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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에서 새로 입수한 이중섭 작품 네 종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이 작품들은 이중섭 미술사에 매우 희귀한 유품으로 두 점은 이미 공개되어 알려진 것이나, 두 점은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새로 발견된 두 점 모두 이중섭 개인사나 한국 근대미술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들이다. 미술관 측은 한 점은 1940년경에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한글 편지이고, 또 한 점은 1941년에 제작된 엽서 그림으로 마사코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이중섭의 한글 편지에 대한 의문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쓴 한글 편지.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쓴 한글 편지.
ⓒ 이중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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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한글 편지는 1940년 경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1921~현재)에게 쓴 것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결혼 전에 마사코에게 보낸 유일한 한글 편지이다. 이 조그만 편지는 발굴될 때부터 반으로 접혀 있었다고 하는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사- 너는 한없이 귀여웁고 탐스럽구나.
내 기어코 훌륭한 일을 쌓고 쌓어 너를 행복케
 하마. 둥섭 素塔 194. 7.25."

미술관 측은 이 편지에 대해 "1939년 처음 만난 마사코가 아직 한글을 모르던 당시에 장난기를 담아서 이듬해인 1940년 쓴 것으로 보인다"며 제작 연유와 시기를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이중섭이 한글로 남긴 편지는 매우 희귀한데다 연인에 대한 사랑과 화가로 성공하겠다는 결의가 모두 담겨 있어 의미가 크다"고 편지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귀한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미술관 측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의 진위에 의심스러운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 편지가 진품이라면 이중섭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른 시기의 필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니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이중섭의 글씨라고 보기에 근본적으로 이상한 부분이 많다. 의심스러운 부분을 몇 가지로 나누어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 편지의 글씨체이다. 이 편지의 글씨는 매우 유려한 필기체 한글로 씌어 있다. 매끄럽게 쓴 것이 한글을 자유자재로 쓰는 한글세대나 쓸 법한 글씨체이다. 글씨체도 시대에 따른 필체의 변화가 있다. 추사 김정희의 한글이 다르고, 명성황후의 한글 필체가 다르다.

또한 1940년대에 살았던 지식인의 필체와 1970년대 한글 전용 교육을 받은 이들의 글씨체가 다르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의 한글 글씨체 또한 어른들의 글씨체와 또 다르다. 그런데 이 글씨는 1940년대 한문과 일본어를 주로 사용한 지식인의 글씨와는 매우 다른, 한글 전용 세대들이 주로 쓰는 방식의 한글 필기체이다. 이중섭이 살았던 시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글씨이다.
       
1950년대 이중섭이 보낸 편지의 한글체
 1950년대 이중섭이 보낸 편지의 한글체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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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 글씨는 동시대에 이중섭이 직접 쓴 다른 글씨와도 매우 다르다. 현재 이중섭이 필기체 한글로만 쓴 편지는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그는 한글에 익숙지 않은 교육을 받아 주로 일본어나 한자를 사용하였다. 간혹 일본어나 한자 사이에 한글 단어 하나를 끼워 넣는 정도의 편지만 썼다.

당시에 마사코에게 보낸 다른 편지도 거의 일본어나 한자로 썼다. 그런데 새로 발굴된 편지는 한글로 대부분 쓰고 한 단어만 한자로 썼다. 그런데 글씨체가 비슷한 시기에 이중섭이 쓴 다른 일본어 중심의 편지와는 획을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한자나 일본어라 하더라도 쓴 사람 특유의 필체가 있다.

이중섭은 주로 각진 형태의 획을 주로 사용하여 일본어나 한자의 글씨를 썼는데, 이는 이중섭이 평생 지녀온 글씨의 특징이다. 특히 멀지 않은 시기인 50년대 엽서에 쓴 '서울'이라는 글씨의 받침 'ㄹ'을 보면 이 두 종류의 글씨가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특징이 몸에 밴 이중섭이 느닷없이 현대인이나 쓸 법한 한글 글씨를 썼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이중섭이 한글을 모르는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일본인 연인에게 장난으로 한글 편지를 썼을 것이라는 가설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가설에는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이중섭은 훗날 연인 마사코가 한국어나 한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였을 때에도 한글 편지를 쓰지 않았는데, 만나 얼마 되지 않아 느닷없이 한글 편지를 썼다는 설명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호인 '소탑(素塔)' 두 글자만을 한자로 쓴 것은 가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이중섭은 경박하지 않고 매우 내성적이었으며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한 이중섭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장난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중섭에게 그런 다른 예도 없을 뿐더러,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상식적인 행위도 아니다. 내용으로 보더라도 특별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고, 장난스럽게 꼭 한글로 써야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 개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중섭의 다양한 서체 (이중섭의 드로잉. 2005)
 이중섭의 다양한 서체 (이중섭의 드로잉. 2005)
ⓒ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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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마지막 부분에 '둥섭 소탑(素塔)'이라는 이름과 호를 사용한 것도 일상적이지 않다. 보통 그림에 이름과 호를 쓸 때에는 보통 호를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이중섭은 '소탑'이라 호를 쓰던 시절의 그림이나 글씨에 '소탑'만 쓰거나 '둥섭'이라고 한 가지만 썼지 '둥섭 소탑'이라 둘을 쓴 적이 없다. 그러니 이 편지를 이중섭이 쓴 것이라면 하나만 썼을 것이다. 행여 둘 다 쓰더라도 '소탑(素塔) 둥섭'이라 썼을 것이다.

