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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된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정면 모습(붉은점선 안이 불상이 있었던 자리)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된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정면 모습(붉은점선 안이 불상이 있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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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후면 모습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후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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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요즘 <강식당> 시즌2 촬영지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경북 경주 화랑교육원을 찾아갔다. <강식당> 시즌2 촬영지로 소문나 최근에 관광객들의 출입이 잦은 경주 화랑교육원 내에 문화재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화랑의 집' 우측에 있는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이다.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에도 등재된 곳이다.

우리 전통 속담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다. 화랑교육원 원내에 있어 그동안 여기에 문화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강식당> 시즌2 촬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최근에야 조금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찾아간 곳이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이다.

멀리서 보면 북방식 고인돌처럼 보이는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은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감실이란 석조불상을 모셔두는 곳을 말한다.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은 감실의 크기가 높이 2.5m, 내부 공간의 바닥 길이 1m, 깊이 0.9m이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밑받침돌 위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높이 세운 뒤 위로 덮개돌을 얹어 앞쪽을 트이게 한 모습이다. 그 안에는 불상을 받치던 길쭉하고 둥근 대좌가 놓여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에 이곳에 불상을 모셔두었다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최초의 인공 석굴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입구 바닥에는 연화문 대석을 놓았다. 원형 연대석은 파손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이처럼 좁고 긴 연대석으로 입구를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어떠한 불상을 놓은 것인지는 현재까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감실의 크기와 모양을 보아 좌불을 안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주 남산동 화랑교육원 원내 '화랑의 집' 모습
 경주 남산동 화랑교육원 원내 "화랑의 집"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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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화랑교육원 원내 건물 모습
 경주 화랑교육원 원내 건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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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속의 불상의 행방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전해진다. 먼저 일제강점기 때 경주 굴불사지에 있는 불상처럼 머리만 도려내는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른 흔적이 남아 있듯이 일제가 훼손하여 없애 버렸다는 설과 불상의 아름다운 미소와 얼굴이 탐이 나서 일본으로 유출해 가져갔다는 설이 전해진다.

또 한편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때 불상을 훼손하여 유생들이 파괴하였거나 우물에 던져버렸다는 설도 전해진다. 어쨌든 텅 빈 석조감실의 모습을 쳐다보니 안타깝기 짝이 없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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