 노무현을 추모하기보다는 노무현이 준 DNA를 가지고 더 많은 노무현이 나와야할 것 같아요. 내가 정치하면서 노무현을 감히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행복해요. 노무현이 내게 잘해주거나 챙겨줘서가 아니라 노무현이 보여준 게 내 정치의 기준이 돼줬다는 게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고, 그래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요."

"노무현 키즈로 불리는 게 영광"이라는 서은숙이지만 그도 미래의 '서은숙 키즈'에게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남긴 시대정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당나라 임제 선사 어록 '어디든 그곳의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가 된다'는 뜻... 기자 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게 세상을 바꾸는 거다.' 해석하기 따라 여러 의미가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올바르게 자기 소신을 펼치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게 된다, 이게 도전하는 정치인과 맞아떨어지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지방선거를 계기로 지역주의의 벽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여성 정치인의 벽은 여전히 강고하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여성 단체장은 8명에 불과하다. 조금씩 늘고 있지만 4년 전 9명보다는 오히려 1명 줄었다.

"여성 구청장이 처음이라 유권자들도 낯설어 해요. 60~70대 남성들이 하던 일을 새파란 젊은 여성이 하겠다고 하니, 당 내에도 여성 구청장을 경원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것도 불공정, 비상식이라고 생각해요. 노무현이 정치인으로서 제게 준 가르침은 '이런 불공정, 비상식과 싸워야 한다,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는 게 도전하는 정치인이 할 일이다'라고 생각해요.

부산에 20~30대 젊은 구의원들부터 정치하는 후배들이 '여성이 제대로 정치하면 저런 평가를 받는구나, 나도 서은숙 선배처럼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선배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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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