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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陶瓷)에 대한 책을 쓸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판되지 못한 여러 원고들과 함께, 그 글들은 어느 디스크에 그저 바이트 정보로만 남아있죠.) 쓰려면 먼저 읽어야 하죠. 자료를 모아야 하니까요. 그 과정 중에 질그릇(陶, 옹기)은 오지그릇(瓷, 사기)과 다르다는 것, 초기 자기는 현재의 아이폰처럼 핫한 아이템이요 교역품이었다는 것, 문화권과 문화권으로 도자기가 끊임없이 이동하고 발전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도자기는 한국의 큰 자랑 중 하나라는 것도요.

자유분방 분청사기 닮은 한국의 민화

그 많은 도자 관련 정보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분청사기(粉靑沙器)였습니다. 청자에 백토 분을 바르고 다시 굽는데, 그 바탕이 청자색을 띠어 그렇게 이름 붙었답니다. 분칠을 하면 도자기는 일종의 도화지처럼 변합니다. 거기에 붓으로도 그리고(귀얄기법), 도장으로 모양을 찍거나(인화기법), 때로 홈을 파내고 다른 색을 넣거나(상감기법), 배경을 긁어내거나(박지기법) 해서 다양한 모양을 냅니다. 형식만 아니라 내용도 분방하고, 발랄합니다. 
 
실크스크린 인쇄 시범을 진행하고 있는 최승현 미니프린트 대표 . 여러 장을 반복해 뽑을 수 있는 판화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기법으로 널리 활용됐다.
▲ 실크스크린 인쇄 시범을 진행하고 있는 최승현 미니프린트 대표 . 여러 장을 반복해 뽑을 수 있는 판화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기법으로 널리 활용됐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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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가 흥한 때는 고려가 망한 뒤, 조선후기 백자가 나오기까지 약 200여 년간이랍니다. 도자 강국 고려가 망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도자공들이 관의 제약 없이 문양을 넣어 만들면서 그런 자유로운 그림들이 나왔다는 설명입니다. 해안가의 왜구들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나라는 혼돈스럽고, 중심은 없고… 그런 중에 예술은 변화를 가진 것입니다. 이 시기 도자들에 분청사기란 이름을 준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 그렇습니다. 민화란 이름을 준 사람입니다. 민화 역시나 분청사기 같은 변주와 개성이 있습니다. 민화의 그 독특한 생활미, 친근함, 역동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는 4월 5일, 미니프린트를 찾았습니다. 판화공방이죠. 성동교 남단사거리에서 서울숲 습지생태원 쪽으로 가는 길 건물 지하에 있습니다. 이사 전엔 뚝도시장 사거리의 낡은 건물 2층에 있었는데, 수해를 만나 큰 어려움을 겪었었죠. 성동구의 문화예술창작소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 이웃에게 열린 예술 공간이고 ▲ 마을판화 프로그램 운영실이며 ▲ 미술치료, 아트테라피(영어로 진행)가 진행되는 사만다 블루멘펠드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럿이 함께 실크스크린 워크숍을 진행하기엔 적절한 공간이었습니다.

상업적 수요 적고, 손맛 즐기는 정서가 판화 없는 이유인듯

실크스크린은 '비단천으로 만든 엷은 막'입니다. 송송 뚫린 올과 올 사이로 페인트가 통과하면 '인쇄'가 됩니다. 통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차이로 인쇄를 해내는 거죠. 현대에서는 명주천 대신에 폴리에스테르(테프론) 천을 사용합니다. 직접 그린 그림을 스캔하거나 인쇄 혹은 프로그램에서 바로 출력한 뒤에, 감광기에 넣으면 손쉽게 원판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이곳 미니프린트에서도 그 전 과정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소규모 인쇄제작이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원판으로 하기는 했지만, 참여자들 모두 제작해 보았습니다. 그리곤 앉아 대화했습니다. 주제 중 하나는 "왜 한국 민화에서는 판화가 사용되지 않았는가?"였습니다.

연화(年畵)라 불리는 중국의 민화는 거의가 판화입니다. 새해가 되면 선물을 하고, 집안 전체를 꾸미면서 발달했다는 그림입니다. 일본의 민화 우키요에는 초기에 삽화형식이었다가, 점차 목판화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1765년 다색목판화 니시키에 기법이 개발된 후 점차 발전해, 고흐와 고갱 등 서양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줄만큼 주목할 만한 양식이 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후지산이 보이는 <가나가와 앞바다의 거대 파도>도 우키요에죠. 한국엔 편지지인 전서지를 만들며 일부 판화가 쓰였고, 그림 부분부분에 잠깐 도장 같은 형식이 보일 뿐이죠. 한국민화엔 왜 판화가 이렇게 빈약할까?

이유로 든 것 중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 같은 것이었습니다. 민화를 즐기는 수요층의 집에는 약 16장 정도면 이미 충분한다는 거죠. 중국은 그보다는 훨씬 많았고, 일본 역시 가부키 등 연극이 발달하면서 포스터도 붙이고, 연극 무대 장식 등에도 더 많이 쓰일 수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인도의 경우엔 자동세차장이 필요하지 않다는데, 왜냐면 인력을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거죠. 한국인들이 또 얼마나 손재주가 많고, 다재다능한 사람들입니까. 한국의 경우도 민간의 화가들이 충분히 있었다는 거죠. 화가들은 전국을 돌며 그림을 그렸는데, 원판을 들고 다니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경작되지 않은 오지같은 매력, 민화 

"그리지 뭐! 그걸 찍고 있어, 귀찮게?"

이게 한국의 정서란 겁니다.
 
한국 민화엔 왜 판화가 없을까?  성수동의 판화공방 미니프린트에서 토론을 하고있는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 구성원들.
▲ 한국 민화엔 왜 판화가 없을까?  성수동의 판화공방 미니프린트에서 토론을 하고있는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 구성원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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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발견된 민화에는 송곳으로 찌른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답니다. 원본을 놓고, 화선지를 여러 장 아래 댄 다음에 위치를 잡고 콕콕 찌르면 필사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아빠가 그림을 팔러 가면, 엄마도 아이도 원본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가족경영'이죠. 그렇게 베껴 그리면서 그림은 조금씩 달라지죠. 변형이 생길 구석도 생깁니다.

그림을 배우지 아니한 사람이 그리는 그림엔 원초적인 힘이 있습니다. 우린 그걸, 그림수업을 받지 않은 어린아이들 그림에서 느낄 수 있죠. 그 아름다움을 더 키워주겠다고 학원에 보내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다보면 사라지고야 마는, 그 경작되지 않은 오지(奧地)의 힘. 어쩌면 그런 것이 민화의 한 비밀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가진,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인 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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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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