또한 이 두 가지의 글씨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비슷한 시기에 쓴 이중섭의 글씨와 비교해 보아도 매우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이중섭은 편지를 쓸 때 글씨의 구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예술가적 기질이 있어 글씨를 쓸 때에도 독특한 직선 형태의 필체를 즐겨 사용하였다. 한자로 따지면 예서나 전서의 획을 즐겨 사용했지 초서의 획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섯째, 마지막에 날짜를 쓴 부분이다. '194. 7. 25'라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표기 방식이다. 미술관 측은 '1940년'을 '194'로 잘못 쓴 것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엽서 한 장을 써도 매우 신중하게 쓰고, 두 아들에게 엽서를 쓸 때에도 유사한 내용을 두 아이 각각에게 써 보낼 정도로 결벽적인 성격을 가진 이중섭이 짧은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이상하게 날짜를 써서 보낼 리가 없다.

게다가 한글을 모르는 일본인 애인에게 한글로 편지를 쓰고, 그 짧은 편지에서 날짜까지 틀리게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애한 지 얼마 안 되는 진중한 성격의 이중섭이 사랑하는 이에게 할 수 있는 일로서는 지나치게 일상적이지 않다.

이런 여러 가지 의문점이 드는 이 편지는 이중섭이 직접 쓴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의문점을 해결하여 진품 편지로 확정하였는지 알 수 없다. 편지를 받은 당사자인 마사코의 확인을 받은 것인지, 미술품 감정기구에서 감정을 한 것인지 조차도 확인되지 않는다. 혹시 감정 과정을 거쳤다면 이중섭의 젊은 시절 한글 글씨를 대조할 기준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이중섭의 글씨라 확신하고 입수했는지 또한 궁금하다.

학술 연구의 일차 자료에 의문점이 생겨 확인하기 어려울 때에는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의 출처'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편지의 경우 작가가 생존해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이중섭이 이미 세상을 떴으니 편지를 받은 당사자인 마사코의 분명한 확인이 있어야만 진품으로서 고려할 만하다.

여기에 더하여 2005년경 이중섭 위작 사건의 당사자가 유족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경우는 좀 더 완벽한 출처나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이중섭의 1941년 작 '앉아 있는 여자'의 진위
                  
이번에 새로 수집했다는 엽서 그림은 이중섭이 1941년 마사코를 대상으로 그린 '앉아 있는 여자'라는 것이다. 여자 한 명이 옷을 모두 벗어 버린 채 나신으로 나뭇잎 사이에 앉아 있는 내용이다. 이 그림에 대해 미술관은 "마사코가 길을 걷다 삐끗해 발가락을 다쳤을 때의 기억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작품의 내용에 발을 다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흔적이 전혀 없고, 여인의 자세가 발을 다친 에피소드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 작품의 묘사 기법과 채색 방식 등에선 이 작품을 이중섭이 그린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여러 의문점이 나타난다. 작품의 묘사 수준도 당시 이중섭의 회화적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모자라고, 채색도 이중섭의 다른 작품과 달리 미숙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이중섭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 없게 한다.  
 
<이중섭의 사랑, 가족>
 <이중섭의 사랑, 가족>
ⓒ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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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마사코가 발을 다친 사건을 소재로 같은 시기에 그린 작품이 한 점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그림과 이 그림은 많은 차이가 있다. 1941년 6월 4일에 그린 '발을 치료하는 남자'라는 작품이 바로 그때의 사건을 그린 것이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산책하다 마사코의 신발 뒤축이 보도블록 사이에 끼어 발가락을 다친다. 마사코의 발에선 피가 흐르고 이중섭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발을 어루만지다 손에 피를 묻힌다.

집에 돌아온 이중섭은 그 장면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대범하게 구도를 잡고 대부분의 선을 직선으로 그린다. 이중섭 특유의 감각적이면서도 빠른 선을 사용하여 대상을 표현하였다. 직선을 사용한 이 선들은 조화를 이루며 얼굴에서 발, 그리고 이중섭의 팔을 거치며 전체적으로 둥글게 돌아가는 흐름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감각적인 뛰어난 구도나 빼어난 솜씨로 보아 누가 보아도 이중섭의 손에서 나온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모습은 이중섭이 같은 해에 그린 곡선을 주로 사용한 '누운 여자' 같은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중섭의 가족, 사랑>
 <이중섭의 가족, 사랑>
ⓒ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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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새로 발견된 작품은 기본적으로 데생의 수준이 현저히 떨어져 다른 여러 이중섭의 소묘들과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여체를 그린 '누운 여자'와 유사한 또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보아도 진품을 의심케 하는 모습이 쉽게 드러난다. 이 또한 몇 가지로 나누어 따져보고자 한다.
 
