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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산 22번지 도장골. 진실화해위원회가 세운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뽑혀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산 22번지 도장골. 진실화해위원회가 세운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뽑혀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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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이미 나무가 뽑히고 공사도로가 나 있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훼손된 현장을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이미 나무가 뽑히고 공사도로가 나 있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훼손된 현장을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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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당시 청주형무소에 수감 중 군인과 경찰에 의해 살해돼 암매장된 집단 희생지가 사방댐 공사로 훼손됐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산 22번지 도장골. 이곳은 1950년 7월 8일 또는 9일 무렵, 당시 청주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100여 명이 집단 희생된 곳이다.

유가족들은 정부와 충북도에 유해발굴을 요구해 왔다. 충북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은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아치실 민간인 희생지에서 유해 40여 구를 발굴하고 이곳 도장골과 영동 상촌면 고자리 등을 우선 발굴 대상지로 꼽았다.

정부산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도 지난 2008년 현장 안내판에 '유해매장 추정 지번'과 함께 '청주형무소 사건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하지만 지난 3일 오후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도장골을 방문한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와 만화가 박건웅씨는 깜짝 놀랐다.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판은 뽑혀 엿가락처럼 찌그러졌다. 대신 공사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인근 숲을 이루던 나무는 이미 동강 나 쌓여있다.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은 굴착기가 오가며 공사 도로를 내면서 폭격을 맞은 듯 허물어졌다. 유해매장지가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세운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판(왼쪽 아래)을 뽑아내고 사방댐 공사 안내판(오른쪽 중앙)을 세워 놓았다. 안내판에 있는 연락처로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세운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판(왼쪽 아래)을 뽑아내고 사방댐 공사 안내판(오른쪽 중앙)을 세워 놓았다. 안내판에 있는 연락처로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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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청인 충북 산림환경연구소와 청주산림조합은 지난 3월부터 이 달 말까지 3개월간 공사를 벌여 이곳에 사방댐을 만들 예정이다.
 시행청인 충북 산림환경연구소와 청주산림조합은 지난 3월부터 이 달 말까지 3개월간 공사를 벌여 이곳에 사방댐을 만들 예정이다.
ⓒ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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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씨는 "유가족들이 애타게 찾던 부모형제 묻혀있는 자리를 표시한 표지판은 흙더미에 찌그러져 있었다"라며 "항일운동을 했던 부친이 전쟁 때 이 곳에 끌려와 희생됐다는 한 유가족은 훼손된 현장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늘은 맑고 투명한데 땅은 찢겨져 울고 있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현장 '공사 안내판을 보면 '2019 사방댐'(흙이 하류로 흘러내려가지 못하도록 골짜기에 인공적으로 설치하는 작은 규모의 댐)이라는 공사명과 사방댐을 만들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이달 말까지 3개월간 공사를 벌인다고 돼 있다. 시행청은 충청북도 산림환경연구소이고 시공자는 SJ 청주산림조합이다.

"공사 중단하고 현장 보존-유해발굴 해야"

충북산림환경연구소 관계자는 "청주시가 산림 벌채 허가를 내줘 공사를 벌였는데 지난 달 20일 경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해 일단 공사를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공사 당시에는 유해매장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음 주에 유가족들과 만나 협의를 하기로 했지만 수해 피해가 예상돼 사방댐 공사를 안 할 수는 없다"라며 "청주시도 공사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유해매장지가 마구 훼손될 때까지 충북도와 충북산림환경연구소, 청주산림조합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서도 방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라며 "만일 유해까지 훼손됐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공사를 중단하고 유해훼손 여부를 조사해 현장 보존과 유해발굴 방안 마련에 나서라"라고 촉구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10년 청주형무소 수감자 최소 1200여 명이 1950년 6월30일부터 7월9일까지 충북지구  방첩부대(CIC)와 16연대 헌병대, 청주경찰에 의해 청원군 도장골과 분터골 등지로 끌려가 희생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좌익전력이 있거나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을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비상사태 시 민간인 보호조치 규정 정비, 인권교육 강화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단체에 권고했다.

태그:#충북도, #도장골, #청주형무소, #진실화해위원회, #충북산림환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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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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