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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닿는 곳마다 평온하다. 초가지붕 볏짚도, 마을 흙길도 온통 누런 빛으로 순박하다. 고택 기와지붕은 언제 봐도 묵직하다. 잘 어울린 집들처럼, 주인들도 서민이든 선비든 모두 '하회마을' 사람으로 한데 모여 같이하는 삶을 이뤘다. 집집으로 초대하는 좁은 골목을 벗어나 소나무 무리가 멈춰 서있는 흙길을 걸어본다.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부용대로 가는 길, 휘돌아가며 마을을 품어주는 낙동강 물결을 볼 차례다.  

"다리 건너 저리 가던 게 까마득하지"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됐다.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됐다.
ⓒ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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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은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 대체로 시냇가의 삶은 반드시 큰 고개에서 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평시건 난시건 오래 살 수 있다. 그런 계거처로는 영남의 도산과 하회가 제일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하회의 가치가 담겨 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한다. 큰 인물이 많이 나오고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선 시대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자자했다. 하회마을에는 서애 류성룡과 그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난 풍산 류씨 가문의 종택이 모여있다. 

"다리 건너 저리(부용대) 가던 게 까마득하지. 수십 년도 더 됐지 싶어. 이렇게 (다리가) 멀끔하지도 않았지. 사람들 편하게 가고 얼마나 좋아. 몇 해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물 건너려고 배 오길 기다렸다 얼만가 내고 타고 갔는데…"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첫날인 11일 하회마을 와룡 지내리에 사는 손진림(81) 할머니를 만났다. 안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오래 전에 놓였던 섶다리를 떠올렸다. 실제 하회마을보존회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10월 말경에 섶다리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듬해 장마철 무렵 거둬 들이던 임시 다리였다. 하회마을 섶다리는 마을과 강 건너편을 이어주던 다리로, 1828년 이의성이 그린 '하회도'에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 기념행사 첫날인 11일, 50년만에 재현된 전통 섶다리가 일반에 개방됐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 기념행사 첫날인 11일, 50년만에 재현된 전통 섶다리가 일반에 개방됐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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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섶다리를 설치할 때는 물에 강한 물푸레 나무를 Y자형으로 지지대를 먼저 세웠다. 그 위에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다리 골격을 만들고 솔가지로 상판을 덮은 뒤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어 만들었다. 그 모양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형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섶다리는 '물돌이 마을'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을 맞아 50년 만에 재현돼 일반에 개방된다. 당초 10월 완공 예정이던 섶다리는 임시 완공돼 이달 26일까지 한시 운영된다. 

정길태 안동시 관광진흥과장은 "섶다리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만들던, 옛사람들이 남긴 공동체 정신의 산물"이라며, "하회마을이라 전통의 의미가 더 남다른 섶다리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동 양반과 영국 신사가 만나는 '로열 웨이'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1999년 4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안동을 방문해 하회마을 담연재에서 73번째 생일상을 받았다. 1883년 한국과 영국 수교 116년 만에 영국 국가원수가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이었다. 당시 여왕은 하회별신굿탈놀이 아홉마당을 한동안 관람하고 안동청과시장과 봉정사 극락전, 대웅전 벽화를 둘러보며 한국의 전통 생활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년이 흘러 영국 왕실이 대를 이어 다시 안동을 찾는다. 오는 14일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하회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다. 안동시는 11~15일 닷새 동안 하회마을과 봉정사, 안동농수산물도매시장 일대에서 '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방문 2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행사 기간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 남사당패 공연, 전통혼례 시연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펼쳐진다. 자세한 프로그램 일정은 '안동관광' 홈페이지 알림마당을 참조하면 된다. 
 
 하회마을 곳곳에서 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방문 2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생일상 전시’ ‘나의 여왕 포토존’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하회마을 곳곳에서 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방문 2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생일상 전시’ ‘나의 여왕 포토존’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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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1시 양진당 앞 무대에서 남사당 놀이가 펼쳐졌다. 12, 13, 14일 3차례 공연이 남아있다.
 11일 오후 1시 양진당 앞 무대에서 남사당 놀이가 펼쳐졌다. 12, 13, 14일 3차례 공연이 남아있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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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는 앤드루 왕자 방문에 맞춰 여왕이 다녀간 하회마을∼농수산물도매시장∼봉정사 32㎞ 구간을 '퀸스 로드' 대신에 '로열 웨이(The Royal Way·왕가의 길)'로 이름 지었다. 앤드루 왕자가 오는 14일에 시발점인 하회마을에서 거리명을 선포하고, 표지석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10, 11일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옛 선비들이 즐기던 ‘줄불놀이’가 재현됐다.
 10, 11일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옛 선비들이 즐기던 ‘줄불놀이’가 재현됐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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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일에는 하회마을 만송정과 낙동강 건너편 부용대를 연결하는 줄불놀이도 열렸다. 해마다 음력 7월 16일 한여름 밤에 하회의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즐기던 놀이다. 부용대 아래로 흐르는 강을 떠다니며 '선유시회(船遊詩會)'를 겸하던 불꽃놀이 축제였다.

시 한 수가 지어질 때마다 부용대 정상에서 불 붙인 솔가지묶음을 절벽 아래로 던졌다. 활활 타는 불꽃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 백사장과 배위에 모든 사람은 일제히 "낙화(落火)야"라고 크게 소리쳤다. 

"옛 선비들이 이렇게 자연 속에서 시를 짓던 모습을 상상해보니 정말 멋지고, 지금 이곳 하회마을에서 밤을 보내는 게 더 즐겁고 힐링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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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줄불놀이 재현 행사를 본 최문수(24)씨는 "안동이 고향이면서도 하회마을의 가치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며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전통 행사들을 많은 사람이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우리 민속의 집단거주지'
 
 행사 첫날인 11일 하회마을 귀촌종택에서 전통혼례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 기간 중 매일 진행된다.
 행사 첫날인 11일 하회마을 귀촌종택에서 전통혼례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 기간 중 매일 진행된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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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씨족마을로, 600여 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와 탁월한 경관이 가치를 인정받았다. 씨족마을이란 장자 상속을 기반으로 같은 성씨 혈연집단이 대를 이어 모여 사는 유교문화 특유의 마을을 말한다. 

하회마을에는 풍산류씨 종가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 생가인 충효당 등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축물만도 9채나 돼 한 마을에 유례없이 많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문헌 자료도 귀중하다.

국보 132호인 류성룡의 <징비록>이 대표적이다. 전통 관혼상제가 이어지는 무형문화유산도 주목할 만하다. 중요무형문화재 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물론, 국보 121호인 하회탈과 병산탈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회마을 노인회관에서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 다듬잇방망이질을 시연하고 있다.
 하회마을 노인회관에서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 다듬잇방망이질을 시연하고 있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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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 노인회관에서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 맷돌과 절구질 체험이 이뤄지고 있다.
 하회마을 노인회관에서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 맷돌과 절구질 체험이 이뤄지고 있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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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놀아보는데, 자, 때리자!"

버나잡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흥겨운 농악가락이 마을을 들썩인다. 멀리서 다듬이 방망이 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오랜 하회마을 주민인양, 놀고 일하는 흥취에 절로 빠져든다. 하회마을에서 보고 듣는 것들은 어느 하나 요란한 법이 없다. 마음의 고요가 절실할 때면, 언제든 이 마을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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