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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2019년 1월 2일 새해 축하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2019년 1월 2일 새해 축하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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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8일 새벽 사이판,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역에서 전몰(戰歿)한 일본인 희생자들에 대한 아키히토 일왕(明仁日王)의 공식 위령 일정이 시작됐다. 궁내청(宮內廳) 수행원들과 취재를 위해 일본에서 온 기자단들이 숙소를 나선 일왕 일행의 뒤를 바싹 따랐다. 이날 위령 일정은 중부태평양전몰자비 헌화, 유족 대표들과의 만남을 거쳐 '만세 절벽(Banzai Cliff)' 방문으로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난 것은 서태평양의 강한 햇볕이 내리쬐던 오전 10시경. 아키히토 일왕을 태운 차는 만세 절벽에서 숙소인 사이판 해변 호텔로 향하는 듯했다. 하지만 잠시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동선대로라면 숙소로 돌아와 모습을 비춰야 할 아키히토 일왕이 예정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동행한 일본 기자들조차 아키히토 일왕의 행선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호텔로 향하던 아키히토 일왕이 들른 곳은 예정에도 없던 '한국인위령평화탑(Korean Peace Memorial)'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용된 수천 명의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1년 조성한 기억의 장소다.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위령탑 앞에 내려 담담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궁내청에서만 알고 있던 비공식 일정으로, 패전 후 최초로 이루어진 일왕의 위령탑 참배였다.

머무른 시간은 불과 4분. 충분한 반성과 참회로 보기는 힘든 시간이지만 사죄에 대한 일왕의 작은 의지 정도는 알 수 있던 사례다. 당시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양순임 회장은 "일왕이 어떤 자세로 평화탑을 방문했는지는 모르지만 진심으로 속죄했다면 한국인 희생자들의 문제도 해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아키히토 일왕이 보여준 '양심 행보'의 한 조각이다. 결코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31년에 달하는 재위 기간 동안 일본의 전쟁범죄와 과거사에 대한 잘못을 조금씩 닦아냈다.

꾸준한 평화 지향, 그리고 반성

아키히토 일왕은 일제 군국주의의 우상인 쇼와 일왕, 히로히토(昭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3년 태어난 그는 제국주의 일본의 이데올로기 학습에 앞서 2차 대전 일본 패망 당시의 참상을 유년시절에 체험했다는 점에서 부친과 차이가 있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전쟁의 위험을 피해 각지를 전전했고 폭격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된 도쿄를 목격했다. 이러한 나름의 경험 덕분에 그가 이야기하는 '평화와 반성'은 아버지 쇼와 일왕의 형식적 유감 표명과는 조금 다른 배경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일본)가 초래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한국)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나는 통석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회동시-

"일본이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많은 고난을 준 시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지난 날 일에 대해 깊은 슬픔의 감정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전후 일본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한국 국민들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방일 회동시-

"(삼국시대 다양한 교류를 이야기하며) 이러한 밀접한 교류의 역사가 있는 반면,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준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슬픔은 항상 내 기억 속에 있습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일 회동시-

그 시작으로 평가받는 것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회동 당시의 발언이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1994), 김대중 대통령(1998)의 방일 회동시에도 아키히토 일왕은 꾸준히 사과와 유감의 발언을 남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양국 정상 간에 좀 더 깊이 있는 관계의 진전이 없었던 점은 아쉬운 점이다.

이러한 반성이 '한때의' 일시적 표현이 아니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매년 8월 15일 열리는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ここに過去を顧み,深い反省とともに,今後,戦争の惨禍が再び繰り返されぬことを切に願い) 한다는 문구를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깊은 반성'이라는 문구가 처음 삽입된 2015년 8월이 아베 총리가 일본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급격한 우경화 정책을 추진하며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시점이라는 것이다. 즉,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총리의 정책에 대한 간접적 반대 의견을 평화에 대한 소신과 '깊은 반성'으로 표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백제 혈연'으로 이어진 한국과의 인연

아키히토 일왕은 백제에 대한 공부, 즉 '백제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고대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아키히토 일왕과 수차례 학술교류를 하기도 했던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백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무령왕 시대, 백제 불교의 일본 전래, 백제 부흥기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었다'라고 증언했다. 

