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나경원, 사개특위 회의장앞에 드러눕다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이 국회 본청 사개특위 회의장에 입장하려하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입장을 가로 막고 있다.
▲ 나경원, 사개특위 회의장앞에 드러눕다 지난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이 국회 본청 사개특위 회의장에 입장하려하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입장을 가로 막고 있는 모습.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 국회 개원 70여 년이 흘렀다. 국회는 그동안 '어용국회'니 '방탄국회'니 '날치기국회'니 '야합국회'니 사건·사고에 따라 수많은 별칭을 얻었다. 그러더니 이번 20대 국회는 '동물국회'라는 호칭을 선물받았다. 

지난 4월 25일 여야 4당간 합의에 따라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 등에 관한 법안 발의 및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상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 맞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필두로 물리력을 총동원해 저지에 나섰다. 급기야 국회는 '난장판' '아수라장'이 됐다. 국회선진화법이 발의된 2012년 이후 7년 만에 발생한 최초의 극심한 혼란이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켜보던 국민들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도를 넘어선 언행을 보면서 마치 힘과 폭력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듯 '동물국회'라는 별칭을 부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자유한국당을 해산시켜주세요'라는 청원이 하루 만에 20만 명, 29일 현재 40만 명이 넘는 이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광화문에서 두 번째 장외투쟁을 선포한 보수야당의 집회에는 5만여 명의 군중이 몰려 극심한 대조와 혼돈을 이뤘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벌어지는 무법행위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국민들의 분노와 무력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한국당은 승리를 연호하고, '다 구속돼도 문제 없다'며 더 강한 물리력 행사를 공언하고 있다.

한국당이 국회법 166조를 위반한 다섯 가지 이유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 저지 농성을 하던 중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방문해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 저지 농성을 하던 중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방문해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수많은 사법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적하듯이 이것은 명백히 국회법과 실정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다. 한국당 의원들의 대표적인 불법행위를 5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무려 6시간 동안 강제로 구금했다. 둘째 국회의장실에 집단적으로 몰려가 사보임 불허를 요구하며 문희상 의장을 겁박했다. 셋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열릴 공용회의실을 무단 점거했다. 넷째 국회 의사과를 찾아가 의안접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기기(팩스, 컴퓨터)를 파손하거나 서류를 강탈해 훼손했다. 다섯째 보수언론, 보수단체를 선동해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거짓 여론을 조장했다.

국회법 제166조는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른다면 한국당 국회의원 114명 전원은 명백히 현행범에 속하며, 즉시 체포해도 될 법하다. 증거와 증언은 차고 넘친다. 모든 언론과 국민이 지켜봤고 명백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의원들은 되레 승리를 자축하며 버젓이 국회를 점유하고 있다. 법 위에 군림하는 한국당의 자신감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동물국회'에서 반민특위 해체의 역사를 보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대한민국 국회 흑역사 중에 어떤 장면이 이와 유사하다던 생각이 불현듯 들었을 때, 70여 년 전 반민특위 해산 과정이 떠올랐다.

1948년 9월 7일 제헌국회는 일제강점기 반민족행위와 친일행적을 조사·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키고, 이 법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결성했다. 반민특위는 산하 기관인 '특별경찰대'(특경대)를 통해서 박흥식, 최남선, 이광수 등 친일행위자를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하는 등 법률에 근거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친일세력, 지주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과 집권여당 자유당의 노골적인 방해와 공작으로 말미암아 단 1명의 법적 처벌도 하지 못한 채 강제적인 해산 절차를 밟았다. 우리 역사의 뼈아픈 장면이 70여 년이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70여 년 전 반민특위 활동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인 방해 과정을 살펴보자.
 
 1949년 열린 반민특위 공판 모습.
 1949년 열린 반민특위 공판 모습.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감금_테러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산하 특경대 습격 사건이 발생한다. 1949년 6월 4일 특경대는 친일경찰 최운하를 반민족행위자로서 긴급 체포했는데, 이에 반발해 시경국장 김태선과 중부서장 윤기병 등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동원해 습격했다. 경찰력을 동원해서 말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 하의 경찰조직은 친일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반민특위가 체포한 688명의 반민족행위자 가운데 무려 37%가 경찰 출신이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특경대장 오세윤을 비롯해 특경대원 35명을 폭행하고, 중부서와 인근 경찰서에 강제 구금하여 반민특위의 손발을 묶었다.

즉각적으로 반민특위는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국회는 반민특위 원상회복과 책임자 처벌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되레 이승만 대통령은 6월 11일 반민특위 특경대를 강제 해산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반민특위 특경대의 무장해제와 해산 담화는 테러에 노출돼 있던 반민특위 활동을 급속히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겁박_회유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특경대 습격사건이 있기 한 달 여 전, 이승만 대통령은 조용히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의 관사를 찾아간다. 물론 경무대(현재의 청와대 격) 무장경호원을 대동하고서 말이다.

관저의 반민특위 경호원을 무력화시킨 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무장 경호원으로 관사를 위압적으로 점유한 채, 김상덕 위원장을 회유하고 겁박한다. 이승만은 최악의 친일경찰이었던 노덕술을 비롯해서 반민특위의 조사 선상에 있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조사중단과 면죄를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정부 고위직을 은밀히 제안하기도 한다.

