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590년 일본에서는 1467년 오닌의 난 이래 120여 년 동안 이어진 이래 전국시대가 마무리된다. 일본판 '무인시대'라고도 볼 수 있었던 최악의 난세였지만 정작 이를 종식시킨 인물은 어느 명문가의 사무라이, 조정의 관부 엘리트도 아닌 시골 농부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였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입지전(立志傳)적 인물은 하나의 잘못된 역사적 선택에 의해 우리 민족의 원수로 자리매김했다. 바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다. 일본 통일 이후 짧은 시간 안에 내부 권력 서열을 정리, 스스로 태합(太閤)의 지위에 올라 선 히데요시는 전국 다이묘(지방 영토를 다스렸던 영주들)들을 규합하여 본격적인 조선침략에 착수한다. 때는 1592년 음력 4월 13일. 양력으로 보자면 대략 5월 초·중순 경으로 요즈음에 해당한다. 임진왜란은 양국, 특히 우리나라에게 비극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져 있다.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왜란(倭亂)의 발발 시기에 맞춰 새로이 부활하는 당대의 유적이 일본에 있다. 히데요시의 오사카성(정확히는 성벽)이다. 참고로 지금 우리가 관광유적으로 보고 접하는 현존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가문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재 축조된 시설로 실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에 오사카성의 본래 주인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산을 복원해냄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것에 당국의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사카시는 레이와(令和) 첫날인 지난 5월 1일부터 3일간 수백 년간 땅속에 묻혀있던 '히데요시의 성벽' 일부를 일반에 공개한 데 이어 '도요토미 성벽 공개 프로젝트'(아래 히데요시 프로젝트)를 통한 전시관 건립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0502 산케이신문 홈페이지 (붉은박스: 레이와 시대에 되살아나는 도요토미의 오사카성)
 190502 산케이신문 홈페이지 (붉은박스: 레이와 시대에 되살아나는 도요토미의 오사카성)
ⓒ 최우현

관련사진보기

복원의 이면

'그저 유적 복원인데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까지 있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실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심스럽기 짝이 없는 프로젝트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의 역사적 색채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임진왜란의 원흉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 일본 내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세 일본의 국토 확장에 진력한 도전적 인물로 추종받고 있다.

특히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한 일본 근현대 군국주의자와 '미토학(水戶學)'을 원류로 한 민족주의 국학자들에게 영웅처럼 숭배받는 인물이 바로 히데요시다. 이렇듯 히데요시에 대한 찬가를 불렀던 사상가로는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 니토베 이나조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더해 그들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행위를 고대 일본의 한반도 정복설인 '임나일본부설'과도 연관 지어 이야기한다. 그 주장을 간략히 풀이하자면 '진구황후(神功皇后)가 과거 한반도를 정복한 것처럼' '히데요시 또한 조선을 정벌함으로써 일본의 국위를 신장'시켰다는 것이다. 아래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학자로 '식민(植民)은 문명의 전파다'라는 궤변을 남긴 '니토베 이나조'(1862~1933)의 저서 <조선문제>의 한 대목이다.
 
 "가장 현저하지만 어중간한 정복 시도(=임진왜란)는 이미 히데요시가 행한 바 있다. 그 이후 일본은 반도에 손을 댈 수가 없었지만 동면 중이었을 때조차 조선이 속국이었다는 점(=임나일본부설)을 결코 잊지 않았다" 
 * 본 내용은 이상각(2010). <1910년, 그들이 왔다>에서 발췌

물론 '임나일본부설'이 나오게 된 '일본서기(日本書紀)'라는 사서 자체가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거의 허구에 가까운 저작이라는 점에서 사실 여부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일본 민족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효율적인 선동책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아직까지도' 일본 극우세력의 심연에 남아 격렬히 불타오르고 있다. 히데요시를 위시한 이 역사 프로젝트는 그들의 주장에 작지만 의미 있는 파문을 던져줄 수 있다.

서포터즈들의 면면은?

또 하나의 불편한 점은 이 사업의 추진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시민모금의 존재다. '태합(=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꿈'이라 불리는 이 시민모금은 히데요시 프로젝트의 주요 재원이라 할 수 있으며 기부자 및 서포터즈의 명단을 해당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단에서 어렵지 않게 일본 보수·우익인사의 참여를 확인할 수 있다(도요토미 히데요시 성벽 공개 프로젝트 시민모금 홈페이지).
 
