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세월 앞에 장사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라질 전설들이 안방에서 줄줄이 무너지며 이를 지켜보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1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올림픽 아레나서 있었던 UFC 237 '나마유나스 vs. 안드라데'대회는 브라질 격투 팬들에게 그야말로 악몽을 안겨줬다. 오랜 시간 브라질의 자랑으로 여겨졌던 레전드 파이터들이 자국 대회서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기 때문이다.

페더급의 살아있는 신화 '폭행 몬스터' 조제 알도(32)와 투신으로 불렸던 남자 '스파이더' 앤더슨 실바(44)를 필두로 호드리고 노게이라의 쌍둥이 동생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42), 무에타이 베이스를 바탕으로 웰터급 챔피언 타이틀전을 치른바있는 티아고 알베스(35) 등 쟁쟁한 거물들이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그런 가운데 여성부 스트로급 랭킹 1위 '해머' 제시카 안드라지(27·브라질)의 챔피언 등극은 상처받은 브라질 팬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메인이벤트로 치러진 '터그(Thug)' 로즈 나마유나스(26·미국)와의 타이틀 매치서 대역전 KO승을 거두며 리우올림픽 아레나를 찾은 브라질 관중을 열광시켰다.

안드라지는 반데레이 실바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붕붕훅' 공격에 탈여성부 완력을 앞세워 체급 내 괴물로 평가받는 선수다. 이와 맞붙은 챔피언 나마유나스는 요안나 옌드레이칙(32·폴란드)의 독주 시대를 끝낸 인기파이터였다.

먼저 기선을 잡은 쪽은 나마유나스였다. 경쾌한 스텝의 인아웃파이팅으로 무수한 유효타를 적중시키며 안드라지의 얼굴을 피로 물들게 했다. 나마유나스의 농익은 경기 운영에 안드라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집념의 안드라지는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마유나스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리꽂는 무시무시한 슬램을 선보이며 2라운드 2분 58초만에 경기를 끝내버렸다.

슬램으로 승리를 가져가는 경우는 종합격투기 무대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안드라지의 파워는 체급 내에서도 격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라이어네스(Lioness)' 아만다 누네스(30·브라질)를 잇는 새로운 브라질 몬스터가 탄생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전성기 지난 브라질 전설들, 안방에서 와르르
 
40대 중반에 들어선 미들급 랭킹 14위 앤더슨 실바는 과거처럼 정상권에서 위용을 과시하기는 힘들어졌다. 하지만 노련함을 앞세워 여전히 옥타곤 무대서 활약하고 있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한창 기량에 물이 오른 '더 라스트 스타일벤더(The Last Stylebender)' 이스라엘 아데산야(30·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도 좋은 승부를 벌이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투신' 앤더슨 실바(사진 왼쪽)의 전설도 이제는 정말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투신' 앤더슨 실바(사진 왼쪽)의 전설도 이제는 정말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 UFC 아시아 제공

 
하지만 약해진 육체는 더 이상 실바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랭킹 10위 제라드 캐노니어(35·미국)의 로우킥 한 방에 1라운드 4분 47초 만에 TKO로 쓰러지고 말았다. 캐노니어의 인사이드 뒷발 로우킥이 실바에게 적중되는 순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였지만 한창 파워에 물이 오른 후배의 한방을 견디기에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알베스와 호제리오 노게이라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알베스는 경기 내내 끌려다닌 끝에 로레아노 스타로폴리(26·아르헨티나)에게 3라운드 종료 0-3 판정패를 당했다. 호제리오 노게이라 역시 라이언 스팬(27·미국)에게 초반부터 밀린 끝에 1라운드 2분 7초 만에 넉아웃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브라질 팬들을 가장 아쉽게 했던 것은 역시 알도의 패배였다. 알도는 현 페더급 챔피언 '블레시드(Blessed)' 맥스 할로웨이(28·미국)에게 덜미를 잡히며 다시 정상에 오르는 길은 험난해졌지만 그 외의 상대들에게는 여전히 폭군이었다. '늙은 맹수'라는 혹평이 무색할 만큼 여전함을 과시했다.

그는 제레미 스티븐스, 헤나토 '모이카노' 카네이로를 연달아 TKO로 잡아내며 폭군의 건재를 알린 바 있다. 하지만 랭킹 4위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30·호주)는 보통의 상대들과 달랐다. 통산 전적 19승 1패를 기록 중인 볼카노프스키는 2013년을 끝으로 패배가 없다. 16연승(UFC 6승)의 가파른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볼카노프스키의 상승세는 알도 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당초 둘의 승부는 '알도가 유리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볼카노프스키는 레슬링 압박과 묵직한 펀치를 앞세워 경기를 이끌어가는 스타일이었고 알도의 테이크다운 방어 스킬은 UFC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라운드로 끌고 가지 못할 경우 볼카노프스키의 레슬링 압박은 무용지물이 되고 자연스레 스탠딩 싸움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된다면 스트라이커 알도가 할 것이 더 많다는 예측이 우세했다. 과거 좋았던 시절의 프랭크 에드가가 중요한 순간마다 알도의 벽에 가로막혔던 이유다.

