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신에 의해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기적'이란 단어의 다른 뜻을 새로 추가해야 할 듯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이틀 연속으로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는 그런 믿기 힘든 일이 이틀 연속으로 일어났다.

시작은 리버풀 FC였다. 지난 2일(이하 한국 시각)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에 0-3으로 완패를 당한 리버풀은 8일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모하메드 살라와 로베르토 피르미누가 부상으로 결장하고도 주전이 총출동한 바르셀로나를 4-0으로 꺾었다. 악몽 같은 탈락을 경험한 바르셀로나의 에이스 리오넬 메시가 안필드의 드레싱룸에서 눈물을 쏟았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리버풀이 만들어 낸 첫 번째 기적은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리버풀이 만든 기적은 다음날 토트넘 핫스퍼가 이어받았다. 토트넘은 9일 AFC 아약스와의 4강 2차전에서 전반 0-2 열세를 뒤집고 3-2로 경기를 뒤집으며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암스테르담 원정에서 아약스에 45분 동안 3골을 넣는 것은 홈에서 바르셀로나를 4-0으로 이기는 것만큼이나 힘든 미션이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그 기적 같은 미션을 해냈고 그 중심에는 세 골을 모두 책임진 '슈퍼 히어로' 루카스 모우라가 있었다.

네이마르처럼 성장하지 못했던 브라질의 초신성

토트넘은 해리 케인이라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또 그를 보좌하는 윙어들의 수준도 매우 높다. 그리고 토트넘 윙어들은 뛰어난 신체조건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물론 메시나 디에고 마라도나, 호마리우 같은 작은 체구의 선수들 중에서도 굉장한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도 있다. 뛰어난 신체조건은 축구를 잘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 아니지만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늘어나는 현대축구에서 피지컬이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토트넘은 183cm의 손흥민을 비롯해 188cm의 델리 알리, 184cm의 에릭 라멜라처럼 좋은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윙어들이 많다. 하지만 모우라의 신장은 172cm로 상대적으로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모우라는 뛰어난 발재간과 개인기, 평균 이상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클래식한 유형의 윙어다. 전 세계 어느 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남미 출신의 윙어 중 한 명에 불과한 그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루카스 모우라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루카스 모우라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CA 유벤투데와 코린치안스의 유스팀을 거쳐 2005년 브라질의 명문 상파울루 FC에 입단한 모우라는 2010년부터 성인 리그에서 두 시즌 동안 활약하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 올렸다. 2012년 브라질에서는 모우라를 비롯한 '유망주 3인방'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모우라와 함께 '유망주 3인방'으로 불린 나머지 2명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적료를 기록한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와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간수(플루미넨시 FC)였다.

인터밀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같은 빅클럽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던 모우라는 2012년 8월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했다. 금방이라도 '월드클래스'로 떠오를 것 같았던 모우라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능가하는 '초신성' 킬리앙 음바페와 이미 월드클래스로 성장한 네이마르가 이적하면서 모우라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모우라는 2018년 2월 2500만 유로(약 328억 원)의 이적료에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PSG로 이적할 때 600억 원이 넘었던 이적료는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라멜라와 쉽지 않은 주전 경쟁을 펼치던 손흥민이었기에 일부 국내 축구 팬들은 모우라의 이적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모우라는 오른쪽 측면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선수인 만큼 손흥민과는 경쟁보다는 협력관계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 ⓒ AP/연합뉴스

 
케인의 자리에 들어온 모우라의 기적 같은 왼발 해트트릭

모우라는 토트넘 이적 첫 시즌 총 11경기에 출전해 1골 4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많은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순위 싸움이 본격화된 겨울 이적시장의 끝자락에 이적한 그는 필드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일 기회를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다. 모우라 입장에서도 프리미어 리그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시즌 5개의 공격포인트를 통해 자신감을 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모우라는 델리 알리와 케인, 라멜라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손흥민이 아시안컵 참가로 자리를 비운 이번 시즌 토트넘 공격을 이끌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37라운드까지 리그 31경기(선발출전 24회)에 출전한 모우라는 10골과 75.5%의 패스 성공률로 토트넘 공격의 새로운 무기로 활약했다. 그리고 지난 4월 10일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케인이 부상을 당하면서 '조커'였던 모우라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졌다.

모우라는 18일 맨시티와의 8강2차전부터 선발로 출전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후반37분 벤 데이비스와 교체됐다. 모우라는 홈에서 열린 아약스와의 4강1차전에서도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날 두 차례의 슈팅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골문을 벗어나고 말았다. 하지만 모우라는 모두가 토트넘의 탈락을 예측했던 암스테르담 원정에서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전반 한차례 슛을 시도하며 컨디션을 점검한 모우라는 후반 시작 14분 만에 멀티골을 터트리며 0-2의 열세를 2-2 동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 경기 종료 휘슬이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후반 추가 시간 막판, 모우라는 알리의 패스를 받아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리며 토트넘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리그에서 10골 중 8골을 오른발로 기록했던 '오른발잡이' 모우라였다. 하지만 이날 해트트릭을 기록한 세 골은 모두 왼발이었다.

아약스 선수들은 물론 토트넘의 동료 선수들도 오른발잡이 모우라가 왼발로 3골을 넣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우라는 가장 긴장되는 상황에서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며 반대 발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대활약으로 토트넘의 '슈퍼히어로'가 됐다. 결승에서 토트넘과 맞붙는 리버풀은 토트넘에 손흥민 못지않은 뛰어난 양발잡이 모우라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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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토트넘 핫스퍼 루카스 모우라 해트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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