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나 주변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기록일 거라 지레 짐작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아마도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쎄다. 숨이 턱 막힐 것 같다. 저 공간을 어떻게 꾸준히 촬영했을까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싶다. 믿기지 않지만 그곳엔 분명 '사람'들이 존재했다.
 
 <언더그라운드>중 한 장면.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

<언더그라운드>중 한 장면.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 ⓒ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언더그라운드>는 허욱 감독이 수년간 쌓아온 트래블로그로(여행기록물)부터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기획의도를 잡고서 작심하고 촬영하고 편집한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는 하나같이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를 비춘다. 터널, 벙커, 탄광, 땅굴... 그곳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제주 4.3,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야만과 상흔을 품고있는 지하공간들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아픔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북아시아인들의 기억에 새겨있는 폭력과 광기의 살벌한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집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젊은이들, 제국주의라는 미명 아래 탄광에서 산화해버린 조선인과 일본인, 그리고 '국가'라는 이름 아래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야했던 이름모를 민초들의 삶이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한때 폭탄 소리와 기관총 소리,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신음소리로 가득했을 그 공간들은 지금 너무나 조용하고 고요하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과 양치류 식물들, 박쥐들만 존재하지만 그곳에 새겨진 역사의 상흔은 서늘한 공기에 섞여 떠돌고 있다.
 
'언더그라운드'에 매장된 삶
 

이곳에는 지하 속 공간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과 같은 제국주의 시대의 거대한 공장들도 함께 나온다. 그것은 지상의 건물이지만, 그것을 세우기 해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캄캄한 지하 속에서 자신의 삶을 묻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표상이기도 하다. 가미카제 특공대 역시 물리적 공간이 언더그라운드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이야말로 제국주의라는 광기에 짓눌려 매장되어버린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내레이션 없이 자막과 현장음으로만 이뤄져 있다. 현장음은 현장에서 그곳을 소개하는 안내멘트나 가이드의 설명 등이다. 현대인들이 지금 그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공간과 관련한 문헌이나 증언록, 기록들을 화면에 적절히 배치해놓아, 당시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참담한 비극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올해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역사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빛의 역사만으로 역사를 제대로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싶으면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컴컴하고 서늘한 '언더그라운드'에 가볼 일이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언더그라운드>에 소개된 장소들

<언더그라운드>에 소개된 '언더그라운드'들의 목록을 적어보았다. 상영 중간부터 적었기 때문에 누락된 곳이 많다. 놀랍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공간들이 더 많았다.

칸몬터널, 신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 스페이스월드(구 야하타제철소), 미이케 탄광 미하노라하 갱, 미이케 탄광 만다 갱, 군함도, 미쯔비스 나가사키 조선소, 죠잔 지하벙커, 마이주루야마 지하벙커, 제주도 수월봉 일제 갱도 진지, 송악산 해안동굴 진지, 일출봉 해안동굴 진지, 셋알오름 일제동굴 진지, 큰 넓궤, 섯알오름,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 치란 가미카제 평화박물관, 후텐마 미해병 공군기지, 구 해군사령부호, 히메유리 기념관, 치비치리가마, 마부니 언덕, 비무장지대 등등.
 
전주국제영화제 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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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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