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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임옥상 화가
 임옥상 화가
ⓒ 임옥상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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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 이뤄졌던 강력한 위압과 방해공작도 임옥상 화가의 예술세계를 구속하지는 못했다. 부패한 정권과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발언권을 당당히 행사해온 그는 줄곧 민중 미술의 선봉에 서 있었다.

이후 거리와 광장으로 향한 그는 대중과 예술가 사이에 놓인 경계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 쉽게 입장 가능한 공공미술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엘리트주의 예술을 배격하고, 진정한 소통의 예술을 추구해온 그를 지난 4월 15일, 임옥상미술연구소에서 만났다.

현시대의 초상을 담는 여정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현실참여 미술운동 그룹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예술 작품 속에 배제돼 있던 현시대의 초상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1980년 10월 17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2층에서 열리기로 했던 창립전은 민중예술의 불씨를 댕긴 일대 사건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칼날은 예술가의 자유와 민중의 권리를 압살하는 병기였다. 작품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전시 불가 판정을 내린 데 이어, 전시 개막일에는 전시장의 전기 스위치를 모조리 내리면서 어둠의 장막을 덧씌웠다. 결국 참여 작가와 초대 손님은 손에 촛불을 들고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밤의 정치를 무력화한 순간이었다.

다음 날 작품들이 철거되면서 전시는 개막과 동시에 폐막을 통보받지만,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3주 뒤에 인사동의 동산방 화랑에서 전시를 재개한다. 1980년 촛불이 켜진 어둠 속에서 전시장을 지켰던 그는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의 현장에도 있었다.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느낀 모든 것은 180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가로 16m의 대작 <광장에, 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작품은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소장자에게 대여해 청와대 본관에 걸리면서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광장에,서_2017
 광장에,서_2017
ⓒ 임옥상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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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소장자보다는 작가에게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소장자가 허락한 부분이니 걸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지만, 이런저런 오해도 받고 사실은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요. 저는 권력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잖아요.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면서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워야 할 판인데, 거기는 권부(權府)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운신(運身)의 폭이 좁아진 셈인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권력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죠."

세월이 흘렀어도 정권을 향한 날카로운 비난의 잣대를 거두어본 적은 없다. 제도화된 권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민중의 곁을 지켰다. 촛불집회 당시 길이 500m, 폭 1.5m의 흰 천을 펼치며, 시민들의 이야기를 새기는 퍼포먼스 '백만백성'을 진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작업실 대신 광장에서 작품을 완성하고, 미술관이 아닌 청와대로 행진하면서 예술가로서 자유를 수호했다.

"어느 세력이든 간에 정권을 잡고 나면 큰 차이가 없어요. 이런 악순환 속에서 투표하는 국민들만 꼭두각시놀음에 빠진다는 회의감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를 이곳에서 추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자진해서 자갈밭을 걸어가는 형국이 되는 것이죠. 제가 뜻하는 바를 담아내기에 완벽한 표현은 아니지만, 무정부주의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이런 세상에서 과연 어떤 미술을 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죠.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안정적인 제도권만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자꾸 밑으로 몸을 내려서 저잣거리로 나가라는 겁니다. 예술로만 먹고 살기 힘들다거나, 예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풍토를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거죠.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거기서 답이 나오고,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그림은 오랜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이죠. 또 직접 만나서 소통하고, 행동을 같이했던 사람들은 절대로 예술가를 배신하는 법이 없어요."


공공미술의 저변 확대를 위한 헌신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족미술협의회 대표직을 역임하며 민족미술의 발전에 힘쓴 그는 1998년부터 시작한 '당신도 예술가' 프로젝트를 통해 민중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 시간은 공공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공미술의 저변 확대를 이끈  ‘당신도 예술가’
 공공미술의 저변 확대를 이끈 ‘당신도 예술가’
ⓒ 임옥상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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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 저 역시도 오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됐어요. 그림이 팔리길 하나, 누가 일을 주길 하나, 그야말로 모든 게 끊겨버린 상황이었어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제 모습도 솔직히 보여주고, 시민들한테 위로도 받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거리로 나갔죠.

그전에는 미처 공공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는데 사람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깨닫게 된 것이 많았어요. 왜 사람들이 미술관만 가면 주눅이 들어야 해요? 대관절 그림이 뭐기에 꼭 미술관까지 가서 봐야 하느냐는 거죠.

미술관에 가면 누가 말을 걸어주는 것도, 그림이 친절하게 맞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내 옷에 행여 먼지가 있나 없나 살펴가면서, 작품을 이해 못하는 나를 행여 누가 비웃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거면 미술관을 왜 가냐는 거죠. 예술이라는 것은 불특정한 거리나 장소에서 그냥 조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 싹텄죠."


그때부터 곳곳에 공공미술의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굳이 전시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더라도 삶 속에서 예술과 마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30여 년간 공공미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헌신해 오면서 그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타인과의 상생 실현에 큰 관심을 쏟았다. 2015년 10월에 개관한 창신소통공작소의 총괄기획자로 참여한 그는 공공미술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옥상 화가가 총괄기획자로 참여한 창신소통공작소
 임옥상 화가가 총괄기획자로 참여한 창신소통공작소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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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처럼 인식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봐요. 지역민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재생의 초점이 맞춰져야죠. 그러려면 인프라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둬야 해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건 사회적 형평성과 연대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봐요.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하고, 주위 사람들과 같이 소통하면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서로 돕는 사회가 돼야 하잖습니까? 그런데 경쟁을 조장하고 능력을 길러서 타인을 제압해야 한다는 식의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소통이라는 화두에, 공작소란 말을 붙인 겁니다.

창신동 전체가 다 공작소 마을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쓰기공작소, 대화공작소, 연설공작소, 영상제작공작소 등 모든 종류의 공작소가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가 가진 가치를 나누면서 상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열기가 마을 전체에 전파되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창신동 산마루놀이터 풀무골무
 창신동 산마루놀이터 풀무골무
ⓒ 임옥상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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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소통공작소와 더불어 삶의 질을 높이게 될 '산마루 놀이터'도 그의 작품이다. 친환경 어린이 놀이터라는 콘셉트에 맞게 인공 놀이시설 대신 흙, 모래, 나무 등의 소재를 도입해 어린이들이 자연과 친해지도록 하고, 골무 형태의 원뿔형 건축물 내부에 모험놀이 공간인 정글짐을 만들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설계했다.

"소통공작소와 연계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고, 실내 공간뿐만 아니라 바깥까지도 활용해서 쓸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 어린이 놀이터에도 예술을 심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감성을 키우고, 모험정신을 기를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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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