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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왕족뿐이다. 더불어 정부는 안락사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할 방침이다. 대상자가 그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중략)

원래 같으면 축복받아야 할 장수가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 병 수발을 드는 가족의 인생을 짓밟는 측면도 있음을 이제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전 세계가 이 논제로 격론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 법안은 2년 후 4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9~10쪽)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의 시작은 충격적이다. 70세가 되면 무조건 죽어야 한다.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의 해법으로 내놓은 처방은 상상을 초월했다. 법으로 70세 이상 인간들의 생명권과 인격권을 박탈하겠다는, 가히 합법적인 홀로코스트라 칭할 만한 전무후무한 발상. 찬반 양론은 격하게 대립하고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될 개인들의 일상도 흔들린다.

며느리가 가출했다, 아니 탈출했다

시어머니 병수발로 지칠대로 지친 도요코는 해방감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이제 2년만 더 버티면 이 생활도 끝이구나.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오늘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함과 힘겨움의 연속이다. 도요코는 가족 구성원 누구의 관심과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시어머니 수발에 잠도 제대로 못잘 정도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명문대학을 나와 누구나 부러워하던 직장에 다니다 그만둔 아들 마사키의 기약없는 백수 생활 뒷바라지도 도요코의 몫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년퇴임을 2년 앞둔 남편은 회사를 조기에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아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독립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 모모카에게 할머니 수발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시어머니의 딸들은 2년 뒤 본인들 앞으로 돌아올 유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어머니를 돌보고 수발하는 데는 전혀 손을 보태지 않는다. 

도요코는 노인 돌봄과 수발을 가족 내 여성(며느리)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통적인 가족돌봄의 문제를 상징으로 보여준다. 개호보험(노인장기요양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강화해 온 일본에서도 가족의 책임을 우선시하는 전통적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부분은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심하다. 노인 돌봄을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대비하고 책임진다는 인식은 복지선진국들에 비하면 아직 모자라다. 인식도 인식이거니와 실제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의 총량이 사회적 돌봄망을 튼튼히 구축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치매에 걸린 부모 혹은 배우자를 수년간 수발하다가 결국은 환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리는 비극적인 뉴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지독한 고독감과 외로움, 중노동에 지친 도요코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한다. 도요코에게 그건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다. 누군가에게 저당잡히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겠다는 해방 선언이다. 방을 구하고 직장을 얻고 평생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감행하면서 도요코는 점점 자아를 찾아 나간다.

갑작스런 도요코의 가출에 가족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당해봐야 정신차리고 겪어봐야 고통을 안다고 했던가. 도요코의 빈자리를 메꿔가면서 시어머니, 남편, 자식들 모두는 고통스러운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겪는다. 

전대미문의 충격요법이 불러온 변화

도요코의 가출이 가족 내 충격요법이라면 '70세 사망법안'은 사회적 충격요법인 셈이다. 이 극약처방으로 일본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책은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데, 결말에도 놀라운 반전이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재정위기를 벗어날 방법으로 기획된 '70세 사망법안'은 모든 충격요법이 그러하듯이 일본 사회의 자성과 각성의 계기가 된다.

총리는 법안의 전격적인 폐지와 함께 대폭적인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 노동 격차의 해소, 최저임금의 상승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처음부터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계획된 총리의 빅피처인 셈.

70세 사망법안으로 온 나라가 노후 문제에 매달려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의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영위하면서 행복하게 늙어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깊게 형성된 덕분이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노인 문제는 단순히 노인 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자연적 과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잘 늙어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하고, 늙어서도 안전과 행복이 위협당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초고령사회라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변화앞에서 사회체계의 전면적인 수정과 혁신은 불가피하다.

소설 속 70세 사망법안처럼 우리사회도 뭔가 충격요법이라는 것이 필요할까.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설정이 다소 활당할수는 있으나, 이 소설은 저출산 고령화의 근본 해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이 불행이 아닌 행복이 되는 사회가 되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실립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왼쪽주머니(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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