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메인포스터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메인포스터

▲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메인포스터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메인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기억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 상영 중단 이슈로 부산시와 영화제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큰 이슈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제 역대 최다 관객(약 22만 6,400명) 및 아시아 필름 마켓에 참여 부스도 역대 최대 규모(223개, 전년도 대비 30% 증가)로 집계되면서 흥행에 성공한 해였다.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도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장예모 감독의 <5일의 마중>과 임권택 감독의 <화장>이 갈라 프레젠테이션 작품으로 선정된 가운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 등의 작품들이 국내에 처음 공개되었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시인 요아브> 또한 영화제를 찾은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을 끈 작품 중 하나였다. 유치원 교사였던 니라가 시 창작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는 요아브라는 아이를 응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제시하며, 요아브의 그런 재능을 자신의 자랑인 양 지인들과 공유하며 점차 순수한 의도를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준 영화였다. 점차 요아브의 재능에 집착을 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예술적 경험과 창작의 욕망, 타인의 것을 빼앗으면서까지 성취하고자 했던 욕망의 이면에 대해 섬세히 그려내 큰 인상을 남겼다.

02.
매기 질렌할이 주연을 맡고, 신예 감독 사랑 코랑겔로가 연출한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바로 이 작품 <시인 요아브>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과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따라 나가며 자신에 욕구에 대해 불완전함을 내면에 품고 있는 주인공 리사(매기 질렌할 역)의 심리에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든다. 이번 작품이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사랑 코랑겔로 감독은 이 작품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애니는 아름답다. 내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원작 <시인 요아브>와 거의 동일하다. 유치원 교사인 리사는 어느 날 원생인 지미(파커 세바크 역)가 읊조리는 문장을 듣고 그의 재능에 매료되고 만다. 자신의 재능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생각이 나는 대로 내뱉는 지미의 재능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잠시, 자신은 가지지 못한 천재성에 대한 동경과 질투는 점차 리사 본인의 욕망 속으로 빠르게 변질되고 만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03.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설정은 리사와 지미의 미묘한 관계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질투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지미에 대한 리사의 심리다. 이 부분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설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미의 천재성을 만나기 직전에 리사가 처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내면적으로는 영화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시 수업 내분에서 리사가 겪게 되는 수모와 불만족과 같은 부분이고, 외부적으로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주부이자 엄마, 아내로서 겪게 되는 상실감과 공허함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리사가 자신이 갖지 못한 선천적 재능에 대한 갈망 혹은 실망이 점차 커지고 오랜 시간을 헌신해 온 그룹(가정)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축소되기 시작할 때, 지미의 천재성을 만날 수 있도록 구조화함으로써 그녀가 지미에게 몰입하는 행위의 당위성을 얻고자 한다. 시 수업 장면에서 그녀가 만든 시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내용이 담긴 장면이 등장하는 까닭 역시 지미가 갖고 있는 재능에 집착하는 근원적 계기가 된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지미의 재능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타고나지 못한 재능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내면적 믿음을 그녀 스스로가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04.
이 영화에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리사에게 지미라는 아이의 재능이 주는 가치가 변하는 순간이다. 처음에 지미의 재능을 발견한 리사에게 지미의 아름다운 시는 그저 부러움일 뿐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단순한 갈망 또는 동경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 욕구를 대리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낸 것과 같다. 시 수업에 참여해 마치 자신이 창작한 것인 것처럼 평가를 받고자 하는 까닭이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자신이 직접 창작한 작품과 그의 작품 사이에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그녀 스스로 깨닫게 된다.)들이 있음을 알게 된 리사는 그 자체를 소유하고자 한다. 지적 허영심과 결핍을 지미로부터 채우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그의 모든 재능이 자신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리사와 지미 사이에서 형성되는 내러티브 바깥에서 그려지는 리사와 그녀의 아들 조시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그녀의 성향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은 조시가 해병대에 지원하는 사건으로 갈등을 겪는다. – 지미가 존재하기 이전에 그녀의 허영심 속에 조시가 붙잡혀 있었다고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 남편은 그런 그녀를 향해 이렇게 한마디 한다. '조시가 그러더라. 당신이 자기들한테 실망한 것 같다고.' 지미도 조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향해있는 리사의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저 자신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자랑이자 기대가 되어 있는 상황이랄까.

이후에 지미에게 보이는 리사의 모습은 병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이 수업에서 배워온 시에 대한 것들을 가르치려고 들고, 그의 시를 의식적으로 수집하고자 한다. 표면적으로는 그의 재능을 놓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의심스럽다. 지미의 주변에 자신이 아니고서는 모두 없애려고 들고, 그에게 시가 떠오르려 하거든 언제든 연락을 하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지미의 연락이 오면,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쾌락도 중단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시에 몰입되어 있다. 그가 유치원을 옮기고 난 뒤에 미행하고 납치하는 건 어쩌면, 결과론적인 행동의 일부일 뿐, 그를 찾기 위해 그보다 더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05.
한편, 지미의 입장에서 리사는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의 엄마가 죽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엄마와는 유대 관계가 전무하고, 아빠는 사업으로 바빠서 거의 모든 시간을 자신을 돌봐주는 보모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미.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자신의 행동, '시를 읊는 일'에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고 그 능력을 인정해 준 존재가 리사라는 것은 결과가 어쨌든 거짓이 아니다. 자신의 보모도 그저 그런 행동으로 치부했던 일을 선생님 리사는 '시가 떠올랐어요'하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준 셈이다.

이후에 자신과 선생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 그 이전까지 리사는 지미가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 어쩌면 삶에서 가장 큰 존재가 되어갔을지 모른다. 상황에 대한 단기적인 판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기 힘든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미가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그만큼 리사의 행동이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뜻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06.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괴리는 이 지점에서 충돌하는 두 입장으로 인해 발생한다. 누군가의 결핍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특정한 역할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소유권 혹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그 시작이 제아무리 좋은 의도였다고 해도, 어떤 긍정적 결과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강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답은 간단하다. 이성적으로는 그에 대한 대답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지점을 특정 행동 이후 남겨지는 것들을 드러냄으로써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고, 그 복잡함을 통해 관객들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지미의 요구에 직접 신고하는 방법과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직접 알려주는 리사의 모습과 모든 상황이 끝난 뒤에 물리적으로는 보호를 받게 되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가 떠올라요'라는 말에 그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결론적으로 무엇이 지미의 앞날에 긍정적이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문제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역)의 모습에서도 그려진 적이 있었다. – 영화에서 엄마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무니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했지만, 사회적 합의와 규칙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게 된다. –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극 중에서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과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인해 남게 되는 어떤 그림자의 크기는 한편으로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 영화 속 지미의 모습 또한 그렇다.

07.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으로는 작품을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큰 작품들이 있다. 그들의 동기가 되는 원인이 충분히 설명되고, 그 이후에 남는 어떤 회한과 같은 감정들이 모두 그려지는 경우에 말이다. 이 작품 <나의 작은 시인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성인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아이의 천재적 재능과 아이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성인의 교활함 혹은 욕망의 비대칭적 구조가 낳은 하나의 비극이라고 할까. 이를 충분히 표현해내는 매기 질렌할의 완숙한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영화 나의작은시인에게 매기질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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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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