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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운상가는 도심 제조업의 심장 같은 곳이다. 수백여 제조업 장인들이 모여, 인공위성 부품까지도 뚝딱 만들어낸다. 을지면옥과 같은 오래된 식당도 여기 있다. 하지만 몇년새 이곳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곧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이미 일부 구역은 철거됐고 나머지도 조만간 철거를 앞두고 있다. 세운 3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속살을 들여다본다.[편집자말]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재개발로 모두 철거가 된 세운 3-1,4,5구역.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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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근 청계천 관수교에서 동대문 방면을 바라보면, 커다란 펜스가 둘러져 있다. 언뜻 보더라도 상당히 넓은 땅을 에워싼 이곳은 세운 3구역의 일부(3-1, 3-4, 3-5구역). 면적으로 따지면 1만1600여 평방미터(㎡)에 달한다. 지금 이 곳은 황무지나 다름없다. 이곳에 있던 제조업체들은 모두 철거됐고, 998세대 아파트가 포함된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지역에 적용된 건축 조건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지난 2018년 3월 16일자 중구청 구보에 따르면, 세운 3-1구역은 용적률 919%, 3-4와 3-5구역은 901%의 용적률을 허가 받았다. 용적률이 높으면 건물 연면적이 넓어져 사업 수익도 높아진다. 용적률이 900%라면, 100평 땅에 건물 면적은 900평까지 지을 수 있다.

일반 재건축 아파트들의 용적률이 300% 이내 수준(일반 주거지역 기준)에서 결정되는 점을 보면, 대략 3배 이상 높은 용적률을 받은 셈이다. 개발 특혜 논란이 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용적률 573%보다도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서울 도심권에 이 용적률을 적용해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 사업 수익은 엄청날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도심지역에 용적률 900%를 주면서 그곳에 주거 목적까지 주어지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면서 "3-1, 3-4, 3-5구역은 청계천을 바라보고 있고 사업성이 제일 좋은 부지니까 그렇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MB가 물꼬 튼 세운 재개발... 노골적인 개발이익 명시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세운공구상가 3-1지역 철거 후 높이 세워 올린 펜스 사이로 흙을 파내는 굴삭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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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용적률 900%의 아파트단지는 어떻게 허가를 받게 됐을까? 뿌리는 10여 년 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운 지역은 고밀 개발이 가능한 상업지역이지만, 종합적인 재개발 계획이 부재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장인들도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터전을 일굴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청계천 복원과 주변 개발을 공약한 이 전 시장의 계획에 따라, 종로구 세운상가부터 중구 진양상가 일대는 세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세운 3구역도 이때 재정비촉진지구로 함께 묶였다.

재정비 촉진지구는 말 그대로 재개발을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재정비 촉진 계획의 기본 방향도 '계획적인 개발로 고부가가치 창출'이라고 명시돼 있다. 부동산 개발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문구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은 전면 철거 후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지금의 세운 재개발 계획이 만들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지난 2010년, 세운지구는 상업 업무 이외에 주거와 숙박 등 복합적인 토지 이용이 가능한 '도심복합용도 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주거를 주용도로 하는 개발도 가능해졌다.

지난 2018년 3월, 중구청은 세운 3-1, 3-4, 3-5 구역의 건물 용도를 상업·업무 시설에서 주거 용도로 변경하는 사업시행인가 변경계획을 승인했다. 다양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판이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구청 입장에서도 이를 불허할 명분은 없었다.

중구청 관계자는 "사업시행자가 사업성을 이유로 용도 변경을 신청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근거도 없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못하게 막는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난개발을 유도하는 계획이 전혀 수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시민단체 등의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 2014년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다.

먼저 기본 방향을 다시 정했다. '고부가가치 창출'을 삭제하고, '도심산업생태계 유지와 과도한 철거 재개발 지양'으로 기본 방향을 바꿨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면철거'보다는 '도시재생'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오세훈 시절 주거 용도 가능하게... 박원순 '도시재생'으로 변경됐지만
 
 서울 세운정밀공구상가 단지(세운3구역) 현황
 서울 세운정밀공구상가 단지(세운3구역) 현황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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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변화는 원래 6개 구역이던 세운 일대를 171개로 세분화한 것이다. 당시 6개 구역을 전면 철거해 개발한다는 기존 계획을 바꿔, 171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세운 3구역도 이때 10개 구역으로 나뉘어졌다. 그래서 '3-1, 3-2…3-10' 등으로 세분화된 구역 명칭이 정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운 3구역의 경우, 구역을 연결하는 옛길을 보전하기 위해 10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그것 뿐이었다. 세운 3구역에 있는 제조업체와 오래된 상가를 철거한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명시된 '과도한 철거 재개발 지양'이라는 기본 방향은 사실상 말잔치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관계자는 "당시 계획을 보면, 누가 봐도 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다 부순다고 하니까 황당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세운 구역은 철거 구역이고, 단계적으로 개발한다는 것 자체도 큰 변화"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비촉진계획 기본 방향과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옛길을 살렸다"는 말만 번복했다.

결국 세운 3-1, 3-4, 3-5구역은 전면 철거됐고, 제조업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을지면옥 등이 있는 세운 3-2, 3-6, 3-7 구역도 구청의 사업시행인가가 승인되면서, 전면 철거될 운명에 놓여 있다.  

"철거하지 않겠다는 조항 있었는데..."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철거를 반대하던 활동가들이 만든 홍보물이 버려져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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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운 지역 상가 보전이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면서 서울시는 해당 구역의 사업 진행을 잠정 중단하고, 연말까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세운재정비자문단은 "현 계획은 산업 및 생활유산 (보전) 계획이 다소 미흡하고, 세운에 걸맞는 재생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자문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세운 계획을 다시 짠다고 하더라도 현재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구역은 전면철거의 운명을 피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가 이곳에 대한 사업시행인가를 취소할 직접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곳 세입자들은 불안하다.
 

3-2구역에 있는 황민석 중앙기업 사장은 "3-1, 3-4, 3-5구역이 무너지면서 공구 판매상들이 줄줄이 나갔고, 폐업한 사람도 많다"며 "언제 이곳처럼 나갈지 몰라 불안하고, 최근에는 병원에 갔는데 우울증이 왔다고 하더라"라고 호소했다.

백인길 대진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세운 구역 개발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기본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철거재개발 지양이라는 기본방향은 비판을 의식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백 교수는 이어 "정말 건물이 노후화돼 철거를 한다면, 그곳에 있던 제조업체간 분업 체계 등이 재건축하는 건물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방향과 맞는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진행되는 개발은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인데, 전혀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아직 영업 중인 세운 3구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3미터가 넘는 펜스를 지나가야 한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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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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