이중섭 '앉아 있는 여자' 1941년.
 이중섭 "앉아 있는 여자" 1941년.
ⓒ 이중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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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드러나는 의문점은 '인체묘사' 수준이다. 이 작품은 일정 기간 회화기법을 수련한 전문화가의 손길로 보기 어렵다. 인체의 기본적인 묘사가 수준이 떨어지고 대상의 표현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인체의 비례도 맞지 않고, 얼굴 등 세부적인 묘사는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하는 젊은 여인을 그렸음에도 어깨에서 손으로 내려오는 팔 부분이나 손발의 근육질 묘사는 마치 남성의 강인한 근육과 뼈대를 보는 것 같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둘째, 채색의 수준과 색칠 방식에 대한 의문이다. 이중섭이 같은 시기에 그린 다른 작품의 경우 빠른 붓질로 고르게 채색을 하여 매우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데, 새로 발굴된 작품의 채색은 얼룩덜룩하여 매우 지저분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나뭇잎을 채색할 때 이중섭은 보통 나뭇잎 전체를 한 붓으로 연결하여 칠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잎의 칸을 하나씩 나누어 조심스럽게 색칠하고 있다.

숙련된 화가에게 있어 이 작은 작품의 채색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은 붓으로 옅은 채색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면 되는 정도의 채색이다. 이중섭 정도의 수련된 전문가라면 순간에 처리할 간단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중섭의 다른 작품에 보이는 자연스러운 채색과 이 작품의 채색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셋째로 이 시기의 이중섭 작품들은 직선이든 곡선이든 매우 빠른 획을 사용한다. 보통 '단 붓질'이라 불리는 일필 일획의 방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보이는 선은 느리기 이를 데 없고, 필획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획의 기세뿐만 아니라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도 다르다.

이 작품에서는 잎의 세밀한 줄기들을 표현하면서 억지로 칸을 맞추어 그리듯이 답답하게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다른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설사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른 선이 나올 수 있다 하나,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한 미술가의 선은 대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림의 뒷면에 주소와 소인이 찍혀 있을 텐데, 이 또한 밝혀주지 않아 진위에 대한 의문을 더하게 만들었다. 다른 기관에 소장된 엽서 작품들도 대부분 보낸 날짜가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도 소인의 내용을 밝혀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럴 때 이 작품이 진정한 이중섭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듯 새로 발굴된 '앉아 있는 여자'라는 그림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보여 이중섭의 진품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기초적인 의문이 완전히 해결될 때에 이 작품을 이중섭의 작품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

해결점을 위한 마무리
 

이중섭 '사과 따는 남자' 1941년
  이중섭 "사과 따는 남자" 1941년
ⓒ 이중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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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중섭이 남겼다는 편지와 엽서 그림은 이중섭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작품들이 이중섭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나, 이제라도 진위에 대해 다시 한 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무상 기증을 받은 것이라면 진실만 밝히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유상 기증이거나 언론에 보도된 대로 구입한 것이라면 미술관의 권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필자가 이런 의문점을 제시하는 것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유물 구입 구조와 작품의 진위 검증에 대한 제도가 잘 되어 있는지 더듬어 보자는 뜻이다.

미술 작품은 공신력 있는 미술관에 소장되면 바로 연구자의 텍스트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검증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소장된 작품을 바탕으로 미술사가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의 진위 검증'은 더욱 중요하다. 이제라도 미술관은 구입 과정의 경로를 밝히고, 혹시 감정 과정을 거쳤다면 어떤 인물이나 기관의 확인을 받았는지 내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선보인 '앉아있는 여자'라는 엽서 그림은 해당 미술관에서 예전에 입수한 작품 '사과 따는 남자'와 유사한 솜씨를 보여 어떤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 '사과 따는 남자' 또한 진위가 의심스러운 면이 많아 이번에 구입한 '앉아있는 여자'와 같은 과정으로 다시 한 번 검증해야 할 것이다.

유명한 공공 미술관은 작품을 입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위에 대한 검증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공공미술관에 잘못된 작품이 유입되면 한국 미술계가 혼탁해져 결국 한국 미술사가 지저분하게 오염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태그:#이중섭, #한글편지, #엽서그림,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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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고교 국어 교사를 11년간 하였다. 2001년 교사 퇴직 후 줄곧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에 《경매된 서화》 (김상엽 공저, 시공사, 2005)가 있고, 논문에 <소치 허련의 완당 초상에 관한 소견>(《소치연구》 창간호, 2003) 외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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