볼카노프스키는 알도의 허를 찌를 다양한 전략을 제대로 장착하고 나왔다. 킥커인 알도를 상대로 초반부터 로우킥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유효타 싸움에서 앞서간 것은 물론 적지 않은 누적 데미지를 쌓았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알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볼카노프스키의 로우킥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알도의 신경이 로우킥에 가자 볼카노프스키는 미들킥은 물론 하이킥까지 고르게 차줬고 덩달아 펀치의 적중률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무리해서 테이크다운을 시도하기 보다는 케이지 구석에서 클린치싸움을 벌이며 확실하게 점수를 쌓아갔다. 매우 영리한 플레이였다.

로우킥 데미지가 누적된 알도는 중반 이후 스텝을 밟는 것조차 불편해했고 결국 볼카노프스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잡혀버리고 말았다. 신체 능력도, 전략도 볼카노프스키의 완벽한 승리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로우킥 마스터 알도가 레슬러에게 로우킥으로 당하는 모습은 세월무상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차! 코헤이아, 아싸! 알다나, 승부 가른 대실수
 
여성 밴텀급 랭킹 11위 리에네 알다나(31·멕시코)가 13위 벳지 코헤이아(35·브라질)를 잡아냈다. 치열한 타격 공방전이 오간 가운데 코헤이아의 실책을 틈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암바를 작렬시키며 3라운드 3분 24초 만에 서브미션 승리를 가져갔다.
 
 벳지 코헤이아(사진 왼쪽)는 큰 실수를 저지르며 유리한 경기를 허무하게 내주고 말았다.

벳지 코헤이아(사진 왼쪽)는 큰 실수를 저지르며 유리한 경기를 허무하게 내주고 말았다. ⓒ UFC 아시아 제공

 
알다나는 12cm가량 차이 나는 신장의 우위를 앞세워 원거리에서의 아웃파이팅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거리를 유지한 채 앞 손 잽을 부지런히 냈고 부지런히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이에 코헤이아가 묵직한 훅을 휘두르면서 전진 압박 전략으로 맞받았다. 알다나는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안면 가드를 바싹 올린 채 코헤이아의 매서운 타격에 대비했다.

초반 신중하게 경기를 진행했던 알다나는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몸이 풀린 듯 아웃파이팅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앞 손에 이어 뒷손 시도가 늘어났고 2라운드부터는 간간히 킥까지 섞어줬다. 하지만 코헤이아도 만만치 않았다. 1라운드 때까지만 해도 좀처럼 타격감을 잡지 못하는 듯싶었으나 2라운드에 들어서서는 과감하게 파고들어 거리를 좁혔고 장기인 오버핸드훅의 적중률 또한 높아지기 시작했다.

알다나의 잔 타격이 나오는 찰나 강하게 맞받거나 먼저 맞춰버리는 등 유효타 싸움에서도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은 알다나는 2라운드 막판 니킥 공격에 펀치 콤비네이션까지 섞어 쓰며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3라운드에서도 양 선수는 본인의 장기를 살리려는 움직임을 더욱 치열하게 가져갔다. 유효타는 비슷하게 치고받았으나 문제는 누가 더 강하게 데미지를 입히고 옥타곤 중앙을 점령해나가며 주도권을 점령해나갔냐는 부분이다. 바로 거기에서 코헤이아가 앞서는 분위기였고 그대로 경기가 흘러갈 경우 승리가 유력해 보였다.

그 순간 대반전이 일어났다.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던 코헤이아가 점수를 굳히려는 듯 난데없이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이에 알다나는 능숙하게 테이크다운을 막아낸 채 백포지션을 점령했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삽시간에 암바 공격을 성공시켰다.

코헤이아의 순간 판단 미스가 저지른 대실수였다. 물론 기회를 잘 살린 알다나의 결정력도 칭찬받을만했다. 계체량을 2.5kg나 초과해 파이트머니 30%를 알다나 측에 넘기고 경기를 벌였던 코헤이아는 경기마저 패하며 아픔이 2배가 됐다.

다가져간 승리를 허무하게 내준 코헤이아의 이번 실책은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두고두고 회자(?) 될 것으로 보인다. 루크 락홀드를 상대로 엉뚱한 뒤돌려차기를 감행하다 탑 포지션을 내주고 미들급 챔피언 벨트를 빼앗긴 크리스 와이드먼, 흐름을 유리하게 잘 이끌어놓고도 마지막 1초를 견디지 못하고 야이르 로드리게스에게 카운터 엘보우를 얻어맞고 무너진 정찬성 등의 승부가 오버랩 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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