 히데요시 성벽 공개 프로젝트 시민모금 홈페이지
 히데요시 성벽 공개 프로젝트 시민모금 홈페이지
ⓒ 최우현

관련사진보기

대표적으로 쿠로다 아키히로, 이케다 히로유키 간사이경제동우회 대표간사와 마츠모토 마사요시 스미토모 전기공업 대표이사, 코시노 히로코 패션 디자이너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유명인 서포터즈'로서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속해있는 단체들의 숨겨진 이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쿠로다 아키히로, 이케다 히로유키가 대표간사로 있는 '간사이경제동우회(關西經濟同友會)'는 서일본 굴지의 경제단체이자 우익적 정치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는 단체로 평가받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문제, 평화헌법 개정 등에 있어 현 아베 정권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더해 매년 자체적인 안보위원회를 구성하여 우리나라를 방문, 양국 간 주요 쟁점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츠모토 마사요시가 속해 있는 '스미토모 그룹'은 미쓰이 그룹, 미쓰비시 그룹과 함께 일본의 3대 재벌 그룹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미토모 그룹'은 대표적인 '일제 전범기업'이다. 2012년 이명수 국회의원이 발표한 299개 전범기업 명단(2012.8.29.)과 2014년 「대일항쟁기강제동원조사위원회」(약칭)가 발표한 강제동원기업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패션 디자이너인 '코시노 히로코'는 앞의 인사들과는 달리 특이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코시노 히로코는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일본 체조선수들의 유니폼에 전범기(=욱일승천기(rising sun flag))를 연상시키는 문양을 디자인한 인물이다.

당시 일본 체조선수들은 이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을 완수했음에도 불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의 박종우 선수가 축구경기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했다는 이유로 동메달 시상식에도 참여하지 못한 사례가 있어 '일본에만 우호적인' IOC의 차별이 아니냐 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모금회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오사카가 혐한 논란이 여러번 불거진 도시이며, 자민당보다 훨씬 더 극렬한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장악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이 모금회의 성격과 프로젝트의 이면에 숨어있는 저의를 따져보게 된다.

G20 정상회의에서 '히데요시 프로젝트'도 조명받을까?

일본 산케이 신문은 '레이와에 소생하는 히데요시의 성벽'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히데요시 프로젝트를 이야기 한 바 있다. 소생(蘇る)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일왕 즉위와 이 사업을 연결시킨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소 비약해서 해석하자면, 새 시대에 히데요시의 영광이 부활한 것처럼 제국 일본의 영광 또한 부활하리라는 우익들의 열망을 드러냈다고 읽을 수도 있다.

정말로 우려되는 점은 이를 통해 히데요시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오해가 자라나는 것이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내달 말(6.28~29) 열리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이 '히데요시 프로젝트'가 세계 각국에 직·간접적으로 소개되고 또 조명받는 것이다.

물론, 짧은 회의 기간에 각 국 정상들이 오사카성을 직접 방문하지야 않겠지만 통상적으로 국제회의와 병행되는 '프레스 투어'(기자, 언론인 대상)나 영부인 등 귀빈을 대상으로 한 관광명소 투어는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사카성 투어가 이루어질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우리나라 역시 지난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당시 프레스 투어를 비롯한 다양한 홍보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오사카성 전경(출처: 오사카성 공원 홈페이지)
 오사카성 전경(출처: 오사카성 공원 홈페이지)
ⓒ 오사카성 공원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만약 외신기자들은 '히데요시 프로젝트'를 일본 당국에 의해 소개받는다면 어떤 감상을 가지게 될까? 일본 측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소개할리는 만무하다. 그들은 아마도 히데요시를 세계로 뻗어나가려 했던 역사적 인물이자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불굴의 상징인 인물로 철저히 오인(誤認)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그가 쌓아 놓은 성벽 앞에서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역사 칼럼니스트, 작가 한국 근현대사 및 일본 역사/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역사 팟캐스트 채널 <역사와 사람 이야기>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