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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잊지 못해 세운 '보석으로 만든 무덤' 타지마할.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잊지 못해 세운 "보석으로 만든 무덤" 타지마할.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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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을 통해 상상은 했었다. 그러나 마주한 실상은 조잡한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눈처럼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 1cm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균형미와 완벽한 좌우 대칭. 거기에 미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까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계 최고의 석조 건물"이라 칭송받아온 타지마할(Taj Mahal) 앞에는 나를 포함한 100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놀라움의 순간'을 사진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타지마할은 외형적 아름다움과 함께 건물이 만들어진 낭만적 내력까지 유명하다. '왕의 불멸하는 사랑이 만든 왕비의 무덤'인 타지마할은 고도(古都) 아그라(Agra)의 자무나강(江) 인근에 우뚝 서있다. 17세기 이곳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22년의 시간을 들여 예술 작품처럼 만든 왕비의 무덤

무굴제국의 다섯 번째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은 당시의 왕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자신이 통치하는 땅을 넓히고 싶어 했다. 그랬으니 이웃 나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많은 날들을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터에서 보낸 샤 자한.

그는 독특하게도 왕자들이 아닌 아내 뭄타즈 마할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다. 다른 왕들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죽음의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는 싸움의 현장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왕과 왕비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둘의 사랑은 전투가 아닌 의외의 사건으로 비극적인 파국을 맞는다. 샤 자한을 따라 데칸고원으로 간 뭄타즈 마할이 초원의 천막에서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것. 왕은 절망스런 몸짓으로 오래도록 통곡했다.

그 당시 최고 권력자인 왕은 대부분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봤다. 군왕이 여러 여성을 취하는 게 흠이 되지 않았던 시절. 하지만 샤 자한은 달랐다. 오직 왕비 한 사람만을 영혼을 나눈 친구이자, 사랑의 대상으로 아꼈다. 둘이 결혼 생활을 통해 14명의 아이를 낳은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아그라로 돌아온 왕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조형물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슬람 건축의 최정점'이라 평가받는 타지마할은 그렇게 현실로 성큼 다가섰다. 2만 명의 인부와 수천 마리의 코끼리가 22년에 걸쳐 축조한 '지구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엔 '비극'이 개입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비극은 사랑을 완성하는 유용한 재료가 된다.
 
인도엔 이슬람과 힌두 양식의 독특한 건축물이 많다. 사진은 인도의 한 지역을 통치한 마하라자의 성.
 인도엔 이슬람과 힌두 양식의 독특한 건축물이 많다. 사진은 인도의 한 지역을 통치한 마하라자의 성.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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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하는 사랑은 대부분 인간의 꿈이 아닐지

마침내 타지마할이 완성된 순간.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백의 대리석이 햇살을 받아 휘황하게 빛났고, 사용된 돌의 육중한 무게와는 관계없이 건물은 공중에 솟아오른 듯 가벼워 보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이란에서 온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은 최고급 석재와 보석을 이용해 '다시 짓기 힘든 매력적 무덤'을 만들어냈다. 터키, 티베트, 미얀마는 물론 멀리 이집트에서도 주먹만 한 보석들이 상자에 담겨 공사 현장으로 조달됐다고 한다.

매끈하게 조각된 아치형의 입구와 수만 송이 꽃으로 장식된 정원, 예술작품에 가까운 수로와 연꽃 모양의 수조까지…

하지만 '보석 같은 왕비의 무덤'을 둘러싼 낭만적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타지마할은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불러왔다. 공사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탄을 맞은 것.

그로부터 10년 후. 경제적 위기로 인한 혼란 끝에 샤 자한은 반란을 일으킨 자신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에 의해 높은 탑에 갇힌다. 거기서 타지마할을 내려다보며 죽는 날까지 왕비를 그리워했다는 무굴제국의 왕.

사랑하는 아내의 몸에서 나온 자식에게 배신당한 샤 자한은 얼마나 비통했을까? 그 심정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느린 발걸음으로 타지마할을 둘러본 뒤 아그라의 밤거리를 걸었다. 사랑을 비극으로 이끄는 인간의 욕망에 관해 생각했고, 욕망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뱀을 떠올렸다.

아래는 그날 밤 만들어진 졸시다.

뱀에 관하여

철로가 지나는 도시 외곽에 사는 나는
밤마다 뱀을 꿈꾼다
두 개, 혹은 네 개의 발로는 모자라
온몸으로 지상에 어지러이
제 흔적을 꿈틀거려 놓는
거대한 자기학대
뒷걸음질 모르는
운명적 무모함을
하얀 얼굴 가느다란 손가락의 사내들
비대한 욕망을 잉태한 이미 늙은 소녀들이
떠다니는 도심
붉고 푸른 독을 품고
제 살갗에 상처를 내는
황홀한 쾌락으로
피 흘리는 우주, 고통의 심연으로
눈을 잃은 뱀이 간다
밤낮 없이 배설되는
끈적이는 밑바닥으로
밤꽃향기에 끌려, 뱀이
눈을 잃은 뱀이 숨 가쁘게 기어간다.

태그:#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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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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