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전통의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LG에게 또 한 번 우위를 확인했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는 4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장단 9안타를 때리며 3-2로 짜릿한 한 점 차 승리를 따냈다. 작년까지 열렸던 19번의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12번의 위닝시리즈를 만들었던 두산은 올해도 첫 두 경기를 모두 잡으면서 통산 20번째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위닝 시리즈를 확보했다.

두산은 1번 타자 허경민이 6회 결승 2루타를 때렸고 김재호가 3안타, 박건우가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마운드에서는 선발 이현호가 5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이어 등판한 4명의 불펜 투수가 4.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오른 프로 18년 차의 베테랑 좌완 권혁은 두산 이적 후 2번째 경기 만에 시즌 첫 승리를 챙겼다.

삼성에서 13년 동안 5번의 우승 반지 차지한 좌완 강속구 투수
 
포철공고 출신의 권혁은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 삼성은 이미 1학년 때부터 대구 경북지역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던 대구고의 윤길현(롯데 자이언츠)과 권혁을 두고 고민하다가 192cm의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권혁을 선택했다. 2003년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린 권혁은 2004년 3승3패3홀드 평균자책점 4.78을 기록하며 1군에서 자리 잡았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며 2005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권혁은 팔꿈치 부상 후유증을 털어낸 2007년 7승1패19홀드2.79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삼성의 핵심 불펜 투수로 떠올랐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쌍권총'으로 불리던 권혁과 권오준, '국민 노예' 정현욱(삼성 불펜 코치), 안지만, '돌부처'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으로 이어지는 계투진은 선동열 감독이 구축한 삼성의 가장 확실한 승리공식이었다. 

권혁은 2008년 6승15홀드1.32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고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병역 혜택을 받았다. 2009년에는 5승7패6세이브21홀드를 기록하며 생애 첫 홀드왕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리그 전체 평균타율이 .275에 달했던 타고투저 시즌이었던 2009년, 리그에서 20개 이상의 홀드를 기록한 투수는 권혁 한 명밖에 없었다. 그만큼 권혁은 묵직한 구위를 앞세워 상대 타자를 힘으로 압도하는 위력적인 좌완 불펜투수였다.

권혁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하며 삼성, 그리고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불펜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고전하던 2013년 1패3홀드3.96으로 부진했고 그 사이 권혁의 자리는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한 전천후 좌완 차우찬(LG)이 메웠다. 권혁은 삼성이 통합 4연패를 차지한 2014년에도 3승2패1홀드2.86의 준수한 투구내용을 선보이고도 필승 조로 활약하지 못했다.

2014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은 권혁은 원소속팀 삼성과의 우선협상이 결렬됐다. 프로 입단 후 13년 동안 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던 정든 연고 구단이었지만 3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권혁은 더 많은 등판 기회를 원했다. 결국 권혁은 2014년 11월 불펜 보강을 노리던 한화와 4년 32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권혁은 한화에서 한 번 점 찍은 투수는 팔이 갈릴(?) 때까지 굴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이적 후 두 경기 만에 첫 승, 두산 불펜 더 강해진다
 
권혁은 한화 이적 첫 시즌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78경기에 등판해 112이닝 동안 9승13패17세이브6홀드4.98을 기록했다.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오른 권혁은 한화의 '불꽃'과 투혼을 상징하는 선수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에게 한 시즌에 112이닝을 던지게 하는 구단은 없다. 권혁은 2015년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혹사'를 당한 셈이다.
 
 한화에서 방출된 뒤 두산과 계약한 권혁

한화에서 방출된 뒤 두산과 계약한 권혁 ⓒ 두산 베어스

 
권혁은 셋업맨으로 돌아간 2016 시즌에도 6승2패3세이브11홀드3.87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다. 한화 이적 후 첫 2년 동안 207.1이닝을 던지며 20세이브19홀드를 기록했던 권혁은 이후 2년 동안 42.1이닝을 던지며 세이브 없이 홀드 14개만을 추가했다. 결국 권혁은 올해 한화의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며 방출을 요구했고 한화 구단은 선수의 미래를 위해 권혁을 조건 없이 방출했다.

한화를 떠난 권혁은 지난 2월3일 두산과 연봉 2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신고 선수 신분이라 1군 마운드에 오르려면 5월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불펜 강화를 노린 두산은 기꺼이 권혁의 공백을 기다리기로 했다. 퓨처스리그에 등판하며 구위를 점검한 권혁은 8경기에서 1승2홀드 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한 후 선수 등록 가능 시기가 된 지난 1일 곧바로 1군에 등록됐다.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시리즈에서 등판 기회가 없었던 권혁은 LG와의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올라 드디어 두산 유니폼을 입고 첫 승을 따냈다. 3일 경기에서 0.2이닝을 던지며 투구 감각을 점검한 권혁은 4일에도 6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라 1.1이닝 동안 사사구 2개 만을 내주며 LG 타선을 무피안타로 묶었다. 전날 연습 도중 담 증세로 컨디션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권혁은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올라 불펜투수로서 책임을 다했다.
 
현재 두산의 불펜에는 마무리 함덕주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좌완 불펜 투수가 없다. 베테랑 이현승은 종아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이현호는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장원준 역시 퓨처스리그로 내려가 선발투수로 출전하며 감을 찾고 있다. 이렇듯 좌완이 부족한 두산 불펜의 사정을 고려할 때 권혁의 가세는 천군만마와 다름없다. 대구와 대전에서 뜨겁게 불타올랐던 권혁이 서울에서 또 한 번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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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두산 베어스 권혁 불꽃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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