2001년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을 맞이하여 열린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은 특히 유명하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은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초청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습니다...(중략)..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 사람들의 열정과 한국 사람들의 친절한 태도에 의해 일본에 소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있는 것에,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으며, 이때부터 일본에 오경박사가 대대로 초빙되었습니다. 또한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渡來人)이 일본의 문화창달과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일왕 자신이 혈연적으로 백제, 즉 한반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었다. 한국 언론은 해당 인터뷰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일본 보수·우익 언론들은 이러한 일왕의 발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반도 영향설 자체를 질색하는 일본 국학자 계열이나 우익적 역사관에서는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편, 비교적 최근인 2017년 9월에는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고마(高麗: 고구려를 의미) 신사를 방문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아베의 맞은편에 선 일왕

'전후헌법(戰後憲法)',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리는 일본 헌법은 일본의 국제적 무력 행사와 그 수단이 되는 군대 보유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2차 대전 후 제정된 현행 헌법을 지지하는 쪽이다. 2013년 12월, 아키히토 일왕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일본 헌법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상징임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아키히토 일왕이 '강한 일본을 되찾자'는 호전적인 문구 아래 헌법 개정을 추진해 오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적당한 제동을 걸어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규정하는 '안보법 개정'으로 시끄러웠던 2015년에도 아키히토 일왕은 신년 당부를 통해 급격한 우경화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올해는 종전 70년이라는 역사적인 해에 해당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전쟁이었습니다..(중략).. (종전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기회에 만주 사변으로부터 시작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향후 일본의 본연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위 30년 기념식에서 인사하는 일왕 내외(출처: 일본 정부 홈페이지)
 재위 30년 기념식에서 인사하는 일왕 내외(출처: 일본 정부 홈페이지)
ⓒ 일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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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기 갈등, 해군 관함식 참석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한일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2018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평화 추구에 대한 발언을 이어갔다.  
 
"(2차) 대전에서 많은 인명이 손실되었음에,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이러한 많은 희생과 국민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세워진 것임을 잊지 않고 전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도 이를 제대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 12월, 일왕 생일 기념 기자회견-

사실 이러한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과 의지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일본 보수·우익들은 결코 일왕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보수·우익의 본체(本體)가 무엇이냐를 여기에서 당장 논하기에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일본이라는 국가는 '만세일계(萬世一係) 일왕'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즉 일왕을 부정한다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뜻이다. 과거 그들의 선조가 일으켰던 '메이지 유신'과 '쇼와 군국주의' 또한 모두 일왕을 절대적 권위의 근거로 삼고 있다.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어떠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만큼의 권위는 아니지만 현행 일본 헌법에도 일왕은 엄연히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의 공표와 일왕 즉위에 이렇게나 들떠 있는 그들을 보라. 정치적인 권력을 갖거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일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정부가 일왕의 입장에 반(反)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직접적이고 확실한 발언으로 사죄하지 않았다는 점과 지나치게 평화주의만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한다.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과거 메이지, 쇼와 일왕의 잘못을 묻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2020년 헌법 개정을 목표로 돌진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비추어 볼 때, 일왕가의 이러한 평화주의적 행보와 발언은 현시점에서 상당한 의의와 가치가 있다. 일왕의 발언이 가지는 대표성을 외교적으로 활용해 일본의 군국화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선례도 있다. 과거사에 대해 충실히 사죄한 고노, 하토야마 등 전(前) 일본의 정치인들을 한국에 초청해 의견을 교류하고 있지 않던가? 그 대상을 일왕으로 높여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경우 새 일왕이 될 나루히토 세자보다는 상왕 아키히토가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월 30일 오늘,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와 함께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종언을 고한다. 그리고 5월 1일부터는 나루히토 일왕과 레이와(令和) 원년을 맞이한 일본이 우리 옆에 서게 된다. 새 일왕이 한국을 향해 급진전된 사과와 사죄를 할 것이라고 앞서서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나루히토 왕세자가 아버지인 아키히토 일왕 수준의 평화 인식과 역사의식만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일본에 사죄를 요구할 수 있는 우호의 카드가 수년 안에 생기리라 본다. 일왕(日王)으로서의 사죄는 부족했으나, 한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지녔던 아키히토의 퇴위를 이렇게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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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니스트, 작가 한국 근현대사 및 일본 역사/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역사 팟캐스트 채널 <역사와 사람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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