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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세르비아 국경 철조망 옆에서 만난 폭력 경찰과 그의 동료들.
 헝가리-세르비아 국경 철조망 옆에서 만난 폭력 경찰과 그의 동료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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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길, 국경의 밤

헝가리-세르비아 국경.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로 뿌연 먼지를 내며 경찰차가 달려왔다. 차에서 내린 건장한 남성 경찰은 곧장 나에게로 다가와 헝가리어 욕을 내뱉으며 여권을 낚아챘다. 알아듣지 못해도 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범죄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하루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세르비아 북부 도시 노비사드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예전에는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가는 직행열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헝가리 국경 케레비아(Kelebia)에서 세르비아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하루에 한 대, 3840포린트(한화 15500원) 가격의 기차 티켓은 한 달 동안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오픈티켓이었다.

유럽연합 29개국 사이에는 사라진 국경선이 비유럽연합국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궁금해서, 케레비아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여행자가 드물어 저가 숙소가 없는 작은 마을이고 날씨도 춥지 않아서, 남미 카파도키아 이후 오랜만에 야영을 했다. 기찻길 옆 자작나무숲에는 낙엽이 푹신푹신 쌓여 있어 텐트 핀이 고정되지 않았지만 바람이 세지 않으니 문제 없었다.

마을에서 '국경의 밤'을 보내고, 이튿날 국경 울타리를 확인한 다음 세르비아행 기차를 환승할 예정이었다. 불빛도 없으니 일찌감치 텐트에 누워, 부다페스트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인 NGO 활동가 카샤 호프(Katha Hopp)씨와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기차로 세르비아에 간다고? 케레비아? 난 거기서 가까운 난민캠프에서 4개월 동안 일하고 독일로 돌아가는 길이야.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난민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말도 조금 배웠어. 난민들 중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버스를 타고 헝가리 국경을 넘으면서 종일 슬펐어.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국경을 넘을 수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여권만 잠시 보여주고 바로 통과할 수 있었거든.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여권은 너무나 불공평해.

매일 밤마다 국경에서는 난민을 막으려는 경찰들의 추격전이 벌어져. 그 과정에서 많은 난민들이 죽고 다쳐. 끔찍하고 슬픈 일이야. 2015년에 100만 명이 넘는 시리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난민은 유럽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됐어. 난민과 이슬람에 대한 반대가 커지고 있고, 각국 극우 정당들이 매주 모여서 회의를 열고 있어. 유럽 사회가 난민을 거부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게 걱정돼. 무한정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힘을 모아서 대책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헝가리-세르비아-코소보-북마케도니아-그리스-터키-아프리카로 간다니. 네가 가는 길은 난민들의 루트와 똑같아. 방향은 정반대지만."

 
유럽연합과 비유럽연합을 나누는 국경 철조망.
 유럽연합과 비유럽연합을 나누는 국경 철조망.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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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는 6580만 명의 난민이 있다. 시리아 난민이 630만 명,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260만 명, 남수단 난민이 240만 명으로 가장 많다. 중동의 난민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탈출해 서유럽으로 향하는 길. 남한에서 종종 뉴스로만 보던 그 길 위에, 여행자인 내가 서 있었다.

마음 먹기에 따라, 난민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 마음 먹기에 따라, 난민은 나의 이웃이고, 그들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다. 어떤 마음을 먹고 살 것인지, 나는 매일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다.

매일 밤 '사람 잡는' 추격전이 벌어진다지만 내가 텐트를 친 국경의 밤은 조용했다. 드문드문 차소리와 농가의 개 짓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홉 시 쯤 되었을까, 길섶에 차가 멈추더니 누군가 텐트로 다가왔다.

다행히 배고픈 짐승이나 강도가 아니라 영어를 하는 친절한 헝가리 경찰이었다. 여권을 확인하고 무전으로 보고한 뒤, 그는 나에게 막대사탕 하나를 건네고 떠났다. 6580만 난민의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 아이들과 청소년이라고 한다. 국경을 넘는 난민들을 검거한 뒤,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챙겨두는 사탕인가 보다.
 
국경 기찻길 옆 자작나무숲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머물렀다.
 국경 기찻길 옆 자작나무숲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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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폭력의 공포, 잊지 못할 폭력 경찰

케레비아 기차역에서 국경선까지는 2킬로미터 거리다. 차로 순찰을 돌던 여성 경찰 두 명이 다시 한 번 나를 조사했다. 여권과 기차표를 보여주며 국경을 잠시 보고 오후 기차를 탈 것이라고 설명하자 더이상 제재는 없었다.

길 따라 선 집들이 드물어지고, 눈치 빠른 사슴들이 뛰어다니는 들판 너머로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한 대낮, 열린 길 어디에도 출입 경고 표시는 없었기에 별 위험성을 못 느끼고 국경 앞 50미터 거리까지 다가갔다.

