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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진정인들이 이 사건 체육관의 대관허가를 취소하고, 다른 날짜로 일정을 조정해 주지 아니한 행위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진정인을 불리하게 대우한 것이다."

국가인권위 결정문의 마지막 문구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 당연한 문구를 보기 위해 그 많은 노력을 하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니.

5월 10일, 국가인권위는 2017년 동대문구와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이 '여성성소수자생활체육대회'에 대한 체육관 대관을 취소한 것에 대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 "직원들에 대한 특별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 등을 권고했다.

퀴어여성네트워크(아래 퀴여네)가 2017년 9월 진정을 제기한 지 약 1년 7개월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진정 당사자로서 퀴여네가 이 결정을 받게 된 과정과 소감을 이 자리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체육대회가 인권위 진정이 되기까지

퀴여네는 2017년 10월 21일, 제1회 여성성소수자생활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동대문구체육관에 대관신청을 하였고, 사용허가 및 대관료 납부까지 완료하였다. 이미 양천구민체육센터에서 석연치 않은 공사를 이유로 대관을 취소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대관은 신중하게 진행되었고,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들자 홍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9월 25일. 지금도 잊히지 않는 전화를 동대문구 체육관으로부터 받게 된다. 전화를 한 대관담당자는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온다", "미풍양속에 어긋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며 대관이 취소될 수 있다고 알렸다.

퀴여네는 긴급대책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려 했다. 그러나 미처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인 바로 그 다음날인 9월 26일, 동대문구 체육관은 일방적으로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10월 21일에 갑자기 천장공사가 잡혔다는 이유에서였다. 누가 보아도 핑계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차별을 당한 사람들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퀴여네는 대관이 채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이었기에 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을 하기로 하고 관련 증거들을 수집했다. 다행히도 체육관 대관 담당자와의 통화는 모두 녹음이 되어 있었다.

또한 대관 취소 이후 퀴여네가 체육관에 직접 찾아가서 면담한 내용도 마찬가지로 녹음을 하였다. 한편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체육관 공사일정에 대한 자료까지 수집하였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9월 28일,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서를 넣었다.  
 
 2017. 9. 28.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을 하는 모습
 2017. 9. 28.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을 하는 모습
ⓒ 퀴어여성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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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러 여건상 예정된 날짜에 체육대회를 하기는 어렵다 판단하여 긴급구제를 일반 진정사건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받게 된 진정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체육관 측은 전화통화에서도, 면담에서도 모두 불가피하게 공사일정이 겹쳤다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언제 적힌지도 모를 담당자의 메모 1장뿐이었다. 이렇게 얄팍한 자료를 갖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한편, 씁쓸한 마음도 느낀다.

만일 퀴여네가 녹음을 하지 않고 정보공개청구도 거부당해 제출할 자료가 없었다면, 그 반면 체육관 측이 뭔가 그럴듯한 자료를 갖추었다면 과연 이러한 명백한 차별이 밝혀질 수 있었을까. 가해자가 아닌 차별을 당한 피해자가 부지런해야 하는 현실은, 차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여러 개선들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보여준다.

노골적 차별에 맞서 체육대회를 해야 하는 이유

한편으로 결정문을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도 있다. 퀴여네와 체육관 대관담당자가 면담을 했을 당시 담당자는 21일에 잡힌 모든 대관이 취소되었고 연말까지 일정이 잡혀 있어 시간 조정은 불가능하다 하였다.

그러나 결정문에서 드러나듯 21일 오전에 대관을 하였던 어린이집 행사는 일정을 조정해 11월 25일에 진행이 되었다. 심지어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이렇게 대관을 취소하고 일정조정이 되지 않은 사례는 퀴여네만이 유일하다는 이야기도 조사 과정에서 들었다. 분노를 넘어 실소가 나오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되었던 동대문구 체육관 담당자들에게 대체 '성소수자'는 어떤 존재일까. 아무런 근거 없는 혐오가 담긴 민원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관을 취소해도 되고, 그럼에도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을 그런 무력한 존재? 모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성소수자를 쉽게 차별해도, 쉽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동대문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소수자 행사에 대한 대관취소, 거부는 서울 서대문구, 대구시, 부산시, 제주시 등 곳곳에서 벌어졌고 벌어지는 일이다. 이에 맞서는 방법은 결국 더 많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퀴여네가 여성성소수자를 위한 체육대회를 하고 차별에 맞서 궐기대회를 하고, 나아가 성소수자들이 축제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유일 것이다.

2018, 2019 퀴어여성게임즈, 게임이 끝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진정 제기 후 결정을 받기까지의 1년 7개월, 퀴여네는 바쁘게 움직였다. 한 차례 연기된 체육대회 개최를 위해 2018년 초부터 다시 기획단을 구성하여 평창올림픽 개막식장, 여성마라톤 행사장에서 모두를 위한 스포츠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17일. 은평구민 체육센터에서 마침내 '2018 퀴어여성게임즈'가 개최되었다.

한 차례의 연기를 거치며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담아 이루어진 행사는 선수와 관중 포함 약 300명이 참가하며 여러 스포츠의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관련기사 : 궐기대회까지 한 체육대회,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다http://omn.kr/rqjv).
 
 2018 퀴어여성게임즈 중 400m 계주대회 모습
 2018 퀴어여성게임즈 중 400m 계주대회 모습
ⓒ 퀴어여성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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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체육대회를 열며 퀴여네는 수많은 여성성소수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체육활동에서 배제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퀴어여성게임즈를 통해 해방과 지지를 얻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2019년 다시 퀴여네는 '2019 퀴어여성게임즈'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2017년과 같이 가을 중에 대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기획단을 구성하여 활발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이미 한 차례의 대회를 거치며 기획단은 노하우를 쌓았고 여성성소수자들의 대회 참여에 대한 관심 역시 확인하였기에, 대회 준비는 원활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모든 경험에서 보듯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서는 기획단과 참가자들의 열망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크고 성대하게 체육대회가 이루어지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며, 이는 또 다시 각 지자체 공립 체육시설의 문을 두드려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자체에 역제안을 하고자 한다.

2019 퀴어여성게임즈를 위해 각 지자체의 체육시설 대관 협조 요청을 구한다. 눈에 보이는 뻔한 차별을 하고 민망해지는 것보다는 지역 내에서 수많은 여성성소수자들이 모여 멋진 경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경험이 아니겠는가. 퀴여네는 항상 열려있으니 언제든 연락주길 바란다.

"우리의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2018 퀴어여성게임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현수막 문구는 이러했다. 게임이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이에 호응해서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변화도 필요하다.

앞으로 이어질 퀴어여성게임즈는 스포츠를 통해 여성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냄과 동시에 게임이 끝나지 않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5. 4. 열린 여성마라톤대회에 무지개를 달고 참가한 2019 퀴어여성게임즈 기획단
 5. 4. 열린 여성마라톤대회에 무지개를 달고 참가한 2019 퀴어여성게임즈 기획단
ⓒ 퀴어여성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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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한희는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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