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 <사월, 그리고 꽃> 앨범 커버

첸 <사월, 그리고 꽃> 앨범 커버 ⓒ SM엔터테인먼트

 
엑소에서 첸의 보컬은 대체 불가의 몫이었다. 그의 활약은 메인 보컬리스트로서 곡의 뼈대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청아하고 탄탄한 두성과 뛰어난 리듬감으로 팀을 이끄는 동시에, 날렵한 음색으로 노래에 맛을 더하고 그룹에 색깔을 부여했다. 기본기와 개성을 겸비한 셈이다.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구성한 첫 독집의 문법으로 정통 발라드를 고른 건 본인의 강점을 잘 파악한 결과다.

영리한 선택과 달리, 앨범의 성취는 절반에 머문다. 완성도의 문제는 아니다. 발라드에 집중한 구성과 개별 곡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그간 갈고 닦은 가창력도 십분 발휘했다. 얼핏 흠을 찾기 힘든 이 음반의 유일하고도 가장 커다란 약점은 개성의 부족함에 있다. <사월, 그리고 꽃>은 분명 첸의 음반이지만, 굳이 그가 아니어도 부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곡들의 모음집에 가깝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예성, 려욱 등 같은 소속사의 다른 가수가 부르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데뷔 후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한 첸(EXO)

데뷔 후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한 첸(EXO) ⓒ SM엔터테인먼트

 
음악에서 가수 고유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깔끔한 프로덕션, 적당히 듣기 좋은 선율과 그럴듯한 노랫말은 있을지언정, 그만의 매력을 경험할 만한 지점은 마땅치 않다. '꽃', '사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 '하고 싶던 말'로 이어지는 전반부가 특히 그렇다. 피아노를 중심에 두고 현악으로 장식을 한 세 곡은 첸을 위한 맞춤형 노래가 아닌 철저히 발라드 취향의 대중을 겨냥한 전략적 선곡이다. 

반면 앨범의 후반부는 아티스트의 컬러를 꽤 성공적으로 부각한다. 수록곡 중 가장 전형적인 'SM 발라드'에 가까운 '사랑의 말'은 첸의 맑고 높은 톤, 가볍고 곧게 뻗어 나가는 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유려한 전개를 거쳐 마지막 브리지에서 탁월한 도약을 들려주는 '먼저 가 있을게', 너른 음폭과 정교한 강약 조절을 포착한 '널 그리다' 역시 가수의 개성을 잘 살렸다. 다만 멜로디의 측면에서 듣는 재미는 앞선 곡들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독집의 의미는 팀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역량과 개성을 온전히 전달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 국적과 장르를 막론하고 성공적인 솔로 활동은 모두 그랬다. <사월, 그리고 꽃>에는 첸의 앨범이어야만 하는 당위가 부족하다. '첸이기에 할 수 있는 음악'과 '첸도 할 수 있는 음악'은 분명 다르다. 첸의 솔로 음반에서 듣고 싶은 것은 명백히 전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minjaejung/75)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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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음악 작가 | 팟캐스트 <뮤직 매거진 뮤브> 제작, 진행 http://brunch.co.kr/@minja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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