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싱어송라이터 음유시인 & 밴드가 고 이한빛 군이 살아생전 가장 좋아한 브로콜리 너 마저의 <졸업>을 연주하고 있다.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 공연 장면 싱어송라이터 음유시인 & 밴드가 고 이한빛 군이 살아생전 가장 좋아한 브로콜리 너 마저의 <졸업>을 연주하고 있다.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직장과 가정의 바쁜 일상을 그럭저럭 감당하며 볼 수 있는 드라마 수는 1년에 한 두 편 정도다. 그러다보니 대개 종방 후에도 길이 회자되는 엄선된 드라마를 보게 된다.

몇 년 전 많은 직장인들에게 진한 감동과 애착을 준 드라마, <미생>을 통해 장그래를 위시한 주요 인물들의 애틋한 인간승리 뒤에 숨은 '노오력' 지상주의를 비판한 일이 있다.

마치 학벌중심 사회의 고발 같이 시작했지만 결국 드라마 속 청년은 남 보다 더 스스로의 노력을 갈아 넣는 방법으로 문제를 극복해 나갔다.

제작진도 '이렇게나 여러 사람의 고생을 갈아 넣었으니 놀라운 호응은 합당하다'는 듯 스태프들의 과로로 인한 에피소드들을 흐뭇한 듯 자랑했다.

그때 처음으로 드라마 제작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드라마 <혼술남녀>는 노량진에서 삶의 희망을 찾는 공시족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작품이다. 때론 무겁게, 때론 가볍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로 이 시대의 청년문화를 신선하게 전달해주는 드라마였다.

유독 젊은이들에게 더 가혹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애환이 따뜻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품의 조연출로 참여했던 고 이한빛PD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스태프들의 살인적 노동량을 고발하며 세상을 등졌다.

'청년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들이 오히려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녹록치 않은 청년들의 불안과 헌신을 갈아 넣음으로써 비용절감과 상품가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들었다니! 이게 바로 그 가증스런 공감 팔이가 아니고 뭘까?'

고 이한빛군 부모님 김혜영, 이용관 선생님과 동생, 이한솔군은 한빛군의 희생을 계기로 미디어 노동현장의 오랜 병폐가 크게 조명 받을 수 있도록 지난한 싸움을 거쳐 적게나마 기업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피해보상금 전액을 쏟아 부어 한빛노동인권센터를 창립하여 운영함으로써 이 땅의 젊은 미디어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 서울 홍대 에반스라운지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이 열렸다. 방송계 여러 분야의 노조 및 시민단체,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인 한빛 군의 아버지, 이용관 선생님과 현직 중학교 교장인 어머니, 김혜영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함께해온 동료 교사들, 동생 한솔 군의 친구들, 그리고 후원자들로 확대된 깊고 뜨거운 가족애가 충만한 축제의 밤이었다.

직장 일을 마치고 와 직접 팔 걷어붙인 김혜영 선생님이 좁은 주방에서 분주하게 만들어 내온 음식으로 수많은 한빛들과 함께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며 더 건강한 청년민국을 꿈꿀 수 있었다. 
 
고 이한빛군의 어머니 김혜영씨가 떡볶이, 연어 샐러드 등의 메뉴를 손수 만들어 행사장을 가득 매운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 제공 음식 고 이한빛군의 어머니 김혜영씨가 떡볶이, 연어 샐러드 등의 메뉴를 손수 만들어 행사장을 가득 매운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한빛 군의 친구이자 센터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음유시인, 노이사가 '한빛이가 가장 좋아한 노래'라며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을 열창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반복되는 '이 미친 세상'이라는 구절이 가슴 속에 한없는 파장을 일으키며 쉬이 지워지질 않는다.

대중미디어 예술은 그 시대의 얼굴이요,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애환을 깊이 공감하면서', '그래도 살아보자'고 어깨동무하며 말 걸어오는 드라마라면 더욱이 묻고 싶다.

'제작과정에서도 진정한 인간애와 동지애가 숨 쉬고 있는지?'

뒤늦었지만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애청하고 있다. 프로패셔널한 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가공하지 않은 목소리를 담아 주는 아마추어 어르신 배우들의 활약이 매우 인상적이다.

문득 화려한 주역들의 뒤에서 드라마의 가치를 속속들이 채우고, 완성도를 한껏 높여가는 이름 없는 조역들과 스태프들의 안녕이 몹시 궁금해진다.

부디 이 드라마를 통해 '눈이 부시게' 조명된 삶의 아름다운 이면에 상대적 약자의 일방적 헌신과 '노오력'이 가려져있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제 드라마도 재미와 감동으로 매겨지는 결과물 평가를 넘어 제작 과정을 통해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인간 존중의 가치를 몸소 보여줄 차례다. 그게 품격 있는 우리 시대에 걸 맞는 얼굴이고, 진정성 있는 표정이다.
 
지난 5월 4일(토) 홍대 에반스라운지 클럽에서 열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후원의 밤이 방송계 노조 및 시민단체들의 많은 관심과 열띤 참여로 이루어졌다.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 포스터 지난 5월 4일(토) 홍대 에반스라운지 클럽에서 열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후원의 밤이 방송계 노조 및 시민단체들의 많은 관심과 열띤 참여로 이루어졌다.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본인 페이스북 포스팅 글의 일부를 수정한 글임.


태그:#미생, #혼술남녀, #눈이 부시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