화물기차가 지날 때 철조망을 여닫는 경비원들 세 명이 보여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국경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앉아서 물을 마시고 쉬는 순간이었다. 무전을 받고 철조망 사잇길을 쏟살같이 달려온 폭력 경찰. 그는 내가 영어로 말을 하거나 스마트폰 헝가리어 번역기를 돌리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순간 순간 때리려는 몸짓으로 위협을 가하며 먼저 여권과 기차표,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빼앗았다.

덩그러니 기나긴 철조망만 서 있는 벌판, 경찰 다섯 명과 범법자가 된 나. 그들은 하나같이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고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완전한 무력감. 심장이 크게 뛰며 공포감이 엄습했다. 군대에서 열중 쉬어 자세로 덩치 큰 선임에게 맞을 때는 말이라도 통했었다.

내가 독일이나 프랑스 여권을 소지한 백인이었다면 그 폭력적인 경찰은 조금 온순했을까. 부다페스트 곳곳에 남한 기업의 광고판이 서 있고 헝가리에서도 케이팝이 유명하다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한은 여전히 동방의 힘없는 나라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아프리카나 아라비아의 여권을 제시했다면, 그는 아마 나에게 위협이 아니라 구타를 가했을 것이다.

난민이 아님을 확인한 그는 비닐장갑을 끼더니 내 모든 짐과 몸 구석구석을 뒤졌다. 칫솔이 흙바닥에 떨어지고, 일기장에 끼워둔 메모지들이 바람에 날아갔다. 잔인한 미소를 띤 그는 내 소지품을 엉망으로 만드는 걸 즐겼다. 수색을 마쳤지만 나는 풀려나지 않았다. 그는 경찰차에 타라고 '명령' 했다.

커다란 승합차에는 빈 좌석이 열 개가 넘었으나, 그가 가리키는 끝 좌석에 않으려는 순간 거칠게 엉덩이가 밀쳐졌다. 좌석이 아니라 차 바닥에 웅크려 앉으라는 것이다. 완전한 짐승 취급. 수치심과 증오가 몰려왔다. 흑인들을 구타하는 미국 경찰의 영상이 떠올랐다.

난민과 범법자, 또는 의심이 가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인가. 합법적 폭력의 권리를 가진 경찰의 표적이 된 사람은 순식간에 사람의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긴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을,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오히려 짐승이고 괴물이 아닌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부당한 폭력을 당하고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폭력의 경험을 이렇게 글로나마 남기는 것 뿐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불법이 아니다

짐승처럼 구겨진 채 차를 타고 5분. 기차역 옆 경찰서에 도착했다. 폭력 경찰의 상급자는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고 온순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확인한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나는 금방 경찰서를 나왔고 곧 세르비아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겁 없이 국경에 다가간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고 이미 두 번이나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허락 받았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서러워서 경찰서에 다시 들어가 항의했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진압할 거면 마을 초입에서부터 여행자 통행을 금지하든지 국경에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문이라도 설치해주세요. 그리고 난민이나 범법자라 할지라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케레비아로 오는 난민들은 보통 밤에 오가는 화물열차 짐칸에 숨거나 바닥에 매달려서 국경을 넘는다고 한다. 피아 식별도 되지 않는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이 그들에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환상일까. 부디 세상에, 내가 만난 폭력적인 경찰보다 범법자도 인간으로 존중하는 경찰이 훨씬 많기를 바란다.

경찰과 군인은 '합법적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결국, 경찰과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찰과 군인들은 사람들의 천부적인 인권을 더욱 더 중시하고, 사회로부터 위임 받은 폭력의 권리를 조심히 집행해야하지 않을까.

비유럽연합국 북마케도니아에서 유럽연합국 그리스로 가는 게브겔리야(Gevgelija) 국경. 대도시를 잇는 직행 버스를 타지 않고, 다시 한 번 국경 지역에 머무르며 걸어서 경계를 넘었다. 대낮임에도 북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양쪽에서 한 번씩 경찰 검문을 당했다. 그 경찰들 역시 난민을 검거하는데 혈안이 된 듯 거칠고 위압적이었다.

서럽게도,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유럽연합과 비유럽연합국의 경계에는 꽃이 아닌 폭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스 국경 에브조노이 Evzonoi의 버려진 건물 지붕에 누군가 써 둔 한 문장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No one is illegal(누구도 불법이 아닙니다)."
 
그리스 국경 에브조노이의 버려진 건물에 쓰여진 문장 No one is illegal
 그리스 국경 에브조노이의 버려진 건물에 쓰여진 문장 No one is illegal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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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나를 검문하고 지나가는 그리스 국경 경찰들.
 길을 걷는 나를 검문하고 지나가는 그리스 국경 경찰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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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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