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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과로 자살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와 달리 일본은 1990년대부터 과로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이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책 <과로 자살>은 그 과정의 결과물이다. 

1988년부터 '과로사 110번'을 운영하면서 과로사·과로 자살 문제에 힘써온 저자 가와히토 변호사가 직접 상담하고 변론한 사례에 대한 소개부터 원인에 대한 분석, 노재보상 절차를 설명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극단적인 노동환경을 보여주지만, 이상하게 대부분 사람이 친숙함을 느낄 것이다.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과 놀랍도록 유사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ST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씨와 CJ E&M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의 사건을 통해 과로 자살이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임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과로 자살 현상은 어느 정도의 규모이며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 속에서 18일 <과로 자살>의 역자인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과 함께 노동시간센터 4월 월례토론이 진행되었다.
 
 과로자살 (가와히토 히로스, 2019)
 과로자살 (가와히토 히로스, 2019)
ⓒ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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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자살' 이해하기의 어려움 

'과로사'라는 말을 접했을 때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것과 다르게 '과로 자살'은 단번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 <과로 자살>이라는 책 제목 자체다. '과로'와 '자살' 사이의 띄어쓰기는 각각 독립적인 의미가 있는 두 가지 말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과제를 준다. 

과로사의 경우 과로라는 상황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과를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과로 자살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로 자살이라는 용어를 알기 위해서는 과로라는 노동환경이 어떻게 자살과 연관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흔히 과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 과부하를 의미한다. 장시간의 초과 노동과 휴일 없이 연속되는 근무로 인해 수면 부족,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 등이 나타난다. 판단능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과로 자살에 이르는 경로에 대한 전형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과로 자살은 업무 중 발생한 스트레스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일으키고, 이것이 심해져 자살에 이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과로 자살>에서도 볼 수 있듯 많은 과로 자살 사례들은 단순히 긴 노동시간과 업무량이 주는 스트레스로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기간 담당했던 업무가 급작스럽게 변동하거나, 구조조정 중 동료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해야 하는 상황, 신임 교사가 곧바로 교육과 학급운영, 학부모 대응의 업무를 모두 맡아야 하는 상황 등을 들 수 있다.

즉 과로 자살은 단순히 장시간 노동과 노동 과부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으로 일터 괴롭힘 등의 문제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폭넓은 노동 문제들을 모두 '과로 자살'로 지칭한다면 이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을까? 필자 역시 과로 자살에 너무 많은 의미가 포괄되어 있다는 우려를 전한다. 

과로 자살은 간단명료해 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언어다. 하지만 과로 자살이라는 말이 주는 직관성을 넘어 어떠한 노동 환경과 조건이 노동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집중해야 정확한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통계도 없는 한국의 현실

<과로 자살>의 1부는 1988년부터 '과로사 110번'을 운영했던 가와히토 변호사가 직접 상담하고 변론했던 과로 자살 사건의 사례들이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층이며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2부에서는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 과로 자살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파악해 통계를 냈다. 하나는 과로사 110번을 운영하면서 시민사회가 구축해온 민간부문의 데이터다. 공공부문 데이터는 2000년 중후반 이후로 국가 차원에서 전반적인 자살 예방 자체에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경찰청 통계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통계에는 자살 원인 중 '근무 문제'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초기에는 자살 원인을 1개만 특정할 수 있었는데 추후 3개까지 체크할 수 있게 되면서, 자살 원인으로 업무 연관성을 지목할 수 있는 경우가 연간 2000~2500명 내외다. 

한국도 경찰청 통계상 자살의 원인 중 '직장·업무상 문제'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여기 해당하는 비율은 4%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달리 여전히 자살 원인을 하나만 체크할 수 있어 이 통계가 실제 과로 자살의 숫자와 규모를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2014년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설립되면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심리 부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98건의 심리 부검 결과 중 53.6%가 직업적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많은 자살 사례에서 질병, 경제적 문제 등의 이유 뒤에 직업적 요인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로 자살로 내모는 노동규범의 문제
 
 ST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 님의 유가족 장향미님
 ST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 님의 유가족 장향미님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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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과로 자살의 규모에 대해 정확한 수치를 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므로 데이터를 마련하고 대책을 만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 규범의 변화이다. 

<과로 자살>를 보면 과로 자살한 노동자가 상사나 회사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사례들이 나온다. 과로로 인해 자살에 이를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그들은 왜 회사에 '죄송하다'는 말을 했을까? 

일본의 오릭스 주식회사는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놓지말라'는 일명 '덴쓰의 귀신 10칙'을 직원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무조건 조직의 지시를 따르라'는 노동 규범이 일본 사회의 문제라면, 한국 사회는 일상에 널린 노력과 능력주의가 결합한 메시지가 문제일 것이다. '노력을 한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규범은 노동자들이 실패를 경험하거나 일터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과로가 낳은 정신질환이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하여 과로 자살을 일으킨다는 설명은 언뜻 의문으로 남는다. 물론 과로 자살이 산재 승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신질환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있다. 업무가 일으킨 정신질환을 매개로 과로 자살이 승인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정신질환 유무를 판단하기에 앞서 노동자에게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노동환경이 있었는지, 그 환경은 어떤 점에서 문제였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환경이 과로 자살을 일으키는 조건으로 기능했다면 그 노동환경 자체가 과로 자살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노력하여 극단적인 노동조건을 돌파해야 한다는 담론이 넘쳐난다. 여기서 탈락하면 어떠한 사회 안전망도 없다. 과로 자살이 '판단 이상'의 결과라면 이런 사회에서 '이성적 판단'이란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자꾸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게 하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업무상 자살'이라는 논리 대신, 과로 자살을 발생시킨 노동환경과 조건에 대한 더 철저한 조사와 문제 제기가 과로 자살의 인정 문제에서 우선되어야 한다. 

또 발표자가 강조하는 것은 일터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집단들이다. 가령 우리는 성별 규범이 수직적 조직문화와 맞물려서 가해지는 괴롭힘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성별 규범뿐 아니라 나이, 고용 형태, 사회적 지위 등을 따라서 더 취약한 노동자들이 더 강한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 일터가 이들을 극단적인 노동환경으로 어떻게 내몰고 있는지 문제화할수록 과로 자살이 발생하지 않는 일터가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월례토론은 한국사회 노동시간과 노동자의 삶을 다양하게 살펴보는 열린 토론 자리입니다. 5월 월례토론은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장을 모시고 5월 16일 저녁 7시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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