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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플리트(Split)의 고대 로마 유적,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s Palace)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따라 답사를 시작했다.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이 성벽에는 15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절의 역사도 켜켜이 쌓여 있다.

답사 시작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남서쪽의 베네치안 타워(Venetian Tower)가 내 눈 앞을 막아섰다.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을 막기위해 세워진 베네치안 타워는 아직도 압도적인 위용으로 과거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 타워와 연결된 오래된 건물들의 벽면에는 구조적인 보완을 위한 석재 가새들이 대각선으로 박혀 있다. 이러한 성벽의 석재와 기둥 하나하나에서도 오래된 역사의 세월이 느껴진다. 그대로 보존된 성벽의 견고한 가새와 타워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그대로 보존된 중세의 성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베네치안 타워 아래에는 1453년 베네치아공국이 조성한 브라체 라디치 광장(Trg Braće Radić)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때 과일 상점들이 몰려 있어서 과일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곳이다.

이 광장 중앙에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 유명 시인의 동상이 서 있었다. 크로아티아 문학의 아버지, 마르코 마루리츠(Marko Marulić)의 동상 위에는 한낮의 햇살이 잔뜩 쏟아지고 있었다. 15세기에 시인으로 활동한 마르코 마루리츠는 이곳 스플리트 출신이라서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브라체 라디치 광장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서벽을 타고 걷는 길은 골목길이 계속 이어진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은 작은 전동차와 인력으로만 모든 운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람 사는 정겨움을 느끼며 스플리트의 뒷골목을 계속 따라 걸었다.

골목길을 올라가자 궁전의 서쪽문인 포르타 페레아(Porta Ferrea)와 연결된다. 궁전의 동서남북에 자리잡은 성문은 각각 금속을 상징하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서문은 '철문(鐵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벽 안에 아치형으로 뚫린 서문을 올려다보니 운치있는 시계탑이 보인다. 르네상스 양식의 이 시계탑은 1부터 24까지의 로마 숫자를 따라 하루에 한 바퀴만 돌아간다. 성곽 외벽이 품고 있는 이 시계는 옛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 시계탑 시계를 보고 있으려니, 마치 저 시계가 타임머신처럼 거꾸로 돌아 주변을 중세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만 같다.
 
몸무게를 재는 할머니. 사람 몸무게를 측정하는 데에 저울을 사용하고 있다.
▲ 몸무게를 재는 할머니. 사람 몸무게를 측정하는 데에 저울을 사용하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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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로마 궁전 서문 밖에서는 과거 동유럽 여행 시에 목격했던 장면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몸무게 측정기를 길가에 두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몸무게를 재어주는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할머니는 별로 효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키 측정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직도 사람 몸무게를 측정하는 데에 과일 가게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저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놀라워."
"할머니가 수십년 동안 살아왔던 사회주의 체제 속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호객행위도 전혀 안 하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안타깝게만 보여. 할머니의 손에 동전 몇 개가 있는 것을 보면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만이 재미삼아 자신의 몸무게를 재는 것 같아."


궁전의 서문 앞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아주 정겨운 느낌의 한 광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13~14세기에 궁전을 확장하면서 스플리트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광장이다. 대리석으로 바닥이 장식된 광장에는 야외 카페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각국의 여행자들은 스플리트에서의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로드니 광장. 굉장히 아담한 곳이어서 마치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든다.
▲ 나로드니 광장. 굉장히 아담한 곳이어서 마치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든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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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나로드니 광장(Narodni trg) 주변은 14세기부터의 베네치아,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이 그대로 보존된 건축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통일되지 않은 듯한 건물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중세 스플리트에서 공동생활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낮이나 밤이나 가장 활기가 넘치는 보행광장이다.

나로드니 광장은 굉장히 아담한 곳이어서 마치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든다. '나로드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름처럼 이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이다. 아침에 이곳을 지나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여행자들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이 광장의 북쪽에는 1443년에 베네치아에 의해서 만들어진 구시청사, 올드타운홀이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베네치아는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할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그 힘있는 전성기의 모습이 고딕 양식의 올드타운 건물 곳곳에 스며 있다. 이 구시청사를 보고 있으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본 산마르코 광장의 건축물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 구시청사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개의 고딕 양식 아치로 장식된 1층이다. 원래 이 구시청사 건물은 1층의 한쪽 면이 트여 있었고, 지붕 있는 회랑인 로지아(loggia)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 있다.

원래 구시청사는 스플리트 통치자인 렉터(Rector)의 궁전, 극장, 감옥까지 연결된 큰 건물군이었다. 그러나 1825년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파괴되고 구시청사와 작은 예배당 건물만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455년에 구시청사와 카레피츠 저택(Karepić Palace)을 연결하는 브릿지 위에 세워진 세인트 로렌스 예배당(the Chapel of St Lawrence)은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살아남아 옛 시대의 운치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구시청사 건물도 1890년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수리되면서 현재의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이렇게라도 살아남아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시청사 전시장. 스플리트에서 발굴된 고대 토기와 건축물의 석재가 전시 중이다.
▲ 구시청사 전시장. 스플리트에서 발굴된 고대 토기와 건축물의 석재가 전시 중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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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시청사는 한때 민족지학 박물관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전시장으로 이용되면서 다양한 역사와 문화 관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마침 스플리트의 역사적 유물에 대한 무료 전시가 진행 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2층의 전시장 안에는 스플리트에서 발굴된 고대 토기, 문양이 조각된 고대 석재, 그리스도의 조각상과 함께 과거 사진과 지도, 현대 미술품 등이 전시 되고 있었다. 특히 고대부터 중세까지 여러 건축물을 지탱하던 석재들이 유물이 되어 스플리트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저 고대 석재들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속의 제 자리 안으로 찾아들어간다면 스플리트의 역사적 가치는 더욱 더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나로드니 광장으로 나와 어딘지 모를 골목길로 들어섰다. 로마시대에 세워진 궁전 유적 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신기해 보였다. 이 골목길은 로마 사람들도 걸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수백년을 함께 살아온 집들이 아직도 매력을 유지한 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언론매체 중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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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