온갖 회유와 겁박에도 불구하고, 김상덕 위원장은 이를 거부한다. 그는 젊은시절 2.8 도쿄유학생 독립선언 거사의 주동자로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임시정부에 합류한 독립운동가였다. 30여 년 세월동안 친일부역자들의 악행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동료들을 투옥, 고문, 처형, 전향시키는 데 앞장섰던 친일경찰을 면죄하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덕은 반민특위 위원장을 사임한다. 이때 그의 한탄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36년보다 더 가혹한 이승만 정권의 불의에 대한 한탄이었을 것이다.

"한 난관을 피하면 앞으로는 평탄한 길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난관을 피하면 피할수록 오는 것은 더욱 큰 난관이었습니다." 

#점거_탈취 
 
반민특위 청사 반민특위가 활동하던 1949년 당시 남대문로 2가(현 롯데백화점 맞은편 명동 쪽)에 있던 반민특위 청사. 특위 해산 후 국민은행 건물로 사용되었다.
▲ 반민특위 청사 반민특위가 활동하던 1949년 당시 남대문로 2가(현 롯데백화점 맞은편 명동 쪽)에 있던 반민특위 청사. 특위 해산 후 국민은행 건물로 사용되었다.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특경대 사무실 무단 점유 사건이 발생했을 때, 특경대원 불법감금과 함께 친일행정 조사 관련 수집자료 탈취, 대원 강제 무장해제 등의 조치도 뒤따랐다.

당시 무장력을 가진 특경대도 이렇듯 속수무책이었으니 여타의 반민특위 관계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반민특위 특별조사위원과 특별검찰관들은 목적도 불분명한 가택수색을 당하기 일쑤였고, 반민특위 중앙사무국과 특별재판부의 특위 관련 서류와 증거들은 강제적으로 압수당했으니 제대로된 조사가 될 리 만무했다.

제헌헌법과 제헌의회에 따른 합법적 국가기구인 반민특위를 경찰 세력이 함부로 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노골적인 메시지가 있었다. 그는 1949년 6월 11일 "내가 특별경찰대를 해산시키라고 경찰에게 명령한 것이다"라며 그 근거로 '헌법은 다만 행정부만이 경찰권을 가지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유일한 치안기구였던 경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승만 정권을 비호하고, 개혁세력을 탄압하는 데 앞잡이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선동_색깔론
 

시계를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자.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검찰은 '남로당 공작원이 국회에 침투해 첩보공작을 하고 있다'는 출처 분명의 정보를 입수해 대표적 친일파였던 서울시경 최운하 사찰과장을 중심으로 특별사찰반을 구성, 내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남로당원 전우겸의 진술을 토대로 현직 국회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5월 21일 임시국회가 소집돼, 야당을 중심으로 구속 의원에 대한 석방결의안이 상정됐으나 부결됐다. 이에 6월 3일 반공어용기관인 국민계몽대는 석방결의안에 찬성표를 행사한 의원들을 비난하는 군중집회를 열었다. 

이때 반공극우세력 300~400명은 반민특위 사무실에 몰려가 '반민특위 내 공산당을 숙청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민특위를 위협했다. 이에 반민특위는 경찰에 치안 유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중부경찰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군중집회는 반민특위에 대한 거짓 여론을 형성하고, 편향적인 이념공세를 통해 반민특위 정당성에 큰 상흔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헌법-민주주의 파괴자들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 
 
문재인 정권 규탄 구호 외치는 황교안-나경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문재인 정권 규탄 구호 외치는 황교안-나경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결국 반민특위는 1949년 5월 국회 프락치 사건, 6월 반공대회와 특경대 습격사건, 7월 반민족특별법 공소시효 단축안 통과 및 반민특위 위원 전원 사퇴, 8월 반민특위 폐지안 통과, 10월 특별검찰부 및 특별재판부 해체의 과정을 거쳐 사실상의 해산 과정을 밟게 됐다. 

일제강점기 이후 역사적인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에게 친일파 청산의 헌법적·사법적 명분과 근거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친일청산의 기회는 이렇게 허무하게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빠져나온 이승만 정권과 부패한 집권여당 그리고 친일경찰세력은 향후 대한민국사를 철저히 왜곡·유린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패스트트랙 상정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간 극렬한 대립을 반민특위 해산과정에 빗대는 것은 다소 과장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 반복의 기시감을 분명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4일, 한국당 최고위원회 발언을 통해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던 건 당연지사. 이후 나 원내대표는 자신의 말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라는 '묘한'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70여 년이 지난 국회에서 반민특위법 무력화의 아픈 역사가 개혁입법 무력화의 과정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무력감을 떨치기 쉽지 않다.

반민특위 위원과 이를 지지하던 국회의원들은 되레 '빨갱이' '공산당 프락치' '매국노' '반국가행위자'로 매도당했다. 헌법과 국회법을 휴짓조각처럼 여겼던 부패한 정치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말로는 '자유대한민국'을 연호하면서, 뒤로는 정치적 반대파들을 감금·겁박·점거·탈취하고 군중을 선동하는 방식으로 정의와 개혁을 무력화시켰다.

4.19 의거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6.10 항쟁으로 전두환 군부정권을,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국정농단세력을 심판했던 준엄한 민주주의 역사가 또다시 퇴행의 기로에 서 있다. 그들은 탄핵되지 않은 국정농단 세력의 부역자들이다. 2019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과연 반민주주의 행위자, 헌법파괴자가 누구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알고 있다. 역사의 회초리를 들 때가 됐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미래당(우리미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2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