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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박근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박근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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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월 9월 27일 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무능, 무지, 무모 … 박 대통령 대책이 없다'  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적이 있다. '3무(無) 정권'을 비판한 글이다.

같은 해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그는 다음 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이름만 자유한국당으로 바꾼 채 제1야당으로 주저앉았지만 탄핵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 대표가 됐다.

무조건 반대하는 '무반당'

우리 국민은 지금 절망적 정치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참담한 현실과 암담한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는 행방불명됐다.

박근혜 정권은 '3무 정권'이었고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3무 정당'이다. 첫째, 자유한국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무반당'이다. 한나라당 시절에도 다를 게 없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온갖 터무니없는 구실을 둘러대며, 정부․여당의 발목잡기로만 일관해왔다.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었다. 까탈을 부리며 억지로 트집을 잡아 싸울 구실을 찾는 데만 골몰했다. 비장의 무기는 '색깔론'과 '폭로전'이었다. 이 와중에 '좌파독재'라는 세계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개념까지 만들었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법 패스트트랙을 "의회 쿠데타"라고 힐난한 것 역시 '무조건 반대'의 백미다. 정경유착과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검찰 불신풍조가 만연해 있음에도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공수처 도입도 반대하고 나섰다. 심지어 나치스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까지 거론했다.

역사 의식이 부재한 '역사 무의식당'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29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차수를 변경해 30일 새벽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하자, 회의장 앞 복도에 모여있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 바닥에 드러누운 나경원 "원천무효"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29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차수를 변경해 30일 새벽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하자, 회의장 앞 복도에 모여있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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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자유한국당은 '역사 무의식당'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얼마전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라면서 "또 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해달라"고 역설했다.

반민특위는 1948년 8월 헌법에 따라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한 특별위원회였다. 하지만 친일파와 야합한 이승만 정부의 방해공작 및 친일세력의 특위위원 암살음모, 친일경찰의 특위 습격사건 등을 겪으며 설치 1년 여 만에 와해됐다. 반민특위가 좌초하면서 친일청산에 실패하고 일제에 부역한 자들이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우리 민족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중학생 정도면 가지고 있을 역사적 문제의식이 대한민국 제1야당의 원내대표에 의해 왜곡당한 셈이다. 나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서 반민특위 활동을 '국민분열' 이라고까지 몰아세웠다. 이는 친일부역세력의 친일청산 반대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나 원내대표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과 역사학계, 독립유공자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했고, 민평당 문정선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명실상부한 자유당의 친일정신, 공화당, 민정당의 독재 DNA를 계승하고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의 역사인식이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지적하자, "한일관계가 일본의 보복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데 과연 우리 정부는 현명하게 대응하고 있느냐"며,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한 것 아니냐"고 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이 알려진 직후 비판이 쇄도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1909년 12월, 매국단체 일진회는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하여 일본 여론을 자극함으로써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며 '합방청원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토착왜구의 원조'"라며, "110년이 지났는데도, '원조의 정신'은 살아있다"고 규탄했다. 아베 내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나 원내대표를 매국단체인 일진회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막말, 망발... '언행 무차별당'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 서울본부 회원들이 3월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사무실앞에서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등 전날 국회 대표연설 파문과 관련 ''평화역행, 탄핵부정, 망언집단 자유한국당 해체와 평화염원 국민모독 나경원 의원 망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6.15남측위 "나경원은 아베 수석대변인?"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 서울본부 회원들이 3월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사무실앞에서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등 전날 국회 대표연설 파문과 관련 ""평화역행, 탄핵부정, 망언집단 자유한국당 해체와 평화염원 국민모독 나경원 의원 망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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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자유한국당은 '언행 무차별당'이다. 홍준표 전 대표 시절, 그가 날리는 막말파동으로 정치권은 물론 자유한국당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지금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잇따른 설화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얼마 전 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공수처와 관련해서도 "이제는 대통령 직속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들어서 이 정권 비판세력을 완전히 짓누르겠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판 '게슈타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나 원내대표의 주장은 대부분 궤변에 가까운 정치공세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4선의 중견 정치인답지 않은 시정잡배식 발언을 한 나 원내대표는 사과하고,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달라진 게 없다. '자유'를 구가하는 '자유' 한국당답게 여러 유형의 '자유'인사들이 이러한 원내대표를 받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이어달리기에 나서고 있다.

김순례 의원 등은 5․18이 "폭동"이며 그 유공자가 "괴물집단"이라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정진석 의원은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징글징글하다"는 글을 공유해 논란이 되자 사과했고, 차명진 전 의원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쳐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는 억지 막말을 쏟아냈다. 그들은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자유 한국당'을 '방종 한국당'이라 불러야 마땅한 일이다.

물론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진석 의원은 세월호 5주기일인 지난 4월 16일 경탄스럽게도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 언어상'을 수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막말과 망발의 정치가 자연스레 가 닿는 곳은 '아니면 말고' 식의 무한 무책임 정치관행이다.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일삼느라 정신이 없어, 박근혜와 이명박 등 선배들이 저지른 갖가지 실책과 과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막말과 망언정치'는 정치포기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막말로써 평화로운 대화와 협상에 못질하는 꼴이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이나 여당 등, 정치적 파트너의 존재와 의의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심지어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취임한 이래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극우화로의 문을 과감히 열어 제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슈는 냉전 반공이데올로기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후예답게 사회경제적 민주화 문제 같은 것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없다. 그런 탓에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수권대안 정당으로의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터뜨리는 막말정치는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지닌 저급한 정치력을 무모하게 폭로하는 천박한 정치적 망동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를 앞장서 불러오고 있다.

하지만 끝이 없다. 자유한국당은 5․18 관련 망언자들에 대한 '맹탕 징계'는 또다시 국민을 우롱했다. 5․18 망언 이후 70여일 동안이나 결정을 미루어오던 끝에 다시 한 번 더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비탄으로 들끓도록 만들었다.  

제 1 야당 분발해야 한다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자유한국당 규탄 시국선언 참가 단체 회원들이 3월 7일 오전 국회 앞 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망언을 한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 제명과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자유한국당 규탄 시국선언 참가 단체 회원들이 3월 7일 오전 국회 앞 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망언을 한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 제명과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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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기간 중에는 모든 정치인들이 자신이 얼마나 탁월한 주권자의 하인인가 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겠다는 텅 빈 공약까지 남발할 정도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국민 스스로가 금세 하인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주인으로 올라선다.

이런 면에서 모든 정치인은 말을 유언처럼 해야한다. 줄 이은 한국당 인사들의 잇따른 망언을 두고 정의당은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벌레가 들끓는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한국당은 자신의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든 감옥에 갇히든, 여태껏 반성한 적이 거의 없다. 자기 성찰을 담은 '참회록' 대신에, 쓰레기 속 벌레처럼 우글거리는 '망언록'만 생산하고 있다.

4․19 혁명 59주년을 맞아서일까, '자유'한국당에서 부패한 '자유'당 식 악취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당은 자기 품속에 겹겹이 쌓인 '쓰레기 대청소'를 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민에 의해 청소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제1야당은 분발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입니다.


태그:#자유한국당, #나경원,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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